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 산업 활성화 vs. 환경성과 안정정, 무게추 어떻게 둘까
K배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국내에서 원자재 확보가 어려우며 공급망이 중국 등 특정 국가에 의존적인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폐배터리에서 원자재를 추출하는 재활용이 제시되지만, 폐기물 규제로 충분한 물량 확보가 어렵다.
산업계는 폐배터리 수급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를 확보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재활용 목적의 폐배터리를 순환자원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배터리 산업의 경제성을 안정성 및 환경성과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안정성과 환경성은 각각 배터리의 화재 문제와 재활용 공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 물질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와 연관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국회기후변화포럼과 한국환경공단이 13일 공동으로 주최한 ‘탄소중립을 위한 폐배터리의 순환경제 전략과 육성 방안’ 세미나에서 폐배터리 산업의 경제성과 환경 및 안정성 문제에서 무게추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폐배터리의 순환자원 인증 여부…
폐기물관리법과 자원순환기본법 가르는 분수령
산업계는 폐배터리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포함한 다양한 출처의 폐배터리와 재활용 소재를 순환자원으로 인정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폐기물이 순환자원으로 인증받으면, 폐기물관리법이 아닌 자원순환기본법을 따르게 된다. 순환자원으로 지정된 품목은 함께 고시되는 순환이용의 용도, 방법 및 기준 등을 모두 준수하는 범위에서 폐기물로 간주하지 않으므로 폐기물 규제에서 면제된다.
환경부는 폐지, 고철, 폐금속캔, 알루미늄, 구리, 전기차 폐배터리, 폐유리 등 7개 품목을 순환자원 지정 대상으로 선정했다. 폐배터리는 전기차에서 탈거된 제품만 인정되며, 다른 용도로 사용된 배터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폐배터리의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과 재제조에 대해서만 이를 인정하고 있다.
안정성과 환경성 기준도 마련되어 있다. 전기차 폐배터리는 침수·화재·변형·파손 등이 없고 셀이 훼손돼 유해 물질이 유출되거나 화재·폭발 등 위험이 없는 것으로, 폐배터리를 셀 단위 분해 없이 본래 성능으로 복원해 재사용하거나, 에너지 저장장치, 비상전원공급장치 등의 제품으로 재제조하는 등 세부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순환자원으로 분류한다.
산업계, 재사용과 재활용 구분 없이 순환자원 인정 촉구...
세제혜택 및 보조금 지원과 수입절차 간소화 필요해
산업계는 순환자원 인증 범위와 보조금 지원 등의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지혜 한국환경연구원 자원순환연구실장, 이승훈 GS에너지 상무,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이 이와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조지혜 한국환경연구원 자원순환연구실장은 자원 안보차원에서 폐배터리의 물량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지혜 연구실장은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며 “현재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있고 배터리를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관련된 규제 개선 지원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는 순수 전기차(BEV)의 배터리만이 관리 대상이었으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소전기차, 산업용 이륜차 등 리튬 배터리 전반으로 확장해서 물량 확보와 안정성 및 환경성 관리가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 연구실장은 “순환경제 활동을 하는 기업에는 녹색금융과 조세특례제한 등의 법과 연계해서 산업계를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승훈 GS에너지 상무는 “GS에너지는 폐배터리 전처리와 후처리 사업, 배터리 구독 및 진단, 재사용과 재제조, 폐터리 탈거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사업을 진행 중”이라며,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재활용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공유했다. 이승훈 상무는 “국내는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화나 보조금 사업이 없기에 보완이 필요하다. 재사용 목적의 폐배터리는 순환자원으로 인정받으나 재활용 목적은 그렇지 못하므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업체들이 전기차 사업 등으로 해외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데, 재활용 산업 활성화를 위해 스크랩과 같은 물질들을 국내에 들여와야 하지만 바젤 협약 등으로 유해 폐기물로 지정되어 수입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므로 이 부분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젤협약은 1989년 3월 22일 유엔 환경계획(UNEP) 후원하에 스위스 바젤(Basel)에서 채택된 협약으로,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교역을 규제하는 협약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은 배터리 관련 원료가 나오지 않지만, 폐배터리 물량이 쌓이면 얼마든지 원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며 “재활용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배터리 물량 확보를 위해 “정부가 더 관심을 두고 재사용과 재활용 구분 없이 보조금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리튬, 니켈, 코발트, 구리 외에도 다양한 소재 재활용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박재범 수석연구원은 “음극재에 들어가는 흑연도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경제성이 없어서 아직 연구 개발을 하고 있는 단계”라며 “모든 소재는 재활용이 필요하며, 이를 지원할 정책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순환자원 인증은 폐기물 관리 규제 벗어나는 것…
성능평가 기술과 재활용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폐기물 재활용 산업이 중요한 미래 산업이지만, 안정성과 환경성 역시 산업성과 동일한 위계로 다뤄야 한다는 패널들의 입장도 제시됐다. 이승희 한국바젤포럼 대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이정미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이 이와 같은 신중론을 폈다.
이승희 한국바젤포럼 대표는 “바젤협약은 배터리를 폐납산배터리와 전기차 배터리를 포함한 기타 배터리 두 종류로 구분하고, 모두 유해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희 대표는 “이 배터리를 순환자원으로 인증하면, 폐기물 관리 규제에서 벗어나고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폐배터리 물량이 부족하고 화재 위험으로 보관도 어려운 상황이기에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문제는 바젤 협약에 저촉되어 수입 역시 어렵다”고 말했다. 이승희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능 평가 기술과 재활용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여 안정성과 환경성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희 대표는 “배터리 성능이 80% 이상이면 재사용, 65% 이상이 재제조, 60% 이하가 재활용 대상으로 분류되는데, 이를 평가하는 기술이 있지만 비용은 100만원으로 높고 평가 소요 시간도 8시간 이상으로 길다”며 “비용과 소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도 “폐배터리 재활용의 산업성만 강조하기보다는 환경성과 안정성 문제를 조화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수열 소장은 “유가성이 높은 NCM배터리와 유가성이 낮은 NFP, LFP 배터리를 일괄적으로 순환자원으로 인증하여 폐기물 범위에서 배제해달라는 요구는 폐기물 관리에 있어서 또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미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산업계의 요구로 재사용과 재제조 목적의 배터리는 순환자원으로 인정하지만, 재활용 목적은 공정 스크랩 등의 폐 유독물질 관리가 아직 어려운 상황이라 폐기물 규제에서 제외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정미 과장은 “성능평가 관련한 기술이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고, 국표원에서 마련한 KC10031(재사용 전지 안전기준)이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소재 추출이 용이한 블랙 파우더를 순환 자원으로 인증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으나, 금속 추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 등의 환경 문제를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