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선 회수 중인 통신 기업들...새로운 사업의 기회 될까?
구리는 전기제품부터 건설, 더 나아가 전기차,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 등의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광물이다. 최근 구리의 생산량 감소로 가격 상승 우려가 높아지면서 통신사의 오래된 구리선을 재활용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의 통신사 AT&T 그룹(AT&T Inc.),영국의 통신사 BT그룹(BT Group Plc), 프랑스의 통신사 오랑주(Orange SA) 및 글로벌 동종 업체들이 자사의 오래된 구리 배선을 재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엔지니어링 서비스 제공 회사 TXO 의 추산에 따르면, 광섬유 케이블로의 전환을 통해 통신사들은 향후 10년 동안 최대 80만톤의 구리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현재 가격으로 70억달러(약 9조6950억원)가 넘는 가치다.
TXO에서 자산 회수 업무를 담당하는 데이비드 에반스(David Evans)는 “우리는 이 모든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BT와 협력하고 있으며 구리 회수에 관해 전 세계 12개 이상의 통신업체와 논의가 진행 중이다. 엄청난 상업적 기회”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AT&T의 부사장인 수잔 존슨(Susan Johnson)은 블룸버그통신에 구리 회수 및 재판매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현재 미국에 4개의 구리 회수 센터와 협력하고 있으며 추가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운영하는 BT의 자회사인 오픈리치(Openreach)는 2030년대까지 최대 20만 톤의 구리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변인은 "구리 케이블을 회수하면 케이블을 추출하고 처리하는 비용을 빼고도 순이익이 발생한다"라고 이메일을 통해 블룸버그에 전했다.
구리선에서 구리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땅에서 케이블을 제거한 후 구리를 벗겨내고 세척해야 한다. TXO의 에반스는 이렇게 추출한 구리의 가격이 톤당 6000~9000달러(약 831만~1246만원)가 될 것이며 추출, 복구 및 처리 비용을 제외하면 이익이 30%를 넘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재활용된 구리는 국내 및 해외 구매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Corp)의 상품 전환 글로벌 책임자인 브랫 올랜도(Brett Orlando)는 “에너지 전환에서 구리 수급은 특히 어려운 점 중 하나다. 구리의 부족으로 인해 기업들은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곳을 살펴보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구리의 신규 생산을 둘러싼 문제들
구리는 EV,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 및 운송 시스템 개편을 위해서 꼭 필요한 광물이다. 국제구리협회(ICA)가 주도하는 국가별 회원사 네트워크인 구리연합(Copper Alliance)에 따르면 전기 자동차는 휘발유 자동차보다 2배 이상 많은 구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세계 최대의 구리 주요 생산 업체인 러시아의 노르니켈(Nornickel)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S&P 글로벌 인사이트(S&P Global insight)를 통해 재생에너지 부문에서는 2035년까지 연간 구리 수요가 지금의 두 배인 540만미터톤(mt)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현재 해상 및 육상 풍력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구리의 양은 2022~23년 기준 연간 30만~40만미터톤이다.
블룸버그 NEF(BloombergNEF)는 구리에 대한 연간 수요가 2040년까지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채굴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비용도 많이 들어갈 전망이다.
이어 구리가 많이 재활용되고 있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제구리협회(International Copper Association)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사용된 모든 구리의 30% 이상이 재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불안정한 전망이 나오면서 채굴로 구리 생산량을 높이는 방법도 거론됐다. 지난 20일(현지시각) 국제 에너지 포럼(International Energy Forum, IEF)은 구리 광산과 전기차 전환(Copper Mining and Vehicle Electrification) 보고서를 발표, 글로벌 전기차 전환을 위해서는 신규 구리 광산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광산 개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그러나 신규 광산을 개발하는 데는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환경 오염의 우려도 있다. 구리를 광석에서 추출할 때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지하수에 유입되어 농경지를 오염시키고 야생 동물의 생명을 위협하고 식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 호주 퀸즐랜드 대학 연구진은 구리광석을 가공한 후 남는 폐석의 양이 2020년 연간 43억톤에서 2050년 160억톤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폭락과 산사태를 피하기 위해 부산물을 안전하게 저장하려면 업계에 추가로 1조6000억달러(약 2216조원)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최근 광석 등급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광상을 추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일한 양의 금속을 확보하려면 더 많은 암석을 채굴해야 하고 이에 따른 비용이 증가한다. 구리 채굴에 따른 환경 비용에 대한 조사도 늘어나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을 두고 구매자를 비롯해 기업 경영진은 구리 공급 부족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골드만 삭스 그룹(Goldman Sachs Group)은 연간 8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구리의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1500억달러(약 207조원)를 지출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트라피구라 그룹(Trafigura Group)과 블랙록(BlackRock)은 광산 회사가 구리 채굴에 대한 지출을 충당하려면 가격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인상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