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강제노동 생산 금지법 합의…의혹 아닌 증거 있어야 조사
유럽연합은 강제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에 잠정 합의했다. EU 이사회는 5일(현지 시각) 유럽의회와 집행위원회 간 ‘강제노동 관여 제품 금지’ 규정에 대한 3자 협상이 잠정 타결됐다고 발표했다.
이후 이사회와 의회가 각각 협상안을 승인하면 규정이 발효된다. 시행은 발효가 되고 3년 후에 시작된다. 이 결정은 이사회가 법안을 채택한 지 5주 만에 내려졌다.
EU 상반기 순환 의장국인 벨기에의 피에르 이버스 데르마흐너 경제고용부 장관은 “21세기에도 노예제도와 강제노동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끔찍하며, 새 규정을 통해 이렇게 생산된 제품이 EU 단일시장에서 판매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EU 회원국 한 곳, 판매 금지 결정하면 EU시장 전체에서 폐기
조사는 각 회원국의 관할 당국이나 EU 집행위가 자체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역내는 각국의 관할 당국이 수행하고, 역외 제품에 대해서는 집행위가 조사를 주도할 예정이다.
한 회원국이 특정 제품의 생산 공정에서 강제노동을 확인하면. 해당 제품은 EU 역내 전체에서 판매가 금지된다. 하나의 회원국이 판매 금지 결정을 내리면, 다른 회원국들이 이에 동의하고 따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말이다. 금지 결정이 난 제품들은 당국이 수입 통관 시 당국이 압수한다. 시장에 유통된 제품들은 폐기 처분된다.
다만, 이 결정에 따라 중요 제품의 공급 위험이 발생할 경우에 관할 당국은 해당 제품을 폐기하지 않고, 기업이 공급망에서 더 이상 강제 노동이 없음을 입증할 수 있을 때까지 공급을 보류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폐기 명령은 해당 제품으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의 일부가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졌으면, 해당 부품만 폐기하고 완제품인 자동차는 폐기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완제품에서 문제 부품이 분리되지 않으면 전체 제품을 폐기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토마토가 케첩에 사용됐음이 확인되면 완제품인 케첩을 폐기해야 한다.
의혹 아닌 증거 있어야 조사 가능...
미국 강제노동 금지법보다 영향력 약할 것
이 법안은 미국의 위구르 강제 노동 방지법(UFLPA)의 유럽 버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미국처럼 중국의 신장 지역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강제노동이 벌어지고 있는 역외 지역의 제품에 대해서도 법을 적용하므로 사실상 중국을 저격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미국의 UFLPA보다는 제재 강도가 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미국과 EU의 규제법이 제품 조사에 착수하는 기준에서 차이가 벌어진다고 짚었다. EU 협상안은 해당 제품에 강제 노동이 사용됐다는 충분한 증거를 확인해야 당국이 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강제노동에 대한 의혹만 있어도 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
유럽연합이 신장 지역을 특정하지 않은 이유로는 EU의 법안이 특정 국가를 차별하지 않음으로써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준수하도록 보장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으로 읽힌다.
글로벌 비영리단체인 국제반노예연대 (Anti-Slavery International)의 EU선임고문인 엘렌(Hélène de Rengerve)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EU 법안은 강제노동이 완전히 문서화되거나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증거를 갖고 결정을 내리기 어렵기에, 미국보다 영향력이 훨씬 적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EU가 “강제노동 금지를 위반했다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엘렌 고문의 우려는 EU의 공급망 실사법인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이 또다시 좌초되면서 실사 제도와 정보 없이 어떻게 강제 노동 방지법을 강력하게 시행할 것이냐는 주장과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