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태 지역 기후재난 손실액 86조원… 보험 가입률은 단 9%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는 가운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재해보험 가입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2위 재보험 중개업체 에이온(Aon)은 2일(현지시각) '2024년 기후 및 재난 보고서(2024 Climate and Catastrophe Report)'을 발표, 2023년 자연재해로 인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적 손실은 650억달러(약 87조원)이며, 이중 91%는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손실이라고 밝혔다.
아태 지역 보험 가입률, 21세기 평균치에도 못 미쳐…
비교적 안전했던 아시아 태평양… 기후변화로 ‘재해 영향권’
미국에 이어 아시아에서도 기후재난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발생한 글로벌 자연재해는 총 398건으로, 경제적 손실은 3800억달러(약 514조)에 달했다. 이중 22%는 미국과 유럽의 강진 및 허리케인 때문에 발생한 손실이다. 특히 2023년 2월 터키와 시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은 2023년 전체 경제적 손실의 4분의 1에 달했다.
아시아 지역 피해도 심각했다. 지난해 중국과 인도는 가뭄으로 인해 650억달러(약 87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는데, 이중 보험에 가입된 비중은 9%인 60억달러(약 8조원)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이 수치가 21세기 평균치인 150억달러(약 20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다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보장격차(protection gap)’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보장격차란 사고나 위험으로 인한 총 손실금액과 보험을 통해 보장되는 손실금액(실제 구매한 보험의 보장금액) 간의 차이를 의미한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재난은 홍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홍수는 지난 4년 연속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많은 경제적 피해를 일으킨 재해로, 2023년 전체 재난 손실액 중 64%를 차지했다. 홍수로 인한 연간 손실액은 2010년 이후 300억달러(약 40조원)를 넘어섰다.
가장 큰 홍수 피해를 입은 국가는 중국으로, 지난해 300억달러(약 40조원)가 넘는 피해를 입었다. 이중 보험손실액은 14억달러(약 1조8940억원)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한국, 홍콩, 인도, 파키스탄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중 파키스탄과 인도는 홍수로 인해 2900여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대부분의 피해는 보험 가입이 매우 저조한 지역에서 발생했다.
지진 피해도 컸다. 2023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진으로 약 1500명이 사망했으며, 12월에는 중국 간수성(Gansu Province)에서는 사망자만 100여명, 건물 20만채가 파손되기도 했다.
폭염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특히 중국의 경우, 지난해 7월 기온이 52.2도까지 치솟기도 했다. 국가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 기록이었다. 보고서는 “폭염은 가장 심각한 기후 위험 중 하나이지만, 지금까지 보험산업 내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었다”고 지적했다.
에이온 아시아 재보험 솔루션 분석 책임자 브래드 위어(Brad Weir)는 “아시아 지역의 재해 취약성과 저조한 보험 가입률이 비즈니스 리스크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해당 지역은 자연재해 피해가 크지 않아 보험 가입률이나 지역사회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 미비했으나, 최근 기후변화 영향권 내로 들어오면서 피해가 컸다는 분석이다. 위어 책임자는 "보장격차 해소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지속적인 숙제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며 "리스크를 줄이고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리스크 평가 분석 및 기후 모델링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더 이상 재난 안전지대 아니야...
풍수해보험 의무가입 검토 필요성도
이처럼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에도, 우리나라 재해보험 가입률은 여전히 저조한 상황이다.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풍수해보험 소상공인 가입 대상'을 보면, 2023년 6월 기준 61만4367건에 달한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제출한 '풍수해보험 소상공인 가입 실적'은 12만8209건에 불과했다. 약 21.3% 수준의 가입률이다.
농어민의 작물 피해를 보장하는 농작물재해보험과 양식수산물재해보험의 실태도 비슷하다. 태풍, 우박 등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작물 피해를 보장해주는 농작물재해보험은 도입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입률이 2021년 49.4%, 2022년 49.9%로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양식수산물재해보험 또한 폭염으로 수온이 올라 지난해 전국에서 58만마리가 폐사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지만, 보험 가입률은 지난해 말 기준 37%에 머물렀다.
풍수해보험은 1년마다 갱신되는 소멸성 보험으로 매년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며, 환급 없이 이듬해 또 가입해야 한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비용 부담과 재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 가입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한국행정연구원은 지난해 9월 '반복적 수해 발생의 현황과 문제 진단: 관리적 관점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한국의 풍수해 보험 의무화 검토를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