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넷제로산업법과 2040년 기후 목표 발표…네 가지 난제 해결해야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리는 넷제로 산업법(NZIA)이 6일(현지 시각) 3자 협상에서 잠정 타결됐다. 유럽의회와 이사회가 이를 승인하고 공식 채택하면 관보에 게재되고, 빠르면 연말에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넷제로 산업법은 태양광, 배터리, 탄소 포집⋅저장과 같은 부문을 전략적 넷제로 기술로 지정하고, EU 역내에서 해당 산업의 제조 역량을 2030년까지 40% 증대함을 목표로 한다. 중국과 미국의 기업들과 경쟁하여 승리할 유럽 기업들을 키우겠다는 말이다.
EU는 역내 산업 활성화를 위해 보조금 지급 요건을 완화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넷제로 산업법, 중국 의존 낮추고 자금 조달 확충해야
EU집행위원회는 전략적 넷제로 기술로 지정된 부문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NZIA는 프로젝트가 소재한 단일 국가의 수입 의존도를 줄이거나 EU의 청정기술 경쟁력을 공급망 차원에서 강화할 수 있다면, 법이 제공하는 혜택을 우선하여 받을 수 있도록 정했다.
예를 들어, EU가 제시한 인허가 패스트트랙은 프로젝트 허가를 9개월에서 늦어도 18개월 이내로 처리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해당 프로젝트가 앞서 언급한 두 기준에 부합한다면, 인허가도 더 빠르게 받을 수 있다. 두 조건에 부합하는 프로젝트는 공공입찰에서도 15~30%의 가중치를 받는 등 우선권을 가진다.
넷제로 산업법 협상에서 의회의 입장을 대변한 크리스티안 엘러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발표에 대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유럽이 처음으로 IRA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2040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엘러의 전망처럼 넷제로 산업법이 IRA 정도의 성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넘어야 할 벽이 높다. 유럽은 태양광 발전 분야에서 전 세계 생산 능력의 8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에 배치된 태양광 패널의 90%는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미국의 IRA에 포함된 3690억달러(약 490조원) 규모의 녹색 보조금이 유럽 생산업체의 이전을 유도할 것이라는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NZIA는 IRA처럼 새로운 보조금을 마련한 게 아닌 기존의 코로나 회복 기금 등을 조정하여 사용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냐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2040년 온실가스 90% 감축…
높은 탄소포집 의존도와 농업 부문 제외에 논란
EU집행위원회는 같은 날 2040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도 발표했다. 2040년까지 유럽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90% 줄이자는 제안이다. 집행위 초안에 따르면, EU는 2031~2050년 화석 연료 수입 비용을 2011~2020년의 연간 평균 대비 2조8000억유로(약 4069조원)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2031년부터 2050년까지 에너지 시스템에 연간 평균 약 6600억유로(약 944조원), 운송 부문에 연간 8700억유로(약 1243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요 투자 분야는 ▲산업 공정의 탈탄소화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에너지 효율성 개선 ▲전기화로의 전환 ▲운송 부문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대체 연료 생산이다. 위원회는 에너지 부문이 2040년 완전히 탈탄소화되고, 운송 배출량은 2040년까지 80%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이 204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 감축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난제들도 제시되고 있다.
하나는 집행위가 제시한 이산화탄소 저장 목표가 실현 가능하냐는 점이다. 집행위는 넷제로 산업법과 연관되어, 2030년까지 연간 이산화탄소 저장 용량을 5000만톤, 2040년까지 2억8000만톤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2050년까지는 연간 최대 4억5000만톤을 저장해야 한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탄소 포집 및 저장 용량이 5000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환경청의 무공해 산업 정책 책임자인 리카르도 니그로는 “탄소 포집 및 저장의 효과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도박을 하는 것”이라며 “2040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크게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농업 부문의 탈탄소화 목표가 제외됐다는 점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초안에는 온실가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농업 분야에서는 2015년 대비 30%를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농업 배출은 EU 온실가스 배출의 약 11%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농업의 탈탄소화가 중요하지만 목표에서 제외된 이유로는, 유럽 정부가 역내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에 굴복했기 때문으로 지목된다. 최근 유럽 전역의 농민들은 유럽연합의 환경 규제와 자유 무역 협정 체결 등에 반발하여 트랙터를 끌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살충제 사용을 줄이겠다는 제안도 철회한 바 있다.
역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기후 싱크탱크 E3G의 자연정책 연구원 피터 드 푸스는 "농부들이 기후변화의 파괴적인 영향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기후정책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본인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톱질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유럽 환경청(EEB) 농업 및 기후 정책 담당관 마티외 말은 “농식품 부문은 EU 기후 야망에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한다”며 “이 결정은 농식품 산업의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궁극적으로는 유럽의 기후 목표와 농민들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