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벨트, 격전지 총선 결과 좌우할 스윙보터…기후 투표에는 정당도 없어
기후 유권자는 실재하는 것일까.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제3차 2024 기후총선 집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실재할 뿐만 아니라 총선 결과도 뒤집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녹색전환연구소·더가능연구소·로컬에너지랩으로 구성된 ‘기후정치바람’은 17개 광역지자체에서 각 1000명씩 1만7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분석한 결과들을 집담회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233개 선거구 중 격전지 선정…좋은 기후 정책에 후보 당락 결정
기후정치바람은 전국 선거구 233개 중 기후 유권자가 의원 후보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선거구를 ‘격전지’로 설정했다. 격전지는 2020년 총선의 정당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1당과 2당의 격차가 5~10% 이내인 지역 ▲1위 후보와 2위 후보의 득표율 차가 5~10% 이내인 지역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주목받는 서울의 ‘한강 벨트’도 기후 격전지로 구분됐다. 한강 벨트의 기후 유권자 비율은 강남·송파·강동이 42%, 양천·영등포·동작은 37.6%, 노원·도봉은 36.7%로 해당 선거구에서 기후 공약이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표심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관후 건국대학교 교수는 선거구별 유권자 분석과 관심도 높은 정책을 소개했다. 이관후 교수는 “출마하는 선거구에서 어떤 유권자 층에게 어떤 정책을 제시해야 유리할지를 잘 알아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기후 유권자는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조사 결과 50대, 60대 이상의 남성이 많았다. 또 기후 정책에 대한 입장은 보수정당 지지자는 반대, 진보는 찬성이라는 우리의 선입견을 뛰어넘어 유권자 간 지지 정당 성향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후 격전지, 선거구별 주요 기후 유권자 및 정책 정보는 기후정책바람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후와 민생, 두 마리 토끼 잡는 7대 선거공약 제시…
기후정책 주무관청은 기재부가 맡아야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이번 총선을 위한 기후정책 공약을 제안했다. 이유진 소장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유권자가 요구하는 바를 정치인의 언어로 바꾼 일곱 가지 선거공약 준비했다”며 “이 정책 제안을 중심으로 총선에서 공약이 준비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7대 정책 제안의 기조는 ‘생태복지 사회’의 건설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조치를 하되, 민생의 부담을 경감하도록 생활비를 줄이고 녹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유진 소장은 “이런 기조의 기후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핵심"이라며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환경부, 예산의 방향성은 기재부가 관할하는데 기후 정책을 책임있고 확실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가 주무관청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유권자가 총선 스윙보터…사(死)표 아니라는 믿음 있어야
기후 유권자는 실재 하지만, 총선이 기후 선거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기후 유권자들이 서로를 인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즉, 유권자의 표가 사표(死票)로 의미 없이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이와 관련해서 한 연구를 소개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는 125개 UN기후변화협약 가입국의 13만 명을 대상으로 기후 인식 조사를 하여 지난 9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연구팀의 설문 질문 하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가계소득의 1%를 기부할 생각이 있는가?’인데 응답자의 69%가 기부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응답자가 속한 국가의 국민들 중 가계소득 1%를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평균값으로 43% 정도가 나왔다.
서 대표는 “지난 기후정치바람의 집담회에서 대한민국 사람의 3명 중 1명이 기후 유권자라는 발표를 한 후, 기후 유권자 성향을 가진 분들에게서도 ‘나 외에 본 적 없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며 “네이처의 연구 결과에서도 기후위기를 위해 기부하겠다는 응답자는 69%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행동을 할지에 대한 신뢰는 26% 낮은 만큼 기후 성향 유권자 간 상호 인지가 낮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녹색정의당 영입인재)는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대한민국은 돈이 없어서 기후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라며 “기후 정치는 공동체에 속한 다른 구성원의 이타성을 믿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천호 전 원장에 따르면, 하버드대, 예일대 연합 연구팀은 공공 자산을 다음세대와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10명 중 7명은 미래세대를 위해 자기 몫의 일부를 주겠다고 응답했다. 조 전 원장은 “논문은 우리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제도가 있어야만 공동체에 이타성이 드러난다고 결론지었다”라며 기후 정책 및 제도가 마련된다면 기후 유권자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