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ESG 펀드는 화석연료 투자 전면 금지”… 유럽 금융 유동성 차질 줄지도
유럽의 ESG 펀드들이 수십억 유로의 화석연료 자산을 강제 매각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프랑스 정부가 2025년부터 ESG 및 사회적 책임 투자, 즉 ISR(Investissement Socialement Responsable) 라벨을 달고 운용되는 펀드들의 신규 탄화수소 프로젝트 투자를 금지시킨 것이다. 여기에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셰일가스 등 주요 화석연료 사업이 모두 포함된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번 개정안으로 프랑스 정부의 조치에 따라 유럽 ESG 펀드들이 화석연료 보유분을 모두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ESG 펀드 규정 강화… “화석연료 확대 기업 투자 배제는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필수적”
유럽연합(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등 기후 목표 강화에 나선 가운데, 프랑스가 화석연료 투자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개정했다.
2016년 프랑스는 ESG 투자 장려를 목표로 ESG 국가 인증인 ISR 라벨을 도입했다. 환경 또는 사회적 가치를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펀드들은 마케팅에 ISR 라벨을 자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입 이후 2023년 11월까지 ISR 펀드는 1000개 이상, 자산규모 8000억달러(약 1041조5200억원)를 넘어섰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ISR 라벨 펀드들도 기존 에너지기업 주식을 보유, 신규 화석연료 투자를 지속하자 2021년 10월부터 ISR 라벨 개정을 논의해온 바 있다.
프랑스 재무장관 브루노 르메르(Bruno Le Maire)는 2023년 11월 성명을 발표, “투자 대상에서 석유 및 가스 사업을 확대하려는 기업을 제외하는 것은 기후변화와의 싸움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2025년부터 ESG 펀드로 분류되는 펀드들은 새로운 탄화수소의 탐사, 개발, 정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기업에 투자할 수 없다. 여기에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화석연료 신규 사업이 모두 포함된다.
유럽 내 금융 유동성에 영향 줄 가능성… 투자자 선택지 감소도 문제
프랑스의 이번 조치는 유럽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번 개정안이 유럽 시장의 ESG 펀드 포트폴리오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많은 자산운용사들이 유동성 극대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유럽 전역에서 동일한 ESG 펀드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의 경우, 룩셈부르크나 아일랜드에 거점을 두고 유럽 전역에 확산되기 때문에 더욱 파장이 크다.
투자리서치기업 모닝스타의 글로벌 지속가능성 연구 디렉터 호텐스 비오이(Hortense Bioy)는 이번 조치를 두고 ”대부분의 석유 및 가스기업들은 기존 유전에서 감소하는 생산량을 대체하기 위한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투자자들이 신규 유전 발굴 계획이 없는 석유 및 가스회사를 찾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오이 디렉터는 유럽 내 금융 유동성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자국만의 ESG 규정 신설에 나섰기 때문이다. 비오이 디렉터는 “2025년까지 15개의 서로 다른 ESG 펀드 라벨이 생겨날 전망”이라며 “자산운용사와 펀드매니저들이 프랑스 기준을 거부하고 영국의 기준을 채택하겠다고 하는 등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현재 ISR 라벨이 붙은 1200개 펀드 중 45%는 석유 및 가스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 규모는 70억유로(약 10조571억원)에 이른다. 예를 들어 토크빌 밸류 유럽 ISR(Tocqueville Value Europe ISR), CM-AM 유럽 밸류(CM-AM Europe Value), DNCA 인베스트 아처 미드캡 유럽(DNCA Invest Archer Mid-Cap Europe) 등 주요 펀드들은 최소 13% 이상 석유 및 가스 관련 자산에 노출돼 있다.
블랙록의 지속가능성 펀드인 iShares MSCI USA SRI Ucits ETF도 지난 11월 기준 3억2400만유로(약 4655억원)를 화석연료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블랙록과 BNP파리바는 논평을 거부했다. 반면 아문디는 “ISR의 새로운 기준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 금융업계 관계자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강경한 조치를 낸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이 필요한 만큼 강력하고 빠르게 진행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많은 프랑스 은행들이 ISR 상품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투자자들의 선택권을 줄일 것”, “이것이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프랑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가 “2015년 파리협정의 기후목표에 맞추기 위함”이라며 “새로운 규정에 따라 ISR 펀드는 전체 포트폴리오의 15% 이상은 파리 협정에 따라 탄소 전환 계획을 수립한 기업에 투자해야 하고, 이 비율은 점진적으로 상향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