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팜오일 수입 금지' vs. 말레이시아 "WTO에 제소", 공급망 이슈 글로벌 무역분쟁으로

2021-01-22     김효진 editor
EU가 환경오염의 이유로 팜오일 수입 규제를 단계적으로 이행함에 따라 말레이시아 정부는 차별적 조치라며 법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픽사베이

유럽연합(EU)의 팜오일(Palm Oil, 야자유)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디젤 연료 수입 금지에 대해 말레이시아 정부가 "말레이시아 경제에 해를 끼치는 차별적 조치"라고 주장하며 최근 WTO에 제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로이터통신, 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팜오일 생산지를 보유한 말레이시아는 EU의 계획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의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레이시아 플랜테이션산업 및 1차상품부(Plantation Industries and Commodities Ministry) 성명서를 통해 밝혔다. 

2019년 초, EU는 팜오일이 원료인 차량용 바이오디젤 연료 사용과 이를 위한 수입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퇴출하기로 선언했다. 팜오일 생산 과정에서 열대 우림이 벌목되고 파괴되어 더 큰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게 이유였다.

한때 팜오일을 통한 바이오디젤은 신재생 에너지로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아 왔다. 4계절 모두 생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팜 열매는 가장 많은 기름을 함유하고 있어 무게당 오일 생산량이 코코넛에 대비해 3배, 대두는 10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팜오일 소비 확대는 농지 확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농지 확대를 위해 무분별한 경작지 개간이 발생함에 따라,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열대우림까지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팜오일 나무 재배에 따른 수질 오염 및 독성물질 배출 등의 문제가 글로벌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뿐만 아니라, 증가하는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아동노동과 강제 노역이 끊임없이 발생하여 인권침해 문제도 드러났다. 

결국 EU는 팜오일 퇴출 권고안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여 단계적인 철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팜오일을 주요 수출 산업이자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정부는 EU의 이러한 조치에 강력히 반발해 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EU를 대상으로 수차례 규제 완화를 요청해왔지만, 친환경 경제 전환 모델인 그린딜을 선포하고 이행 중인 EU는 팜오일 수입을 보다 강력하게 규제하려는 입장을 보여 무역 분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팜오일에 대한 무역 분쟁은 비단 말레이시아와 EU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EU의 규제에 항의하며 2019년 WTO에 이미 제소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팜오일 생산국이자, 바이오디젤을 청정에너지로 주장하며 세계 최초로 팜오일 원유가 30% 혼합된 바이오디젤 사용을 의무화한 나라다. 더 나아가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를 10%까지 인상하겠다는 입장과 더불어 EU가 주도하는 파리기후협정 탈퇴 가능성도 언급해 EU와의 무역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말레이시아 팜오일 생산 1위 업체인 사임다비 (Sime Darby) 수입을 전면 금지해 또 다른 무역 갈등이 예상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사임다비의 노동자 학대 문제가 언론으로부터 제기되자, 이에 대한 조사를 수개월 간 진행해 사임다비 노동자들이 성폭력과 육체적 폭력, 이동 제한 등의 심각한 인권유린에 노출된 증거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을 미국으로 수입하는데 법적, 재정적 위험이 따른다"며 사임다비의 제품 수입을 금지시켰다.

한때 신재생 에너지로 주목받던 팜오일 시장은 현재 엄청난 규모를 형성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경제 성장을 위한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과 친환경 경제 전환이 국제사회에서 보다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팜오일은 '경제 성장'과 '친환경'이라는 기로에 서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가 앞으로 팜오일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