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8 첫날,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 공식 출범… 미국 기부금은 UAE의 5분의 1수준

2023-12-01     이재영 editor

기후 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는 개발도상국이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30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막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는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의 공식 출범을 발표했다. 

술탄 아흐메드 알자베르 COP28 의장은 “우리는 오늘 COP 첫날에 합의안을 채택한 최초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COP28 첫날 손실과 피해 기금에 대한 합의안이 채택됐다. / COP28 홈페이지

초기 기금 약 5601억원… 정상회담 진행되면서 기부 약속 이어질 듯

미국 기부금, UAE의 5분의 1 수준으로 적어… 원인은 ‘정치적 압박’

COP28 첫날 30일(현지시각) ‘손실과 피해 기금’에 대한 합의안이 마련됐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개발도상국이 겪는 기후 재난 피해에 대해 선진국이 책임과 보상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보완할 자금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조성됐다. 논의 자체는 1990년대부터 진행되었으나 선진국들의 반대로 진척을 보이지 못하다가, 지난해 COP27에서 격론 끝에 큰 틀 안에서의 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이번 COP28에도 구체적인 자금 출연 국가와 운용 방안을 두고 격론이 벌어질 거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개막 몇 시간만에 세부적인 시행안 합의에 성공한 것이다. 

이를 두고 BBC는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 피해 보상을 위한 30년 동안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논평했다.

초기 기금은 약 4억2900만달러(약 5601억원)에 달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개최국 UAE가 1억달러(약 1305억원), 영국이 최소 5100만달러(약 665억원), 미국 1750만달러(약 228억원), 일본 1000만달러(약 130억원), 독일이 1억달러(약 1305억원), 유럽연합(EU)는 독일이 약속한 1억달러(약 1305억원)를 포함해 총 2억4539만달러(약 3204억원)를 출연하기로 약속했다.

CNN은 미국의 기부금 규모를 두고 UAE의 5분의 1, EU의 1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부끄러운 액수’라며 비판했다.  

가디언 등 외신은 12월 1일(현지시각)부터 본격적인 정상회담 일정이 시작되는 만큼, 다른 국가들에게도 기금 출연 압박이 가해지면서 추가적인 기부 약속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기금 설립을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기후 위기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세계자원연구소(WRI) CEO 아니 다스굽타(Ani Dasgupta)는 “손실과 피해 기금은 재난으로 무너진 집을 복구하고 농작물 피해를 입은 농부들을 지원하며 해수면 상승으로 이재민이 된 이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생명줄이 될 것”이라며 “이번 결과는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분명히 진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국제 기후변화 싱크탱크 E3G의 정책 고문 톰 에반스(Tom Evans)는 ‘부끄럽다’는 비판을 받는 미국의 기부액수를 두고 “미국 대표단이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하원과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상당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기부금이 독일이나 UAE보다 적은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신흥국의 기부 여부, 기금의 지속가능성 등 아직 해결할 문제 많아

합의안이 채택됐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많다. 

먼저 기존 선진국 외 다른 국가들의 자금 지원 여부다. 중국 등 신흥 경제국들은 현재까지 축적된 온실가스 상당 부분이 선진국들의 책임이기 때문에, 먼저 산업화한 국가들이 주로 자금을 출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COP27에 참여한 중국 대표단은 “손실과 피해 해결을 위한 재정적 기여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EU나 미국 측은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이 부유하고 능력 있는 국가들도 기금 마련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재정적 피해 보상을 처음 요구한 것은 1992년 브라질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인데, 30년전 기준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분류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기금의 지속가능성도 문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각) 채택된 합의안에는 4년마다 양허성 대출, 보조금 등을 통해 기금 규모를 유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조달 방식이다. 결국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선진국들은 ‘선도적으로’ 참여해달라고 요청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를 주도한 국가 중 하나는 미국 대표단이다. 미국 기후특사 존 캐리(John Kerry)는 합의안 채택 전 기자 회견에서 “미국은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재난 구호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이 기금에 어떠한 책임이나 새로운 법적 요구사항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제 기후행동 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 International) 글로벌 정치전략 책임자 하르짓 싱(Harjeet Singh)은 “재원 보충을 위한 정기적인 주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기금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우려했다.

운영 기관에 대한 신뢰 확보도 필요하다. 기금은 초기 4년간 세계은행이 관리할 예정이다. 자선단체 크리스천 에이드(Christian Aid) 글로벌 옹호 책임자 마리아나 파올리(Mariana Paoli)는 “개발도상국은 세계은행이 기금의 임시 주관 기관이 된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세계은행은 취약한 지역사회가 기금에 쉽고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기금보다 더 투명하게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