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시장 또 악재… 셸, 570만개 ‘유령’ 크레딧 판매로 약 2000억원 수익
셸이 수백만 개의 '유령' 탄소감축 크레딧을 판매해왔다는 폭로가 나왔다.
7일(현지시각)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그린피스의 최신 보고서 '핫에어 판매(SELLING HOT AIR)'를 인용, 셸이 실제 포집하지도 않은 탄소 저장량을 근거로 탄소감축 크레딧을 판매해 2억캐나다달러(약 1985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앨버타주, 탄소 1톤 저장하면 감축크레딧 2톤 발행해줘…
탄소 감축에 기여하지도 않은 크레딧이 판매돼
이번 사태는 캐나다 앨버타주의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지원 사업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앨버타주는 석유 및 가스업계의 배출량 감축 촉진을 목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기업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CCUS 시설을 도입,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면 보상을 해주는 정책이다.
문제는 보상 조건이다. 그린피스 캐나다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저장한 탄소량에 따라 판매할 수 있는 크레딧 비율은 1 대 1이 아니라 2 대 1이었다. 앨버타주 정부가 CCUS 기술에 대한 인센티브의 일환으로 셸의 퀘스트(Quest) 공장에서 실제 포집한 탄소량의 두 배에 달하는 탄소감축 크레딧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초에 셸이 요구한 비율은 3 대 1이었다.
앨버타주에서 유일하게 CCUS 시설을 운영하던 셸은 실제 저장한 탄소량보다 두 배 많은 양의 탄소감축 크레딧을 앨버타주 탄소시장에 판매, 2억캐나다달러(약 1985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린피스는 이와 같은 ‘가짜’ 크레딧이 앨버타 탄소시장을 통해 다른 오일샌드(oilsands, 석유가 포함된 모래) 업체에 판매돼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셰브론(Chevron), 캐나다 내추럴리소시스(Canadian Natural Resources), 코노코필립스(ConocoPhillips), 임페리얼 오일(Imperial Oil), 선코 에너지(Suncor Energy) 등이 셸의 가짜 크레딧을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회사들은 그린피스 보고서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그린피스 수석 에너지 전략가이자 보고서 저자인 키스 스튜어트(Keith Stewart)는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감축에 대한 크레딧 판매는 말 그대로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최악의 행위"이며 "이번 사태는 석유 및 가스 부문에 대한 배출량 상한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는 기후위기 가속화에 '세금'이 쓰였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더 심각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셸에 7억7000만캐나다달러(약 7643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여기에 셸이 가짜 크레딧으로 확보한 수익까지 더하면, 셸의 퀘스트 공장 CCUS 사업 비용 중 93%는 납세자들이 지불해준 셈이 된다.
앨버타주 주 수익원은 ‘화석연료’… 2대 1 계약은 CCUS 기술 촉진
앨버타주가 이처럼 화석연료 업체에 유리한 조건으로 보조금 계약을 체결한 배경에는 해당 기업들로부터 받는 막대한 ‘로열티’가 있다. 앨버타주에 따르면, 앨버타주의 오일샌드에는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석유가 매장돼 있다. 주 정부는 2022~2023년 기준 기업들로부터 석유 추출을 허용하는 대가로 약 170억캐나다달러(약 16조8745억원)의 로열티를 받고 있다. 앨버타주 경제의 석유산업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의미다.
따라서 앨버타주는 '더러운 석유'라는 오일샌드를 향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CCUS 기술을 지원해왔다. 2008년에는 2020년까지 3000만톤, 2030년까지 7500만톤의 탄소를 포집하겠다는 기후 목표를 수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CCUS 기술에 반대하는 그린피스는 2022년 셸의 퀘스트 CCUS 시설이 포집한 탄소는 100만톤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그린피스와 셸은 법정 소송 중이다. 2023년 9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아프리카 북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셸의 유조선에 몰래 탑승, 노르웨이까지 이동하며 시위를 벌이자 셸이 그린피스에 210만달러(약 28억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스튜어트 그린피스 전략가는 "이 모든 것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합법적인 것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며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을 통한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셸은 "CCUS 기술은 탄소 감축이 어려운 산업의 탈탄소화를 돕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시장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