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정부가 고삐 쥔 ESG 정보공개, 남은 과제는 공감(下)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대한 기획을 연재하던 중 금융당국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금융위원회가 2030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기업이 ESG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의 자율이었던 영역을 일종의 규제를 통해 활성화시키겠다는 목표의식이 담겼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소식이나, 아쉬운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금융위원회가 ESG에 공식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8월이다. 이전부터 금융위원회 내부 스터디 등을 통해 개념과 동향 파악 정도는 진행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행보를 보인 건 환경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녹색금융 추진 TF를 꾸리면서다.
녹색금융 TF가 꾸려지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진전됐다. 환경부는 녹색 산업이 무엇인지 분류하는 K-택소노미(Taxonomy)를 제정하겠다고 나섰고, 금융연구원은 어떤 산업이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서 취약한지 분석하는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을 개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녹색산업 육성에 나섰으며, 정부는 친환경 사업에 자금 조달을 위한 녹색금융공사를 만든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그리고 불과 6개월 뒤, 금융위원회는 ESG 정보 공개라는 결정을 내렸다.
숨 가쁘게 달려온 6개월이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정부가 들고 나오는 기후위기 대응 정책마다 난색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내건 날, 경영자총연합회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기업 실태조사’를 발표하며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과도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탄소 감축에 속도를 내기 위해 실시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3기 출발을 앞두고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의 60%가 온실가스 감축 투자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정부의 속도와 기업 인식 간의 괴리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각 경제계 대표는 신년사를 통해 “규제의 속도를 늦춰 달라”고 호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은 “한국 기업에만 족쇄를 채우는 규제나 비용부담을 늘리는 정책은 거두어 달라”고 호소했고,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은 “(탄소중립과 관련해서) 경제계와 소통하면서 수용 가능한 대안을 모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회장도 “기업의 창의적 경영 활동에 장애가 되는 규제는 완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와 기업, 기업과 이해관계자들의 공감
의무화 위해 착실히 빌드업(Build-up) 해왔던 일본
반면 옆 나라 일본의 상황은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스가 총리가 2050년 넷제로를 선언했을 때 우리나라의 전경련 격인 일본 게이단렌은 “파리협정 1.5℃ 목표를 향한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룩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도전이지만, 이는 곧 일본의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엔 민·관·산 기후변화 연합체인 기후이니셔티브(JCI)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선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는 상향되어야 한다”며 “기존 2030년 목표치인 22~24%를 40~50%까지 높여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가 전격적으로 발표한 ESG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도 일본정부와 기업은 2013년부터 함께 논의를 진행해왔다. 오랫동안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2013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쟁력과 인센티브: 기업과 투자자 간 우호적인 관계 구축’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공개와 보고 개선, 비재무정보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왔다. 총 16차례 총회와 하위 3개 분과에 대한 회의를 수차례 진행한 결과 기업과 투자자가 ‘공통의 언어’에 기반한 대화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에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장기적 투자’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 2017년 5월 ‘협력적 가치 창출을 위한 가이던스(Guidance for Collaborative Value Creation)’를 공개했다. 가이던스에는 투자자와 기업이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프레임워크가 담겼다. ▲가치 ▲비즈니스 모델 ▲지속가능성·성장 ▲전략 ▲성과 및 KPI(주요성과지표) ▲거버넌스 6개 항목에 대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면서 ESG 요소를 함께 담아냈다.
기업과 정부, 이해관계자 사이의 공통의 언어를 만들기 위한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8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경영·ESG 투자’ 스터디 그룹을 발족하며 대기업 수장들과 투자자는 물론, 국제기구 수장들까지 모여 6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SDGs 경영의 성공 사례, 기업이 SDGs를 경영에 통합할 때 취해야 할 접근 방식, 투자자가 그런 기업을 평가할 때 취해야 하는 관점 등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정보 공개 기준이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로 통일되는 양상을 보이자, 환경부와 일본 기업은 세계 무대에서 일본의 발언권을 키우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성 장관은 “이번 협약을 기점으로 그동안 삐걱거려왔던 관계를 타파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보공개 기준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정부와 논의해 온실가스 배출량 등 반드시 공시해야 할 항목을 정하는 등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 덕분에, 일본 정부는 ESG 정보 공개 의무화를 자연스럽게 추진해 반발을 최소화했다. 이미 ESG에 대한 기업 인식이 높아진 상태였고, 이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유가증권보고서(사업보고서)에 ESG 정보를 게재한 통합보고서를 발간한 기업은 513개. 2010년부터 연평균 20%씩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한층 진전된 논의도 활발했다. 재무정보와 비재무정보를 하나의 보고서에 기재하는 ‘통합보고(Integrated Reporting)’에 대한 논의다. 국내로 치면 재무보고서, 지배구조보고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정보들을 사업보고서 하나에 담아내자는 뜻이다. 이를 위해 비교가능한 보고 기준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정보 공개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공감이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 방법론에 대한 공감, 속도에 대한 공감 세 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국내에서도 ESG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