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SG를 보는 눈】 "지속가능을 위한 ESG, 우리만의 속도 찾아야" 유안타증권 김후정 연구원

기후위기 인식은 비가역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글로벌 트렌드가 E인 이유는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공멸하기 때문 국내, E나 S보다 거버넌스 중요시 해 우리만의 속도 찾는 것이 관건

2021-01-18     박지영 editor

“코로나의 역설 중 하나가 ESG죠.”

코로나19 팬데믹 유행으로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었을 2020년도 몇몇 분야에선 호재로 작용했다. ESG도 그 중 하나다. 기후변화가 곧 위기라는 경종을 울린 코로나19와 겪어보지 못한 자연재해로 기후위기는 전세계 핵심 아젠다로 부각됐다.

유안타증권 김후정 연구원은 10여년간 펀드를 분석하면서 펀드 상품과 시장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오고 있다. 

위기의식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ESG의 축은 환경(E)으로 옮겨왔다. 김후정 연구원은 “유럽이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었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의식이 올라온 것 같다”며 “미래 부각될 친환경 산업에 집중 투자해서 주도권을 잡자는 의도로 정부에서도 민간에서도 투자가 많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를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지니, 민간에서도 자금이 몰리는 일종의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당위성이 더 부각되던 사회책임투자보다 ESG 투자가 수익률이 높다는 점도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소 중 하나다.

선순환의 고리가 연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큰 손 투자자들의 압박도 있었다. 전세계 시가총액의 약 2%에 해당하는 1600조원을 운용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경우 투자금을 쥐고 기업에게 친환경 대응을 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2019년 최다 미팅 주제는 기후 변화였다. 특히 도요타, 폭스바겐 등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탈내연기관을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2030년 이후 내연기관차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2019년 기업 미팅 주제. 단일 주제로는 기후변화에 대한 미팅이 최다였다. /유안타증권 리포트

Climate 100+, AIGCC(기후변화에 관한 아시아투자그룹) 등 투자자들의 활발한 얼라이언스(alliance)도 한 몫 했다. 투자자 간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명목 하에 기업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겠다’는 투자자의 압박에 세계적 석유회사인 BP, 엑손모빌 등은 서둘러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ESG의 축이 환경으로 넘어오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공멸’이다. 반성을 넘어 인류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맞닥뜨린 작년이다. 김 연구원은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지배구조가 문제가 있다, 이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환경의 경우 특정 기업이 탄소 배출을 내뿜으면 전 인류가 영향을 받게 된다”며 “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히 차이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후변화는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다 같이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연기금 등 에셋 오너(Asset Owner)들이 스튜어드십 코드 등을 이용해 움직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기업 중심으로 확산되는 ESG

거버넌스에만 초점 맞추는 사회 분위기는 아쉬워

국내에서도 ESG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기업 총수들은 신년사에서 ‘친환경’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특히 삼성과 SK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봤다. 두산, 효성, 한화도 친환경 산업을 차기 먹거리로 발굴하고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형 뉴딜’은 기업들이 친환경 산업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다만 김 연구원은 “국내 기업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거버넌스에만 집중하는 건 아쉽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영권에만 과도하게 간섭하게 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 될 수도 있기에 E·S·G에 고루고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속도 조절도 주문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되지만, 너무 가속도를 내도 안 된다는 얘기다. 김 연구원은 “기업과 사회 인식 등 전반적으로 인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기업과 시장은 준비 되지 않았는데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들만 세계적 기준에 맞춰 눈높이를 올려도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우리만의 속도를 차근차근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지적되는 ESG 투자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설명했다. ESG ETF의 경우 대형주에 편중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아직 초창기라 비슷한 종목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일반 펀드도 중소형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기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돼 있기에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은 아쉽다. 김 연구원은 “해외는 전기차 테마 하나로도 선택할 수 있는 기업의 범위가 넓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진 건 사실”이라며 “기업들이 서서히 눈을 뜨는 단계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관별로 ESG 등급이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오히려 유사한 게 더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냐”고 반문했다. 정성평가기 때문에 등급에서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기관별로 가중치와 등급 산정 과정이 달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또한 ESG 평가는 도입된 지 10년으로 역사가 짧다. 시간이 흘러 성숙해지면 시행착오도 줄어들 것이라고 바라봤다.

 

기후위기 인식은 비가역적...

모두의 지속가능을 위한 투자, ESG

ESG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장기전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가 사그라들었다고 발전 방향이 바뀌진 않을 거란 얘기다. 코로나는 변화를 앞당긴 것일 뿐, ESG를 중시하기 전으로 돌아갈 순 없는 ‘비가역적인 현상’이란 것이다.

김후정 연구원은 ESG를 “모두의 지속가능을 위한 투자”로 정의했다.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ESG가 대두됐다고 봤다. 김 연구원은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투자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투자 기회가 생겨나면서 투자자들도 뛰어드는 선순환이 형성되는 초입”이라며 “올해는 속도조절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