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이 주도하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넘어 민간 주도 탄소 시장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민간 탄소 시장이 2030년 6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MSCI는 “탄소에 가격을 매기면서 오염자들에게 배출량을 줄이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며 민간 탄소시장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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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업체와 주요 증권사, 철강·시멘트를 비롯한 업종별 협회와 함께 민간 주도 탄소시장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한국표준협회가 현재 수행 중인 ‘민간 탄소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설계 연구용역’의 중간 발표회로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민간 탄소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설계안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눴다.

민간 주도 자발적 탄소시장(VCM, Voluntary Carbon Market)은 법적 규제와 무관하게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모든 기업이 참여해 탄소 크레딧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시장 운영 방향도 민간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산업부는 최근 글로벌 무역·투자 환경이 온실가스 감축 역량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등도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 관한 배출량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며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수출 기업이 협력업체에 납품 조건으로 온실가스 감축 기준 준수를 요구하는 일이 늘어나는 등 공급망 전체의 탄소 배출량 관리가 중요해졌다”며 VCM 조성에 나서게 된 이유를 밝혔다.

정부는 민간 탄소시장의 활성화로 대기업 협력업체 온실가스 감축 실적 관리와 ESG 달성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봤다. 또 물류·플랫폼·철강·시멘트 등 직접 감축에 한계가 있는 기업도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부는 이번 행사에서 모은 업계 의견을 바탕으로 VCM 지원 방안과 최종 제도 설계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동시에 현재 탄소시장 개설을 준비 중인 사업자가 차질없이 시장을 발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MSCI "탄소시장, 세계 경제 탈탄소화의 주축"

MSCI는 8일(현지시각) “탄소시장 시대가 도래했다”며 “탄소시장은 탄소에 가격을 매기고, 오염자들에게 배출량을 줄이는 동기를 부여해 세계 경제 탈탄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MSCI 추산 결과 전 세계적으로 약 30개의 공공주도 탄소 배출권 거래제(CCM)가 조성됐으며, 탄소 시장의 시장가치는 2700억달러(340조원)로 나타났다. 가장 큰 시장은 EU ETS, 북미 WCI(미국 캘리포니아주-캐나다 퀘벡 주 ETS), RGGI(미국 북동부 배출권거래시장)), 영국 ETS다. 

2021년 거래된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탄소 크레딧의 시장 가치는 약 7600억유로(8510억달러)로, 탄소 가격의 증가와 약간의 크레딧 수량 증가로 2020년보다 1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TS 확대로 배출권 거래 뿐 아니라 파생상품 거래 등 탄소 시장은 확대되고 있다. 시장 가치도 함께 확대되면서 투자 가능한 자산으로 기관 투자자의 주목도 함께 받고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VCM)은 ETS가 확대되면서 덩달아 탄력을 받고 있다. 공공 주도 탄소 배출권 거래제(CCM)은 규제당국이 직접 개입해 탄소 배출량을 관리한다. 탄소 배출권은 규제 대상 기업에게 유상할당(경매), 혹은 무상할당으로 규제당국이 부여한다. 

규제 대상 기업은 CCM 안에서 배출량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배출량을 효율적으로 감축한 기업은 남는 탄소 배출권을 팔 수 있다. 반면 탄소를 초과로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을 구입할 수 있다.

MSCI는 “CCM 매커니즘은 탄소 가격이 효율적으로 내부화되면 규제 당국은 배출 허용량의 전체적인 공급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 가격이 잡힐 때까지 규제 당국이 탄소 배출권 가격과 탄소 감축 목표를 저울질해 최적의 선을 맞춰 나가는 식이다. 

이런 이유에서 EU는 EU ETS를 이용해 2030년까지 55% 감축하는 ‘Fit for 55’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EU ETS는 2021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90%를 차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동적이고 발전된 ETS 시스템이 됐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해 목표를 조정하는 식이라 시장 조정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EU는 2005년 ETS를 도입한 뒤로 약 4번의 조정을 거쳤다. 

2단계 시행 중인 2011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간 EU 탄소 배출권 가격 변동 추이. 3단계가 시작되고 나서야 적정 탄소 가격을 찾아가고 있다/MSCI
2단계 시행 중인 2011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간 EU 탄소 배출권 가격 변동 추이. 3단계가 시작되고 나서야 적정 탄소 가격을 찾아가고 있다/MSCI

1단계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다. 당시에는 탄소 자유 무역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가격 책정 매커니즘 확립을 목표로 했다. 당시에는 신뢰할 수 있는 배출 자료가 없어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다. 따라서 탄소 가격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2단계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다. 1단계를 통해 검증된 배출 자료를 바탕으로 업종별 탄소 배출 상한선을 설정했다. 또 배출할 수 있는 전체 탄소 배출량을 줄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활동이 위축돼 수요가 감소했다. 2단게에서도 탄소 가격은 낮아졌다.

약 8년간의 시범 운영시기를 넘어 3단계(2013년~2020년)에서야 탄소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EU 규제당국은 탄소 배출권이 과잉 공급됐다고 판단해 예비 물량을 만들고, 허용된 탄소 배출량을 매년 줄이기로 결정했다. 균형을 맞춰나가는 시기였다.

그리고 지난해 4단계에 접어들었다. 2021년부터 2030년까지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보다 엄격한 정책 수단이 도입됐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권은 매년 2.22% 감소한다. 또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업종에 대해서는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CCM도 한계는 있다. 규제 대상이 아닌 기업에게 탄소 감축을 유도할 요인을 주지 못한다. 또 자발적으로 감축을 유도할 요인이 미흡하다. 이런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탄생했다.

VCM은 개인, 기업, 정부, 비정부 조직까지 자발적으로 탄소 감축에 참여하고, 자율적으로 크레딧을 거래할 수 있다. 산림 재생 및 탄소 포집 기술(CCS) 등으로 탄소를 감축하면 크레딧을 지급하는 매커니즘이라 확장가능성도 크다.

VCM 규모는 2021년 약 10억달러(1조2000억원) 크레딧 거래량을 보여 아직 규모는 작은 편이다. 또 프로젝트의 환경적·사회적 무결성이 담보된 고품질의 배출권 부족이 시장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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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량 늘었는데 탄소 배출권 가격은 급락...

음의 상관관계 해결해야

CCM, VCM 앞에 놓인 가장 큰 문제는 탄소 가격의 변동과 석유 가격의 상관관계 붕괴다. 유럽은 러시아 화석연료, 특히 가스에 의존하고 있는데다 러시아에 대한 각종 경제 제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불확실성으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졌다. 이 여파는 탄소 시장에도 미쳤다. 흥미로운 점은 탄소 배출권 가격이 상승한 것이 아닌 하락했다는 점이다.

탄소-석유는 보통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최근 OPEC+가 산유량을 증가하겠다고 밝혔지만, 탄소 배출권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MSCI
탄소-석유는 보통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최근 OPEC+가 산유량을 증가하겠다고 밝혔지만, 탄소 배출권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MSCI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국제 제재 이후 EU ETS 탄소 가격은 1분기 97유로(13만원)에서 58유로(7만8000원)로 약 40% 급락했다가 3월 하순 회복됐다. 일반적으로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탄소-석유'는 –0.27로, 음의 상관관계를 기록하기도 했다.

MSCI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광범위한 자산 매도의 일부로 탄소 배출권 매도가 촉발됐다"고 밝혔다. 물량이 많이 풀리면서, 탄소 배출권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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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잠재적 경기 침체와 경제 활동 저하에 따른 우려로 탄소 배출권 수요도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2022년 무상배분 시기가 1분기였던 것도 탄소-석유가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게 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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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I는 “빠르게 성장하는 탄소 거래 시장의 핵심은 지구 온난화와 순배출량 제로 달성과의 연계성”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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