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ESG 평가 기준 설명회...기업들은 "불통" 불만 vs. KCGS "기업 의견제출 안해"
지난 9일, 한국ESG기준원(이하 KCGS)이 올해 ESG 평가 항목에 대한 변동사항을 회원기업에 알리는 설명회를 개최했으나, 이를 두고 기업 ESG 담당자들의 불만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ESG평가기관이 평가 항목을 변경할 수는 있지만, 기업이 이에 대해 대응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거나 적어도 기업의 상황이나 실무자 의견을 반영하는 항목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 의견이다. 특히 KCGS의 평가 서비스를 대응하기에는 소통이 거의 안 된다는 불만 여론 또한 계속되고 있다.
KCGS는 국내 경영환경을 반영하고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지속가능경영을 선도하겠다는 목적으로 평가를 진행한다고 홈페이지에 공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방향 소통으로 평가 대응에 필요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게 실무자들의 주요 입장이다.
평가 항목 고도화로 업무 늘었으나…대응 시간은 턱없이 부족
KCGS는 2024년 평가에서 평가항목을 고도화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정책을 발표했다고 한다. 문제는 4월에 변경사항을 발표하고, 5월 말에 세부기준을 배포하고, 6월 말까지 제3자 검증을 받은 보고서를 내야 하는 일정이다.
익명을 전제로 한 실무자 C씨는 "이중 중대성 등 기존의 ESG 정책에 관해 이사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미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승인받은 ESG정책이 있는데, KCGS에 제공할 소명자료가 없을 경우에 동일한 정책을 들고 한번 열기도 어려운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는 게 답답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C 씨는 또 "사회 부문은 이전에 지역사회 공헌활동과 기부금액, 장학 수혜대상 인원만 보고하면 평가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해서 공개하도록 요구받게 됐다"며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론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해야 하니 답답하다. 연초에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평가 가이드라인을 배포해야 평가 대응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가 수준은 높아졌지만, 대응을 위한 준비기간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불만이다. 실무자 B 씨는 “전반적으로 평가 문항수는 늘지 않았으나 요구하는 수준이 상당히 까다로워졌다”며 “6월 30일까지 제3자 검증을 받은 보고서를 내라고 통보받았는데, 세부기준을 5월 20일에 배포한다고 하니 할 일은 많아졌는데 현실적으로 대응할 시간이 너무 없다”고 꼬집었다.
실무자들이 고충을 겪고 있는 변동사항으로는 인정하는 데이터 범위 축소, 이사회 심의 요구가 주요했다. B 씨는 “KCGS는 오직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기업 홈페이지의 내용만을 평가 범위로 제한하고 더이상 CDP보고서와 기업지배구조보고서로 대체할 수 없게 했다”며 “실무자들이 이미 상세한 지속가능경영 관련 정보를 두 보고서에 기재했는데 이 많은 내용을 또다시 일일히 보고서와 홈페이지에 게재하라고 한다. 실무자가 1~2명 있는 기업은 대응할 엄두도 못낼 것”이라고 말했다.
KCGS 평가 신뢰하기 어려워…평가 기준, 투명하게 공개해야
기업 실무자들은 KCGS와의 소통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무자 A 씨는 “점점 불통이 되어가고 있다. 회원사가 늘어서 KCGS가 이에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실무자 입장에서 예전에는 받을 수 있었던 전화와 메일을 통한 피드백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평가 대응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KCGS가 운영하는 평가 자체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지, 회사 차원에서 어디까지 대응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실무자 D 씨는 “지난해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보험업계의 의뢰를 받아 KCGS 평가체계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는데, ESG평가 항목 가중치를 공개하고 있지 않으며, 산업 분류 체계도 세분화돼 있지 못하다고 결론지었다”라며 “KCGS의 불투명한 평가 방식으로 기업들은 평가 점수를 분석하고 개선 전략을 짜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해외 ESG평가사들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와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는 평가 항목별 비중과 가중치를 1% 단위로 공개하고 있으며, 항목별 평가 가중치도 산업별로 다르게 책정하여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D 씨는 “기업은 바뀐 게 크게 없으나 지난해에도 평가 기준이 바뀌고 등급이 심하게 떨어졌다”며 “평가 기준을 모르니 무엇으로 점수를 깎았는지 알 수 없고, 평가 대응을 하려고 해도 점수 분석이 되지 않으니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평가사가 정확히 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기준을 조금 더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무자 E 씨는 “환경 부문의 재생에너지 관련 데이터는 국내와 해외를 구분해서 공개하라고 요구하지만 사회 부문의 지역사회 기여도 항목은 국내외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라며 “기준의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고 소통도 일방적이어서, 평가 항목에 대한 컨센서스가 없으니 현재 이 평가가 기업의 ESG 역량 강화를 지원한다는 목적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싶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ESG 평가에 대한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민간에서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ERM이 발간하는 ‘ESG평가기관에 대한 평가 (Rate the Raters)’보고서와 같은 사례가 있다. 이 보고서는 ESG평가 기관에 대해 다각도로 평가한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ESG평가기관을 규제당국이 직접 규제하여 평가 신뢰도를 높이려는 규제안이 유럽이사회와 의회에서 잠정 합의된 바 있다. 이런 흐름에서 국내 대표 평가사인 KCGS도 평가 방식을 언론이나 기업에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KCGS, 변동사항은 즉각 반영되는 거 아냐…도리어 기업이 의견 제출 안 해 아쉬워
KCGS는 임팩트온에 현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우선 평가 설명회와 관련하여 소통이 부족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펜데믹 이전까지는 대면 설명회로 현장 소통을 진행해 왔으나, 펜데믹 이후에 최소 1000명 이상으로 참석 인원이 많아지면서 장소 대관이 어려워지면서 비대면으로 계속해서 진행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KCGS는 “설명회 현장에서 공통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고 ESG 파트별 질문에 대한 상세 답변은 설명회 종료 후 홈페이지에 Q&A 게시물을 업로드하여 소통하고 있다”고 답했다.
평가문항 개정이 이뤄진 후 준비할 시간이 없고 소통도 어렵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신규 평가문항은 1년 전 시범적용 문항을 통해 공개되며 문항에 대한 의견은 정규 피드백 기간 중 제출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시범적용 문항은 평가모형 개정의 후보군이며 모든 피평가기업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KCGS는 “기업 측에서 요구 수준이 대폭 상향됐다고 문제를 제기한 문항의 상당수는 정규문항이 아닌 시범적용 문항”이라며 “시범적용 문항도 다음 해에 즉시 정규문항으로 전환되는 게 아니며 최소 1년간 피평가기업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친 후 정규문항으로 도입할지 판단한다”고 밝혔다.
평가사는 도리어 기업들이 의견을 충분히 제출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고 언급했다. KCGS는 “모든 피평가기업에 의견 제출 기회를 부여하고 있음에도 상당수 기업들이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 않고 있어 평가기관으로서도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