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못하면 통상규제 대응 어려워…재생에너지 100% 전략 컨퍼런스 개최
글로벌 기후 대응은 통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EU와 미국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의제는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와 결합하여 통상장벽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RE100도 다양한 탄소중립 의제와 맞물리는 중요한 요소로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 국내 기업의 RE100 이행 저조에 따라 통상규제 대응력 및 수출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는 여론에 따라, 전문가들이 모였다. RE100은 민간 이니셔티브에서 제시하는 권고사항이지만, 각국의 통상 정책과 맞물려 거부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통상과 환경 정책의 결합…
각국 지원책과 규제책, 상호 영향 주며 고도화 중
세계 경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이번 보호무역주의의 패러다임은 탄소중립을 비롯한 환경 의제와 결합했다는 게 특징이다.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 소장은 “보호무역주의와 탈세계화 속에서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통상과 환경을 연계한 정책이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경에서 관세를 도입하는 규제와 자국 내의 탄소를 감축하는 설비 생산 공장에 보조금을 주는 지원책이 함께 운용되고 있다”며 “채찍이든 당근이든 각국이 정책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유럽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규제를 도입하니 미국은 탄소집약도 조사의무법(PROVE IT Act)와 같은 유사 제도를 마련했고,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는 지원 제도를 운영하니 EU는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이런 기후-통상 연계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세와 지원금을 통해 수익 계산을 잘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성우 소장은 “EU나 미국의 정책이 계속 구체화되고 있기에, EU나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이라면 관세와 지원금을 고려하여 수익 범위를 넘지 않는지를 잘 계산하는게 당연하다”라며 주요 정책 사례로 CBAM, IRA와 함께 프랑스의 녹색산업법안을 소개하며 국가별 정책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런 글로벌 통상 환경에 대한 대응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차성수 경기도 기후환경에너지국 국장은 경기 RE100을 소개하며 “중앙정부가 재생에너지 예산이 42% 정도 대폭 삭감하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의 의무공급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등 정책적으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경기도가 지방정부로서 한계는 많지만 RE100을 선도하여 중앙정부가 정책 방향성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RE100을 공공, 기업, 도민, 산업 주체별로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 경기도는 신규 산업단지는 RE100을 허가 조건으로 내거는 등 강력한 규제책과 기후대응기금을 통한 지원책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한국 정부, RE100 이행방안 혁신…녹색 프리미엄 개선부터 시작
RE100 달성을 위한 방식은 녹색 프리미엄,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구매, 전력구매계약(PPA), 자체 발전 네 가지가 있다. 한국에서는 녹색 프리미엄이 단순하고 저렴한 방식이기에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김강원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신재생정책실 실장은 “녹색프리미엄은 한국전력이 징수 대행을 하고 이 금액을 한국에너지공단에 전달하며, 전액 재생에너지 부문에 재투자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투자를 조건으로 탄소 공개 프로젝트(CDP)로부터 녹색 프리미엄도 RE100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협의가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CDP는 RE100을 주도하는 비영리단체다.
녹색 프리미엄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만큼 제도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 김강원 실장은 “본래 전체 발전량 정보만을 공개했었는데, 이제는 에너지원별로 분리해서 공개할 것”이라며 “기업이 특정 에너지원의 발전량 정보는 기업의 RE100 이행을 지원하는 하나의 제도로서 다방면의 지원책을 정부와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RE100은 앞서 언급한 EU CBAM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신서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CBAM 인증서를 구매하는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며 “바이오매스는 직접 내재배출량, 재생에너지는 간접 내재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도가 아직 완비되지 않은만큼 CBAM이 인정하는 RE100 이행 방안은 한정되어 있다. 신서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재생가능 전력에 관한 법안은 아직 없기에 EU 가이드라인은 PPA로 구매한 경우만 재생 가능 전력이라고 인정하고 있다”며 “REC나 녹색 프리미엄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추후에 나오면 안내해 드리겠다”고 전했다.
정부는 CBAM과 관련해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CBAM에 관한 안내 책자를 발간했고 관련한 문의를 할 수 있는 헬프데스크(1551-3213)를 운영 중이다.
투자는 태양광 발전부터…풍력 발전은 제도 개선과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실행
RE100 달성의 주요 발전원인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동향도 소개됐다. 태양광 발전은 장밋빛 미래가 그려진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었다.
홍근기 고려대학교 교수는 태양광 산업의 가격 하락 폭과 산업에 접목되는 추세를 분석했을 때 전망은 밝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의 가격이 95% 하락했기에 이런 가격 경쟁력은 통상과 연계된 환경 사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린수소, 전기차, 충전 스테이션, 에너지저장장치(ESS), 데이터 센터에도 재생에너지가 필요하고 고속도로에 설치하는 태양광 방음벽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적용점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풍력 발전은 태양광과 달리 정부의 지원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경쟁시장인 대만과 비교해서 국내에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제시했다. 이상준 교수는 “대만은 RE100과 연계해서 이를 선언하고 달성하는 기업에 100MW의 용량을 보너스로 제공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실행하여 기업 PPA를 활성화하고 있다”며 이런 지원제도를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대만은 망 요금의 할인율을 기본요금의 80%, 60%, 40%로 시기별로 줄여나가며 일몰까지 계속해서 줄여가는 방식을 택했고, 한국은 1년만 지원하고 있다”며 “이는 기업이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의 인센티브 제도가 아니기에 최대한 재생가능 전력 가격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서 접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동민 현대차증권 인프라 투자팀 팀장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바라봤다. 조동민 팀장은 “지붕형 태양광이 가격과 인허가 이슈를 볼 때 가장 투자하기 쉬우므로 보유자산을 잘 찾아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지상형 태양광은 인허가가 어렵고, 수상형 태양광은 대규모 공모사업 위주여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풍력발전은 비용도 많이 들고 규모도 커서 전략적 파트너가 필요하다. 글로벌 빅 플레이어(Big player)와 전략적 제휴가 요구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RE100 대응 현주소…녹색 프리미엄 줄이고, PPA 늘리고
기업들도 RE100 달성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어떠한 이행방식을 얼만큼 택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지영승 한국RE100협의체 수석연구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REC를 많이 사용하지만 사업장이 북미 지역에 위치한 경우에 PPA, 아시아는 녹색 프리미엄을 많이 사용한다. 다만, 이 외에도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선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지영승 수석연구원은 “기업마다 탄소배출권 할당기업인지, 유휴부지가 있는지, 내수기업인지 아니면 수출기업인지,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등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RE100 이행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기업 사례들을 소개했다. 해외 기업인 유니레버는 2022년에 RE100을 93% 달성했으며, REC 63%, 녹색프리미엄 16.5%, 직접 PPA로 11%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아는 국내 기업이지만 배출권 할당업체로 녹색 프리미엄을 배제한 전략을 짜고 있다. 자가발전과 REC로 수급하고 미국 사업장에서는 PPA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전력구매계약을 실행하고 있는 기업 담당자들도 현재 상황을 공유했다.
홍수정 아모레퍼시픽 팀장은 “국내 최초로 직접 PPA와 VPPA(가상전력구매) 계약을 체결한 아모레퍼시픽은 RE100의 모든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며 “물론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보하는 내부의 해결 방법을 먼저 실행하고 그 다음에 외부에서 조달하는 전략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팀장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자가발전을 통해 5%의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고 있는데, 이를 2025년까지 10%로 높일 계획이다. 홍수정 팀장은 “녹색 요금제와 REC 인증서 구매는 필요하지만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PPA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RE100 전략을 소개했다.
SK E&S는 2022년에 아모레퍼시픽과 직접 PPA 계약을 맺은 에너지 기업이다. 박영욱 SK E&S 팀장은 “CBAM이 REC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 CBAM 대상 기업들이 PPA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박영욱 팀장은 "국내에서는 가격과 더불어 인허가 등의 절차로 인해 PPA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SK E&S도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AWS(Amazon Web Services)와 직접 PPA를 체결하려고 했으나, 한전의 고객 번호가 요구되는 등의 복잡한 절차로 인해 결국 REC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 팀장은 “충분한 양의 재생가능전력을 단번에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계약을 통해 양을 축적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