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0조달러 경제, 키워드는 ‘자연’...생물다양성, 3년 안에 타석에 선다
“기후변화의 본질은 자연에서 찾아야 한다. 기후 금융이 크게 발전하는 상황을 기반으로 자연 금융은 향후 30년이 아니라, 2~3년 안에 중요한 금융 수단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종대 인하대학교 녹색금융대학원 교수가 24일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에서 개최한 ‘2023 녹색금융/ESG 국제 심포지엄'의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녹색 금융의 핵심 요소인 정보 공시 트렌드를 보면, 변화 속도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기후 공시 기준인 TCFD가 30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만들어지고 있지만, 자연 공시인 TNFD는 불과 논의된 지 10여 년만에 나왔다. 자연 관련 공시는 기후 공시에 관한 논의를 바탕으로 빠른 시일 내에 법제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 심포지엄 모인 각계 전문가들은 생물다양성과 자연 금융이 중요한 이유와 도전 과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타석에 오르는 ‘자연’, 연간 10조달러 경제 이끈다
김종대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은 기후변화 이슈를 선도하여 빠르게 제도화했고 이를 기회 요인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생물다양성 이슈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누리기 위해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애플이 국내 대기업 협력사들에게 RE100을 달성하도록 요청하는 것처럼, 가까운 시일 내에 생물다양성 정책과 성과를 제출해달라는 요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의 정책과 성과가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 혹은 네이처 네거티브(Negative)를 기준으로 평가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네이처 포지티브는 기업의 행동으로 자연의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를 말하고, 훼손되는 경우를 네이처 네거티브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런 평가가 곧 우리 기업에게 다가올 것이며, 비즈니스의 위험과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즈니스 포 네이처(Business for Nature)의 팔라비 칼리타 애드보커시 및 아시아 리드는 “전 세계 GDP의 절반 이상이 네이처 네거티브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며 “자연 리스크는 곧 금융리스크”라고 전했다. ‘비즈니스 포 네이처’는 자연 손실을 역전시키고 지구의 중요 자연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모인 조직과 기업들의 글로벌 연합이다.
칼리타 리드는 자연은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네이처 포지티브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연간 10조달러(약 1경3000조원)에 달하는 사업 기회와 2030년까지 3억95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만 해도 연간 4조3000억달러(약 5599조원)의 경제적 가치와 2억3200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과 금융기관이 아직은 경영 및 투자의사 결정 과정에서 자연 부문을 기후만큼 기민하게 고려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칼리타 리드는 “CDP 자료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95%가 기후가 전략을 세우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으나, 자연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관은 30%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결과가 아직 기업과 금융기관이 자연과 관련하여 데이터나 공시 사례 등이 부족하여,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읽었다.
비즈니스 포 리드는 ‘자연 전략 핸드북’을 발간했다. 핸드북은 기존의 프레임워크인 SBTN, CDP 등의 여러 지침을 기반으로 자연 관련 약속부터 이행, 평가, 공시에 관한 전 과정에 대한 방법 및 권고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웹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기관들은 이처럼 생물다양성과 자연에 관한 지침들을 내놓고 있다. 발제자로 참석한 안나 마리아 에르난데스 살가르 생물다양성과학기구(이하 IPBES) 전 위원장도 생물다양성과 관련한 여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PBES는 2012년 설립된 유엔 산하의 정부간기구로 144개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다.
살가르 전 위원장은 “IPBES는 2016년부터 생물다양성과 관련한 11개의 주요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고, 내년부터 비즈니스와 생물다양성 평가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평가는 생물다양성의 종류별 의존도와 영향을 평가하고 기업의 재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실행된다. 그는 IPBES 웹 페이지에서 해당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연 시장의 활성화, 로컬 데이터와 민간 투자 확보해야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생물다양성과 자연이 기후에 이어 녹색금융 시장에서 활성화되려면, 여러 도전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정보 격차를 해결해야 한다. 생물다양성과 자연 부문은 TNFD와 같은 공시 기준이 나왔지만, 기후 분야만큼 데이터가 충분하게 확보되지 못했다. 박은진 국립생태원 실장은 로컬 데이터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은진 실장은 “기후는 로컬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지만, 자연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TNFD에 따르면, 지역별로 중요한 생물다양성 요소와 영향에서 차이가 있기에 로컬 데이터 확보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태원은 생물종과 관련한 분포도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TNFD에 연계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투자금 확보도 중요한 영역이다. 오일영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한국 고위 협력관은 기후변화와 자연 부문의 투자액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오일영 고위 협력관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기후변화 분야의 투자금은 5800억달러(약 755조원)이고 자연 분야는 1300억달러(약 169조원)가 투자됐다. 즉, 자연에 대한 투자는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의 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일영 고위 협력관은 “자연 부문에서 민간 투자가 활성화 돼야한다”고 진단했다. 같은 해 기후변화 투자금의 56%가 민간에서 이뤄진 반면, 자연분야의 민간투자는 14%에 그쳤다. 자연 분야는 공공 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그는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자연기반해법(NBS) 시장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기반해법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려면, 정부 차원의 로드맵이 제시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일영 고위 협력관은 “미국은 지난해 자연기반해법 로드맵을 발표했고 환경부뿐만 아니라 16개 정부 기관이 참여하여 범부처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기후변화 대응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중요하다면, 생물다양성 부문에서는 자연기반해법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양해준 우리금융지주 수석은 민간 금융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생물다양성 상쇄 크레딧이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양해준 수석은 “현재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들은 생물다양성 상쇄에 대한 규제 조항이 없으며, 호주, 브라질, 독일, 멕시코, 미국이 전체 상쇄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양 수석은 “잠재력이 큰 생물다양성 크레딧 시장을 개발하려는 계획들이 있다”며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수생자원을 대상으로 한 상쇄 크레딧 거래 시장은 32억 5000달러(약 4조원) 규모로 연간 18% 성장률을 보였다. 호주 정부는 자발적 생물다양성 시장을 운영하는데, 이를 위한 가이드와 권장 사항을 제시하기 위한 전문 자문위원회를 설립할 예정이다. 민간 시장에서는 기후 컨설팅 기업 사우스폴이 2018년 탄소 및 생물다양성 크레딧을 출시한 바 있다.
양해준 수석은 “생물다양성 상쇄 크레딧은 그린워싱 논란을 해결해야겠지만,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존, 산림 재원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