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 탈탄소 정책, 국가 전략 부재로 11개국 중 8위...향후 3대 과제 해결해야
한국 철강 분야의 탈탄소 정책이 주요 11개국 중 8위라는 분석 보고서가 나왔다. 비영리 싱크탱크 기후솔루션은 ‘2023 철강 정책 평가표 보고서’를 17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는 국제적인 기후 싱크탱크 E3G(Third Generation Environmentalism)가 기후솔루션 등의 파트너 단체와 함께 지난 2월에 펴낸 보고서의 번역본이다.
보고서는 철강 생산 부문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여덟 가지 정책 수단을 각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평가했다. 평가 항목은 ▲정책 방향 및 명료성 ▲정부의 재정 지원 ▲탄소 가격 책정 ▲소재 효율성 및 순환성 ▲녹색 철강 정의 ▲공공 조달 ▲철강용 수소 및 CCS(탄소 포집 및 저장) ▲철강용 청정 전력이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공동 8위의 자리에 올랐다. 8개 부문의 총점 24점에서 한국은 5.75점을 받았다. 보고서는 한국을 ‘아직은 먼 아시아 선두의 자리’라고 총평하며 “한국은 세계적으로 주요한 철강 생산국으로 아시아에서 철강 탈탄소화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화석연료가 지배적인 에너지 부문과 야심 찬 탈탄소 경로 및 지원 정책의 부재로 철강 탈탄소화의 신호는 모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철강 탈탄소화 전략…세 가지 부문에서 보완 필요
우리 정부는 철강 탈탄소화 전략을 발표하여 정책 부문에서는 프랑스와 함께 최고점을 받았다. 다만, 그 전략을 이행한 구체적인 수단에 대해서는 명확성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은 특히 정부 재정 지원, 녹색 철강 정의, 수소 및 CCS와 청정 전력 등 3개 부문에서 성적이 저조했다.
정부 지원금은 수소 직접환원제철 기술과 같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 잠재력이 높은 기술에 투자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 또 저탄소 철강 기술에 개발연구(R&D)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다른 경쟁 국가들과 비교할 때 턱없이 액수가 적다. 설비투자 비용(CAPEX)과 운영비 지원 역시 크게 적은 것으로 평가됐다.
녹색 철강 정의는 녹색 철강에 대한 국가 차원의 표준을 수립, 기후 정책 및 보고 체계와 연결하는 부문이다.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녹색 철강 정의 채택을 위한 실무단이 부재하고, 채택 의지에 대한 공식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는 그린워싱 문제와 직결된다.
2023 평가표는 한국이 “철강 구매자에게 무엇이 ‘녹색(그린)’인지 명확하게 보증하지 않고도 특정 제품 라인을 ‘그린’이라고 마케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고 있다. 보고서는 포스코(POSCO)의 신규 제품 라인인 그리닛 스틸(Greenate Steel)이 그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철강 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국가 전략이 부재한 점이 약점으로 꼽혔다. 석탄 고로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고 보다 많은 전기를 쓰는 방식인 전기로(EAF)와 수소직접환원철(H2-DRI) 등으로 공정을 전환하게 되면, 철강 부문의 재생에너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문제는 한국의 전력 부문은 여전히 수입 화석 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2년 7.15%에 불과하며 현재 계획대로면 2030년에 18.2%로 10%포인트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2022년에 직접 전력 구매 계약(PPA) 분야에서 일부 진전이 있어 소비자들이 재생에너지 발전업체로부터 직접 전기를 구매할 수 있게 됐지만, PPA 단가를 낮추는 등 국내 재생에너지의 경제성과 접근성을 보장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상태이다.
기후솔루션 철강팀의 김다슬 정책 연구원은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기간산업이자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16.7%를 차지하는 철강 산업은 현재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수단인 배출권거래제에서 전량 무상할당을 받으며 탄소 가격을 제대로 지불하고 있지 않다”며 “탄소배출 규제가 점차 강화되는 탄소중립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그린수소 등 녹색 철강 생산의 단가를 낮추고 한국형 수소환원제철기술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빠른 대책과 실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녹색 철강 4대 과제, 시장 구축과 글로벌 규제 합의가 관건
보고서는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네 가지 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첫 번째 과제는 탈탄소화 목표가 강화되고 국제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다. 2024년 이탈리아가 의장국을 맡는 G7 회담에서 철강 탈탄소화 목표를 공동으로 채택할 수 있는 발걸음을 떼야하며, 석탄 기반의 철강 생산시설의 건설을 지양하고 2030년 이후로 수명을 연장하는 시설의 개수를 제한하는 선언을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두 번째 과제는 녹색 철강 시장의 구축에 진전을 내는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국내 시장은 캐나다, 독일, 영국에서 앞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해당 국가가 어떤 규제와 정책을 적용할지를 벤치마킹하는 게 도움이 되리라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은 G7과 기후클럽이 저배출 및 무탄소 철강의 기준을 정하고 정책에서 구현하기 위한 로드맵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제언이 있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과제는 각각 청정에너지 인프라 확대와 녹색 철강 무역을 위한 파트너십과 국제 협력이다. G7은 2022년에 전력 부문의 탈탄소화를 2035년까지 달성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보고서는 이에 신규 청정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단기 투자 전략과 같은 내용을 담은 로드맵을 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녹색 철강의 수요와 생산이 확대되려면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거래부터 광물까지 다양한 부문에서 국가와 민간에서 파트너십이 체결돼야 한다며, 스웨덴 수소환원제철업체 H2 그린스틸이 광산업체인 브라질의 발리(Vale)와 남아프리카의 앵글로 아메리칸(Anglo American)과의 초기계약을 체결한 사례를 소개했다.
보고서 저자인 E3G의 기후 및 에너지 정책 분석가, 알렉산드라 왈리스제브스카(Aleksandra Waliszewska)는 “2024년은 국제 철강 탈탄소화 의제를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며 “녹색 철강 시장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해 표준 설정 및 공공 조달 분야에서 특히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