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SEC, 기후공시에서 스코프3 제외할 듯
기후 공시에서 기업들이 가장 난감해했던 스코프3의 배출량 보고가 기업공시 의무보고 사항에서 면제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스코프3 배출량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중에서 모든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포함하는 것으로, 측정과 계산이 까다롭다.
로이터의 단독 보도에 의하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이하 SEC)는 최근 로비스트와 기업 임원들에게 SEC가 기후 공시에서 고려해왔던 가장 까다로운 온실가스 배출 공개 요건 중 일부가 축소될 수 있다고 귀뜸했다. 특히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을 공시하는, 스코프3 항목 규제를 축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3월, SEC는 기후공시 초안을 발표하면서 해당기업에 중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스코프3 배출을 공시하도록 제안했지만, 기업들은 스코프3는 데이터를 생산하기 어렵고 법적으로 논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발해왔다. SEC는 올해 안에 최종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왔다.
스코프3 배출을 의무화하면 법적 문제 발생 소지가 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최종안 발표를 계속 늦춰가면서 고심을 해온 것은 스코프3 배출량 공개 의무화 때문이다. 스코프3 배출량은 총 15개 카테고리별로 모두 보고를 해야 하는데, 원자재 조달부터 생산과 운송, 직원의 출퇴근 통근량, 소비자의 제품사용, 폐기물까지 한 마디로 기업의 모든 밸류체인의 온실가스를 모두 측정하거나, 측정치가 없으면 추정을 통해 계산해야 한다. 스코프3 배출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공급망의 협력업체 데이터부터 사용자 혹은 소비자들의 정보까지 확인해야 하며, 이중 계산(double countion)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논의도 매우 복잡하다. 아직 스코프3 배출량 계산에 대한 합의된 방법론이 없다.
로이터에 의하면, 미 SEC가 스코프3 공시 의무화를 철회하기로 논의의 방향을 튼 이유는 바로 법적 분쟁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부 SEC 관계자는 로이터에 "기업 대표 및 기타 이해관계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스코프3 공시를 의무화하면 법적 문제에 더 취약해질 수 있으며, SEC가 스코프3와 연관된 세부규칙을 세울 때마다 소송에 휘말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SEC가 우려하는 법적 문제는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인해 촉발된 측면도 있다. 지난해 7월 석탄발전 비중이 큰 18개 주정부, 석탄회사, 화력발전소 등은 미 환경보호국(EPA)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EPA가 미국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미 연방대법원은 6 대 3으로 환경보호국(EPA)의 패소를 판결했다. 미 연방정부에 해당하는 환경보호국(EPA)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의 권한 범위에 한계를 인정하면서, 사실상 제동을 건 것이다.
이로 인해 만약 스코프3 배출 공시까지 의무화하는 SEC 규칙이 도입될 경우, 이에 반발하는 기업들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가 큰 데다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불거졌다. 미 공화당에서는 일찌감치 SEC가 스코프3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며 "이 규칙은 기업에게는 지나치게 부담을 주고 투자자들에게는 진짜 중요한 정보를 불투명하게 한다"고 강력히 반발해왔다.
캘리포니아는 스코프3 공시 의무화, 유럽과 ISSB도 스코프3 의무방침
한편, SEC의 기후공시 관련 규칙을 추적하는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SEC는 이미 스코프3 배출량을 보고한 회사에만 공개하도록 요구하거나 회사가 법적 책임을 줄일 수 있는 서류와 정보를 제공하도록 허용하는 등 타협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만, SEC 관계자는 스코프3 배출과 기후 공시 규칙이 최종 확정되는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SEC가 기후 공시에서 스코프3 배출량 보고 의무를 제외할 경우 연방기관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에 타격을 줄 것으로 로이터는 전망했다.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에 의하면, 많은 기업의 탄소 배출에서 스코프3는 70% 이상 차지하지만, 일부 기후 행동 옹호자들조차도 스코프3 배출량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데 따른 물류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게리 겐슬러 SEC의장도 기업들이 스코프3 공시를 잘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한다. 다만, SEC가 규칙에서 스코프3 배출 보고의무를 면제하더라도 기업은 스코프1과 2의 배출량은 공시해야 한다.
한편, 올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에서 활동하는 기업은 2027년부터 스코프3 배출량을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이에 대해 게리 겐슬러 SEC의장은 이렇게 되면 많은 기업이 이미 정보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SEC규정을 준수하는 비용이 더 저렴해질 수 있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기업 로비스트들은 기업들이 주주 소송의 위험 때문에 여전히 SEC신고서에 스코프3 배출을 포함하는 것을 꺼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향방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줄 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국제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ISSB) 등에서는 스코프3 공시 의무화가 표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ISSB는 지난해 10월 지속가능성 및 기후 공시 표준안에서 스코프3 공시를 포함했고, 유럽연합(EU) 또한 스코프3 공시 의무화가 예정돼있다.
게리 겐슬러 SEC의장은 지난달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행사에서 약 1만6000개의 의견을 받은 배출가스 공시 규칙이 최종 확정되어 채택되면 어떤 법적 문제도 없기를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