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개발도상국 위한 ‘손실 및 피해 금융’ 4년간 운용하기로 합의
지난 4일(현지시간) 아부다비에서 선진국-개도국 인사들로 구성된 준비위원회(transitional committee) 5차 회의가 열렸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 지도 하에 진행된 이번 회의를 통해 ‘손실 및 피해 금융’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합의문에 따르면, 손실 및 피해 금융 자금은 4년 동안 우선 세계은행이 관리하며, 대규모 개발도상국은 물론 미국, EU, 영국 등의 자금원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가디언을 비롯해 블룸버그, 로이터통신 등 복수의 외신이 보도했다.
이 기금이 얼마만큼의 자금을 모으고 지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후 위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개발도상국들은 이 기금이 수천억 달러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2020년까지 연간 1000억달러(약 129조원)을 제공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바베이도스의 기후 특사인 아비나쉬 페르소드(Avinash Persaud)는 “이것은 도전적이었지만 중요한 결과였다. 이제 우리는 기후 재난 또는 서서히 발생하는 (기후)사건 이후 재건, 재활 및 재배치를 위한 보조금 기반의 자금 조달을 위한 국제 기금을 운용할 수 있는 도구를 처음으로 보유하게 되었다. 이는 중요한 진전이며 다른 기후 행동에 대한 긍정적인 추진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COP27 합의 이후 나온 진전
기후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개발도상국의 손실 및 피해 보상을 논하자는 주제는 10년 넘게 기후 회담에서 거론되어 왔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개도국들은 기후 위기를 야기한 선진국으로 인해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보상을 요구해왔다.
지난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COP27 정상회담에서는 논의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며 손실 및 피해 기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3월부터 10월까지 기금 설계를 맡은 준비위원회가 4번의 회의를 주최했지만 국가들은 누가 지불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어느 국가가 혜택을 받아야 하는지, 기금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면서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COP28 의장직을 맡은 술탄 알 자베르(Sultan Al Jaber)는 “손실 및 피해 기금과 자금 조달 방식을 위한 권고안을 통해 COP28 에서 합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기후 변화의 영향에 취약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의 생명과 생계는 COP28의 결의안 채택에 달려 있다”라고 전했다.
이번 기금이 마련되면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규모 석유 및 가스 생산국이 손실 및 피해 기금에 기부해야 할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들 국가는 2015년 파리 협약의 상위 조약인 1992년 UN 기후 변화 협약에 따라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면제 대상인 상태다. UAE는 기금을 지불할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가디언은 이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자금 보장에는 턱없이 부족한 합의
인권, 환경 운동가들과 개발도상국 대표자들은 즉각적이고 상당한 액수의 자금이 투입되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기후행동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 International)의 글로벌 정치 전략 책임자인 하르지트 싱(Harjeet Singh)은 “손실 및 피해 기금 운용을 위한 현재 권고는 개발도상국이 기후 영향에 대처하고 삶을 재건하기 위한 재정적 요구가 충족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않는다. 선진국, 특히 미국은 개발도상국에게 세계은행을 내세워 재정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했다”고 전했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단일 정부나 일부 정부는 개발도상국의 자금 수요를 필요한 규모로 충족할 만큼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 때문에 협상 전반에 걸쳐 이 기금이 탄소 시장, 국제 가격 책정 메커니즘, 보조금 및 대출 혜택을 보완하는 다른 방법들을 포함해 가장 광범위한 자원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미국은 기금에 대한 기부가 자발적이라는 점을 명시하는 각주를 포함시키려 했으나 위원회 위원장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러한 거부에 반대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기부금의 자발적 성격에 대한 명확성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이 문서에 반영되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 합의문은 최종 합의된 것이 아니다. 다음 논의는 11월 말 두바이에서 열리는 COP28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COP28 회담을 주재할 술탄 알 자베르는 위원회의 권고를 환영하며 COP28에서 합의를 위한 길을 닦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