ESG는 어느덧 이 시대의 중요한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작년 미국 경영자단체(Business Round Table)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선언했으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BlackRock은 ESG가 장기 전략을 위해서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고 밝혔다. ESG 관련한 글로벌 투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지난해 3, 4분기 기준 ESG펀드 순자산(약 8,400억원)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였다. ESG에 대한 기사도 매일 양산되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사회적 현상의 탐구과정이 과학적이어야 한다. 현재의 사회적 현상을 좀더 쉽게 이해 및 설명하고, 미래에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을 좀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 필수 조건이다.

특정한 사회현상에 대한 학술적 탐구는 보통 3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혁신을 예로 들어보면, 첫번째 단계에서는 혁신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연구자들이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혁신에 대해서 다양한 개념적 정의를 제시한다. 그 중에서 어떤 것이 좀더 보편타당성이 있는지 연구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단계이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혁신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효과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많은 사회현상이 쉽게 측정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조작적 정의를 고민하는 단계로 진화한다. 이런 단계를 거쳐야만 특정기업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숫자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조작적 정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단계이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혁신이라는 현상과 다른 현상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진다. 혁신적인 기업일수록 경쟁력이 강해지는지 등의 인과관계가 대표적 예다. 혁신이 경쟁력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어떤 경우에 더욱 강해지는지 등을 포함하여 각종 상황요인까지 고려한다. 역의 인과관계, 즉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더욱 혁신적인지 등에 대한 검증도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ESG의 개념적 정의 논의 중

그렇다면 ESG를 학술적 관점에서 파악했을 때 어떤 단계에 도달했는가? 최근까지의 관련문헌을 정리해본 결과, 국내외 경영학분야에서 ESG에 대한 학술연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재계에서의 ESG에 대한 관심도 작년말을 기점으로 아주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학술적 탐구의 첫 단계, 즉 ESG의 개념적 정의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ESG의 개념적 정의에 대해서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는가? 최근 몇몇 대기업의 관련 기존부서(위원회)가 ESG부서(위원회)로 하루아침에 명칭이 바뀌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경영(Sustainable Management)와 ESG의 차이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됐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ESG라는 새로운 경영환경의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조건은 기존 부서나 위원회의 개명이 아니다. 회사 구성원 전체가 ESG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전사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일관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ESG 시대가 도래하면서 또다른 변화는 ESG 생태계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ESG의 조작적 정의, 즉 앞에서 언급했던 학술적 탐구의 두번째 단계로써 ESG를 어떻게 측정할지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대신경제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등이 각각의 특징을 바탕으로 ESG 평가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2021년과 함께 ESG 평가 생태계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의 신년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ESG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업공시제도 개선 방안을 통해 ESG 정보공개의 필요성도 부각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ESG평가 시장으로의 잠재적 진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펀드평가, NH투자증권과 매일경제 등은 ESG 평가모델과 관련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대기업들은 ESG 지수를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평가하고 있다. 다수의 미디어기관에서도 자체 지수를 바탕으로 대기업을 평가하여 ESG 순위를 발표할 예정이다. 몇몇 학회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는 '좋은' 회사인가?... 평가사별로 달라 

각 평가 방법의 차별성이 부각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 때문에,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매우 ‘다른’ 평가지표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관련 생태계의 양적 성장을 위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필요 이상의 차별성이 초래하는 피곤함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기업에 대한 ESG 평가결과가 천차만별인 경우 투자자나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들은 어느 평가결과를 믿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소수의 평가지표로 수렴되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Tesla)는 2003년 창업되어 2004년 일론 머스크가 투자자로 참여했으며, 2010년에 나스닥 상장을 거쳐 작년말에는 S&P500 지수에 편입되었다. 비록 작년 4분기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첫 연간 흑자(7억2000만달러)를 달성했다.

ESG 시대에 테슬라는 ‘좋은’ 회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신이 누구의 평가결과를 선택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Tesla VW GM BMW Nissan Hyundai KIA Toyota
2020 MSCI Rating A CCC B A CCC B CCC BBB
(AAA~CCC, 총 7개 등급, n=39)
2020 Sustainalytics Risk Rating(점수는 높을수록 나쁨) 31.1 41.1 30.6 27.1 33.1 36.2 35.8 30.5
2020 Sustainalytics Risk Grade High Severe Medium Medium High High High High

*주요 자동차 업체에 대한 MSCI와 Sustainalytics의 평가결과 / 해당 홈페이지 내용을 바탕으로 자체 정리

MSCI는 테슬라에게 점차 낮은 등급 (2017년에 AAA, 2018년에 AA, 2019년과 2020년에 A)을 부여하고 있지만, 다른 자동차업체 예를 들어 GM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게 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Sustainalytics는 오히려 테슬라를 GM보다 더 낮게 평가하고 있다. 무엇을 평가할지, 시중에 공개된 정보만 평가에 사용할지, 기업의 정보 공개 수준을 평가할지, 기업의 피드백을 반영할지, 미디어 자료도 반영할지 등 각 기관마다 평가방법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평가기관을 MSCI로 한정하더라도 테슬라가 좋은 회사인지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E, S, G 각각의 세부항목별 평가결과를 살펴보면 사회(S)쪽에서 테슬라의 약점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테슬라의 ESG 점수는 MSCI가 E, S, G 각각에 대해 어떤 평가항목을 선정하고, 어떤 가중치를 부여하는지(현재는 E 29%, S 38%, G 33%)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자동차 업체에 대한 MSCI의 ESG별 평가결과 / 해당 홈페이지 내용을 바탕으로 자체 정리
주요 자동차 업체에 대한 MSCI의 ESG별 평가결과 / 해당 홈페이지 내용을 바탕으로 자체 정리

 

이렇듯 ESG에 대한 정의나 측정방법에 대해서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 사회는 벌써 세번째 단계 즉 ESG의 인과관계에 대한 ‘가정’을 기반으로 많은 정책이 수립되고 있는 듯하다. 그 중의 하나가 사회(S)와 관련된 ‘성평등’과 수익성의 관계이다. 여성 임원이 많을수록 수익성이 올라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소위 말하는 ‘우먼(Woman)지수’를 한국거래소가 개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여성임원-수익성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검증 혹은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제조건과 상황 요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임원으로서 본인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회사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경력 단절이라는 실태가 하루빨리 없어질 수 있도록 사회의 제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즉 단순히 여성 임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런 준비없이 여성 임원의 숫자만 늘려 놓은 이후 수익성이 오르지 않았을 때, “역시나”라는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ESG라는 사회현상에 대해서 우리의 접근방식이 과학적으로 전환되길 기대한다.


※ 이재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이재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이재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이재혁 교수는 고려대에서 사회적기업센터 소장, 지속가능경영 연구그룹장, 중남미연구소 위원을 맡고 있다.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전문위원회(책임 투자분과) 위원,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기업지배구조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지속경제사회개발원 창립 멤버 및 KOTRA 글로벌 CSR사업 심의위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민관합동 T/F위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연구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평가(ESG),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지속가능발전목표(SDG), 경영전략 및 글로벌전략을 포함한 여러 관심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및 저술 활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경영학 분야 최고권위의 국제학술지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JIBS)를 포함 다수의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한국국제경영학회 최우수 해외논문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CSR을 넘어 SDG로, 기업 지속가능성을 높여라', 'The Role of Corporate Sustainability in Asia Development: A Case Study Handbook', 'Green Leadership in China: Management Strategies from China’s Most Responsible Companies', '현대기아차 중국 마케팅 사례', '경영교육 환경의 현황과 시사점' 등이 있다. 
중국 내 다국적 기업과 중국기업들을 대상으로 CSR Ranking을 조사 분석해, 그 결과를 에 발표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속가능경영 실태 조사를 위한 ESG 지표개발 및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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