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2조에 달하는 영국 패스트패션 기업 부후의 열악한 노동조건 폭로
지속가능펀드 20개 부후에 투자, MSCI 등 ESG평가기관 부후 공급망 AA등급 매겨 논란

지난 7월 내내 영국에서는 패션 브랜드 ‘부후(Boohoo)’ 스캔들이 지속가능경영과 ESG투자기관 등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부후는 최근 영국에서 가장 떠오르는 패션 브랜드다. 그런데 7월초 부후의 공장을 잠입취재한 더타임즈의 자매지 <선데이 타임즈(Sunday Times)> 기사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이 폭로되자, 주가가 반토막나고 주주들이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 이에 더해 기업의 ‘그린 워싱(Green Washing, 실제와 달리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것)’ 혹은 ‘’ESG 워싱’ 을 막지 못한 ESG투자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가장 뜨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부후(Boohoo)' 브랜드. 3만6000개가 넘는 자체브랜드 의류를 판매한다/부후그룹 홈페이지
 최근 영국에서 가장 뜨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부후(Boohoo)' 브랜드. 3만6000개가 넘는 자체브랜드 의류를 판매한다/부후그룹 홈페이지

 

영국에서 가장 뜨는 패션브랜드 부후(Boohoo),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7월 5일, 영국 <선데이 타임즈>는 부후 브랜드의 의류가 만들어지는 영국 레스터(Leicester) 공장에 잠입 취재, 공장 직원들이 시간당 3.5파운드(약 5500원)를 받고 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서 25세 이상의 최저 임금은 8.72파운드(약 1만4000원)이다. 최저 임금의 절반보다 적은, 열악한 근무조건이었다. 게다가 공장 직원들은 코로나 19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은 채, 감염 위험이 있는 상태에서 계속 근무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사는 즉각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영국 법무부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며 부후의 공장실태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투자자들은 연이어 주식을 내다팔며,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패스트패션 기업 부후는 어떤 회사인가

부후는 최근까지 영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패션업체였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보다 더 빠른 ‘울트라 패스트 패션(ultra fast fashion)’ 기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존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디자인부터 제작, 유통, 판매까지 평균 4~5주 가량 걸린다면, 울트라 패스트 패션은 그 절반인 1~2주 안에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인스타그램, 틱톡에 등장하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어제 입었던 옷을 오늘 사고 싶어하는 밀레니얼 및 Z세대 취향을 저격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없고, 대부분 온라인을 중심으로 판매를 하며, 5파운드 티셔츠 등 가격은 젊은 세대에 맞게 저렴하다.   

부후의 성장은 눈부시다. 부후의 지속가능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억9500만파운드(3043억)이던 매출은 2020년 12억3478만파운드(1조9000억원)로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부후의 시가총액은 39억파운드로, 136년 역사를 지닌 영국 패션 브랜드의 아이콘인 ‘막스앤스펜서’ 37억 파운드를 초월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후의 지속가능보고서에 나온 매출액 증가. 2019년에서 2020년 한해에만 무려 44%의 성장을 거듭했다./부후그룹
부후의 지속가능보고서에 나온 매출액 증가. 2019년에서 2020년 한해에만 무려 44%의 성장을 거듭했다./부후그룹

 

부후의 공장 스캔들은 왜 발생했나

부후의 공장 스캔들에 앞서, 패스트패션 브랜드 사례부터 봐야 한다. 자라(Zara), H&M, 유니클로 등 패스트 패션은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유행을 휩쓸었다. 하지만 2013년 세계를 경악시킨 사건이 발생한다.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Rana Plaza) 공장 참사사건이다. 패스트 패션 기업들은 가성비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값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의 하청공장을 통해 옷을 공급받아왔는데,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도 그 중 하나였다. 라나플라자 공장의 무리한 증축으로 인해 붕괴사고가 발생, 무려 1129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패스트패션 기업들은 개발도상국 공장에 대한 안전 교육, 모니터링 등을 강화하라는 대중의 압력이 증가해왔다. 

반면, 부후와 같은 울트라 패스트패션 기업의 경우 이들 공장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1~2주 안에 옷을 제작해 판매하려면 공장은 본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 대부분의 상품은 영국에서 생산하며, 협력업체 수백 곳을 적극 활용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부후 공장도 영국 런던 서북쪽에 위치한 레스터 지역에 있었다. 영국 내의 공장에서 노동 착취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후와 같은 울트라 패스트패션 기업의 경우 1~2주 안에 옷을 제작해 판매하려면 공장은 본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 대부분의 상품은 영국에서 생산하며, 협력업체 수백 곳을 적극 활용한다. /픽사베이
부후와 같은 울트라 패스트패션 기업의 경우 1~2주 안에 옷을 제작해 판매하려면 공장은 본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 대부분의 상품은 영국에서 생산하며, 협력업체 수백 곳을 적극 활용한다. /픽사베이

 

부후 스캔들과 ESG투자는 무슨 상관인가

부후 스캔들로 인해 가장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ESG 투자’다. 펀드평가기관인 모닝스타에 따르면, 부후에는 스탠더드라이프 애버딘(Standard Life Aberdeen), 리걸앤제너럴(Legal and General Investment Management), 맨그룹(Man Group) 등 지속가능한 투자를 목표로 한 20개의 펀드가 투자됐다. 특히 스탠더드라이프 애버딘 투자그룹의 경우 ‘UK 임팩트 고용기회펀드(Impact Employment Opportunities)’에 부후그룹을 포함시켰고, 그 지분이 3.4%였다. 스캔들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부후그룹을 최대 포트폴리오 기업으로 내세웠으나, 이번 스캔들 이후 곧바로 주식을 매각했다. 

많은 투자기관은 ESG 평가기관의 등급을 믿었다고 항변한다. 예를 들어, MSCI(모건스탠리 캐피털인터내셔널)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부후그룹의 ‘공급망 노동기준’에 대해 10점 만점에 8.4점, 즉  AA등급을 부여했다. 이는 업계 평균인 5.5점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 이후 몇몇 펀드매니저들은 “공급망에서 값싼 노동력 없이 5파운드의 드레스를 만드는 게 어려울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투자자금이 왜 패스트패션 그룹에 투입됐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지난 몇년 사이 늘어난 ESG 투자를 뒷받침할 만한 ESG 등급 평가 체계가 갖춰져있는지, 신뢰할 만한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부후 스캔들을 계기로 지난 몇년 사이 늘어난 ESG 투자를 뒷받침할 만한 ESG 등급 평가 체계가 갖춰져있는지, 신뢰할 만한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파이낸셜타임즈지에 실린 패션브랜드의 투명성 지수. 부후는 전반적으로 아디다스,  H&M 등에 비해 낮은 등급에 속해있다./파이낸셜타임즈 
부후 스캔들을 계기로 지난 몇년 사이 늘어난 ESG 투자를 뒷받침할 만한 ESG 등급 평가 체계가 갖춰져있는지, 신뢰할 만한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파이낸셜타임즈지에 실린 패션브랜드의 투명성 지수. 부후는 전반적으로 아디다스,  H&M 등에 비해 낮은 등급에 속해있다./파이낸셜타임즈 

 

ESG 워싱(ESG Washing)을 걸러낼 수 있는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영국에서는 ESG 워싱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에 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지속가능 투자에 대한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기업의 ESG 등급을 제공하는 업체들의 영향력도 덩달아 커졌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유럽 전역의 자산운용사들이 지난해에만 360개 이상의 새로운 ESG 펀드를 출시했다. 지난해 유럽에서 투자된 지속가능 펀드 규모는 2018년의 2.5배인 1200억유로(168조원)에 달한다. 이 분야가 확장되면서 지속가능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MSCI, Sustainalytics, Vigeo Eiris 등 ESG 등급을 매기는 평가기관의 역할도 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ESG 등급 평가가 대부분 기업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업은 자체 공급망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할 수 있기에, 기업이 공개하는 데이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평가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오류도 있다. MSCI는 6월 보고서에서 부후그룹에 대해 ‘근로조건이 열악한 지역의 공급망 의존도가 낮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공급망 노동정책과 관행’을 지닌다고 밝혔다. MSCI는 이번 스캔들 이후 부후를 A로 하향조정했다. 개발도상국 제조시설이 아닌, 영국 내 제조공장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평가기관들이 추구하는 평가지표와 데이터, 세부 사항, 가중치 등의 분석이 세분화되지 않아, 테슬라의 경우 어떤 ESG 평가기관에서는 하위 10%로 평가되고, 어떤 기관에서는  A등급을 받기도 한다.  실제 글로벌 신탁회사 인터트러스트(Intertrust Group)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50명의 사모투자자들 중 절반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ESG 방법론을 사용하면 그린 워싱의 비난에 노출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결국 이번 사건을 통해 ESG 투자에 대한 보다 신뢰할 만 한 표준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ESG 투자의 배신’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생태계가 다 함께 나서 문제를 고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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