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8 합의문 초안,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 빠져… 내년 COP29 의장국도 산유국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폐막을 하루 앞둔 11일(현지 시각) 로이터, AFP, 블룸버그 등 외신은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문구가 빠졌다고 보도했다.
예정보다 6시간 이상 늦게 발표된 초안은 화석연료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했지만,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COP28 초안, OPEC 주장 “받아쓰기 한 것”… 비판 이어져
중국 지지 여부는 불분명… 그러나 기존 입장 반영된 것으로 보여
COP28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문구가 빠지면서 미국, EU, 기후 취약국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AFP에 따르면, 8일(현지 시각) 공유된 이전의 초안에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11일(현지 시각) 의장국 UAE가 작성해 발표한 새로운 초안에는 “단계적 퇴출” 대신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정의롭고 질서정연하며 공평한 방식으로 화석연료의 생산과 소비를 모두 줄일 것”이라는 완화된 표현이 사용됐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대,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없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신속한 폐기와 신규 허가 제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CCS) 확충 등이 제시됐다.
기후 싱크탱크 E3G의 선임 연구원 앨든 마이어(Alden Meyer)는 ”기본적으로 각국이 원하는 것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단품 메뉴”라고 초안의 내용을 비판했다.
기후운동가이자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Al Gore) 또한 X(구 트위터)에 게시한 글에서 “(COP28 정상회담이) 완전히 실패 직전에 있다”고 비판했다. 고어는 “세계는 최대한 빨리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해야 하지만, 이 불투명한 초안은 OPEC의 말을 그대로 받아쓴 것처럼 보인다"며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석유수출기구(OPEC) 하이탐 알 가이스(Haitham Al Ghais) 사무총장은 6일(현지 시각) 회원국들에게 COP28에서 배출가스가 아닌 화석연료를 목표로 하는 모든 협상은 거부하도록 촉구한 바 있다.
로이터도 소식통을 인용해 UAE가 OPEC의 실질적 지도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화석연료에 대한 언급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존 케리(John Kerry) 미국 기후특사는 “합의문 초안에는 우리가 원하는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며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의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을 촉구해 왔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U 수석 협상가 봅케 훅스트라(Wopke Hoekstra) 또한 초안이 “불충분하고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작은 섬나라연합(AOSIS) 의장 세드릭 슈스터(Cedric Schuster)는 이번 초안이 “우리의 사망진단서”라며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대한 강력한 약속이 없는 문서에는 서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 최고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의 초안 지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로이터는 초안의 일부가 중국의 기존 입장 및 지난 11월 미국과 중국이 서명한 서니랜드(Sunnylands agreement) 기후 협정의 내용 일부와 일치한다고 보도했다.
서니랜드 협정은 ‘단계적 퇴출’ 같은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석유, 석탄, 가스를 재생에너지원으로 신속히 전환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3배 확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번 COP28에서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EU, 기후변화에 취약한 섬나라 등 100여 국은 합의문에 ‘화석연료의 퇴출’을 의미하는 문구 삽입을 추진해 왔다. 반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산유국은 이에 반대해 왔다.
유엔기후정상회의 최종 합의문은 198개국의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COP28은 12월 12일(현지 시각) 폐막될 예정이다.
COP29, 3년 연속 산유국이 개최… 이대로 괜찮나 우려
COP28이 폐막을 앞둔 가운데, 2024년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개최지가 확정됐다.
10일(현지 시각) 로이터는 COP29가 내년 11월 11일~22일(현지 시각)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개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제르바이잔은 OPEC과 기타 산유국 연합체인 OPEC+에 가입해 있으며, 천연가스도 생산한다.
미국 국제무역청에 따르면, 2022년 아제르바이잔 국내총생산(GDP)의 약 47.8%, 수출 수익의 92.5%는 석유와 가스 생산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COP27 이집트, COP28 UAE에 이어 3년 연속으로 산유국이 유엔기후정상회담 의장을 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AP통신은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에서 시위와 시민의 참여가 중심이 되는 국제 정상회담을 3년 연속 개최하게 됐다고 논평했다. 가디언 또한 “아제르바이잔은 경제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COP28 의장국을 산유국인 UAE가 맡으면서 여러 잡음과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COP29 개최를 또 산유국이 맡게 되면서 기후 운동가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 싱크탱크 E3G의 기후변화협약 분석가 앨든 마이어(Alden Meye)는 이번 개최지 선정을 두고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자원연구소(WRI) 책임자이자 바쿠 시민이었던 아니 다스굽타(Ani Dasgupta)는 “그들이 기후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 긍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