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SG를 보는 눈】 ESG는 불평등 야기한 자본주의의 '백신'...신영증권 김학균 리서치센터장

실물경제와 자산가격의 괴리, 불평등은 심화 기술낙관론 퍼지던 대공황 전 1920년대의 재현 'ESG'는 유행 아닌 변화한 시대정신

2021-01-14     박지영 editor

‘아는 사람들만 알았던’ ESG에 대한 열풍이 거세다. 경제 기사엔 연일 'ESG'가 오르내린다. 그야말로 돌풍이다. 그러나 한낱 소용돌이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 임팩트온은 ESG를 둘러싼 다양한 생태계 목소리를 릴레이 인터뷰로 풀어낼 예정이다. 자본의 눈, 증권사의 시각에서 포문을 연다.

올해 각국의 관심사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실물경제와 자산가격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로 인해 나타난 불평등은 세계 경제 회복을 K자 반등으로 이끌고 있다. 신영증권 김학균 리서치센터장은 ESG 바람을 거시경제 흐름에서 해석했다.

신영증권 김학균 리서치 센터장. 김학균 센터장은 언론사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수차례 선정되는 등 투자전략분야에서 전문가로 꼽힌다./신영증권

“경쟁은 자본주의의 당연한 속성입니다. 그러나 승자가 너무 많은 몫을 가져가는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죠. 마치 경제대공황이 발생하기 전인 1920년대와 비슷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기술에 대한 낙관론이 많았죠. 자동차, 전기가 기술 낙관론의 원천이었다면 지금은 빅테크, 구글, 아마존이 그렇습니다. 기록적인 버블인 플로리다의 집값 폭등 등 대공황 직전엔 불평등이 커졌습니다. 그 결과물이 대공황이라는 처참한 파괴였죠.”

커져만 가는 불평등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불평등을 촉발했다. 침체된 경기 극복을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문제는 풀린 돈이 자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시작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돈을 풀어왔죠. 근데 한 10년을 보니, 이 돈이 자꾸 자산시장으로 몰렸습니다. 자산가격이 오르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실물경제와 자산가격의 괴리를 만들기 위해선 아니었거든요. 모든 실물 지표는 정체된 상황이 온 겁니다. 자산가격만 상승하면 그 결과는 불평등으로 이어집니다.

김 센터장은 국내에서도 양극화가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가격의 폭등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괴리를 만들어냈다. 부동산 시장 과열과 코스피 지수 3000 돌파가 그 결과다.

“2000년대에는 국내에서 돈이 풀린 규모, 총 통화가 690조원 정도 됐어요. 실물경제의 크기인 명목 GDP는 650조원. 비슷한 규모였죠. 지금은 경제 규모와 풀린 돈의 규모가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지난 6월 기준 시장에 풀린 돈이 2900조원이에요. 반면 명목 GDP는 1900조원에 달하죠. 문제는 풀린 돈이 실물경제로 가는 게 아니라 전부 자산시장으로 가는데 있습니다. 풀린 돈이 전부 자산시장으로 가면서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주식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 있죠. 가진 자와 못 가진 사람의 괴리가 커지고 있는 겁니다.

 

1920년엔 터진 버블

지금은 자본주의 스스로 '백신' 놓는 시대

국부론에서 도덕감정론으로 변화한 시대 정신

김 센터장은 경제 대공황 이후 정부가 경제 주체가 된 뉴딜이 해법이었던 것처럼, 정부의 개입이 커져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이전엔 버블이 터지고 말았지만, 이젠 스스로 백신을 놓는다는 것이다. ‘ESG’는 일종의 백신으로 볼 수 있다. 시대적 요구로 ESG가 떠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민간에 맡겨놨더니 자산시장으로만 흘러갔습니다. 시장을 주체로 한 자원 배분이 실패한 거죠. 이제 정부가 주체가 돼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정부 개입이 이뤄질 겁니다. '국부론'의 시대에서 '도덕감정론'의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부론에선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고 경쟁이 자본주의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최근 10년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건전한 경쟁이 아닌, 불평등을 강화하는 경쟁으로 치달았습니다. 이제 도덕감정론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도 자비심이 필요하다는 거죠. 자비심이라는 백신이 주입된 자본주의가 ESG입니다. 그린뉴딜 같은 정책이 정부 개입의 증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변화한 시대정신의 결과는 ESG로 나타났다. 과도한 승자 독식 시스템에 대한 자성이 도덕감정론의 시대정신을 이끌었다면, 구체적인 해답은 ESG에서 풀어낼 수 있다. 주체는 공적 성격이 강한 자본인 연기금이다.

“ESG 생태계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뤄질 겁니다. 힘을 잃은 민간에게 ESG라는 백신을 놔 민간을 살아나게 하자는 거죠. 정부가 길을 만들면, 민간은 따라올 겁니다. 과거에 없었던 길을 만드는 주체는 공적 연기금이죠. 국민연금이 환경과 거버넌스에 초점을 맞추면, 민간은 그에 맞게 움직일 겁니다. 큰 돈이 ESG로 투입되니까요. 민간에겐 새로운 투자의 기회가 열리겠죠. 유럽과 일본이 ESG 선도주자로 불리는 이유도 민간 시장이 침체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 간 민간에서 혁신이 일어난 곳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 말곤 없었죠. EU의 그린딜, 일본 공적연금 GPIF의 행보가 다 죽어가는 민간 시장을 ESG로 살리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학균 센터장은 침체된 민간에 활력을 돌게한다는 측면에서 ESG는 돌풍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자본주의의 변곡점에 ESG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ESG라는 시대정신이 대두 됐습니다. 비가역적인 변화라 봅니다. 이전의 자본주의로 돌아가긴 힘든, 변곡점을 맞이한 거죠. 규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ESG가 자본주의의 역동성이라고 봅니다. 아주 짧게 끝나진 않을 겁니다.” 

 

국부론이란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쓴 고전 경제학 이론의 대표적인 저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나라의 부(富)를 증대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자유방임 경제를 주장한다.

도덕감정론이란

도덕론에 관한 저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이전에 도덕감정론을 먼저 발표했다. 사람의 이기심이 아닌 타인과 동감하는 능력을 강조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남을 불행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게 골자다. 도덕감정론을 토대로 모두가 기회를 차별받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정리한 것이 국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