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원의 ESG투자트렌드】기후 유권자가 기후 투자자가 된다면
조금 지난 일이지만 이코노미스트에서 꽤나 논쟁적인 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다. 표지부터 논쟁적이었다. ESG에서 ‘E’만 가위로 뚝 잘라내는 그림이었다. 해당 기사의 논지는 ESG 중에서 환경 이슈,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과 같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측정이 가능한 단순한 지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ESG평가의 한계에 대해서 많이 느끼고 있었기에 일견 공감이 가는 주장이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의견은 아니었다. ESG평가에 대한 다양한 회의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테슬라가 S&P ESG 지수에서 퇴출당한 사건이었다. 당시 일론 머스크는 "정유 회사는 들어가고 테슬라가 퇴출되는 게 적절하냐"며 매우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여기서 ESG평가지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ESG투자’라는 용어가 점차 힘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위세를 넓히는 후보가 있는데 바로 ‘기후 투자’다. 이코노미스트의 논쟁적 주장이 상당한 혜안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위축되는 ESG펀드 시장, 비교적 견조한 기후 펀드 시장
2022년부터 지속적으로 펀드 플로우가 줄어들고 있는 ESG펀드에 비해 기후 펀드의 경우 유입되는 양은 줄었으나 2023년에도 약 400억 달러의 순유입은 유지하고 있어서 비교적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래 그래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기후 전환’ 이라는 카테고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후 전환 펀드는 ESG펀드가 정점을 찍었던 2021년 대비 유사한 수준의 순유입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안티(Anti) ESG 공세로 인해 ESG펀드가 크게 고전하고 있는 미국에서 2023년에 2021년보다 더 많은 순유입을 기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모닝스타는 기후펀드를 위에서 본 차트와 같이 5개 카테고리(저탄소, 기후전환, 녹색채권, 기후솔루션, 청정에너지/기술)로 구분하고 있다. 각각에 대한 세부적인 정의는 모닝스타 자료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Investing in Times of Climate Change, Morningstar). 이 5개 카테고리는 크게 보면 포트폴리오 탈탄소 전략(저탄소 및 기후전환)과 솔루션 투자 전략(기후솔루션 및 청정에너지/기술), 이렇게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녹색채권의 경우 나머지와 성격이 달라 제외하였음).
기후 전환 펀드가 포함된 포트폴리오 탈탄소 전략은 쉽게 말해 포트폴리오의 온실가스 배출량(정확히는 온실가스 집약도)을 낮추는 것이다. 반면, 솔루션 투자 전략은 실물 경제의 탈탄소를 돕는 기술(예: 재생에너지, 2차전지 등)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포트폴리오 탈탄소 vs 기후 솔루션
가장 큰 차이는 온실가스 집약도다. 포트폴리오 탈탄소 전략의 펀드들은 당연히 온실가스 집약도가 낮다. 반면, 솔루션 투자 전략의 경우,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는 유틸리티 기업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온실가스 집약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 아래 그림에서 Y축이 포트폴리오의 탄소집약도로 분포가 아래에 위치할수록 탄소집약도가 낮은 것이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포트폴리오 탈탄소 전략 펀드의 경우 탄소 비용 증가 등과 같은 규제 리스크에 대한 익스포저를 낮추는 전략, 즉 기후변화에 대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솔루션 전략은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기회에 더 포커스를 맞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같은 카테고리 내에서도 펀드별로 전략이 상이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흑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다른 특징은, 포트폴리오 탈탄소 전략의 경우 대부분 섹터 내에서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은 기업을 선택하여 투자하므로, 산업 비중이 벤치마크와 유사하게 유지되는 데 비해, 솔루션 전략은 특정 섹터(에너지, 자동차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포트폴리오 탈탄소의 이와 같은 특징이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기후리스크 관리 강화와 맞물려 최근 포트폴리오 탈탄소 전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것이 최근 기후 전환 펀드에 대한 자금 유입이 늘어난 주된 이유로 추정된다. 특히 기후 전환 펀드는 포트폴리오 탈탄소와 동시에 솔루션 투자가 일부 혼합되는 경우가 많아, 기회 추구 요인도 있다는 점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2.6조 ETF 론칭의 주역, 기후 전환 ETF
작년 4월 나스닥에서 한 ETF가 20억 달러(약 2조7814억원) 규모로 론칭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ETF의 투자 전략이 바로 ‘기후 전환 펀드’였다. 섹터 내에서 상대적으로 집약도가 적은 기업, 그리고 충실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수립된 기업에 주로 투자하며, 여기에 더해 그린 비즈니스에 대한 기회 요인도 고려하여 투자한다.
이 펀드가 큰 자금을 투자받을 수 있었던 배경도 중요하다. 핀란드의 연금 보험사인 일마리넨(Ilmarinen)이 2035년까지 포트폴리오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수립했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한 투자 전략의 일환으로 이 펀드에 투자한 것이다.
물론 이런 펀드가 기관투자자만을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ESG투자에 대한 관심도 지속되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지난해 말 실시한 글로벌 1000명의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서베이를 진행한 결과가 재미있다. 무려 49%의 응답자가 20%의 이상의 투자자산을 ESG투자에 할당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Anti-ESG의 본산지인 미국에서 오히려 글로벌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55%). 또한 과거 2년, 즉 Anti-ESG가 거세진 기간 동안 ESG투자에 대한 관심이 늘었냐는 질문에 57%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미국의 개인투자자들은 이번에도 역시 글로벌 평균 보다 높은 65%가 관심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기후유권자가 기후투자자가 된다면
아직 국내의 기후펀드는 솔루션 투자 전략 기반의 테마투자에 국한되어 있다. 물론 테마 펀드도 투자 목적에 따라 훌륭한 투자 전략일 수 있으나, 포트폴리오 탈탄소 전략이 갖는 강점(BM대비 낮은 괴리율과 낮은 온실가스 집약도)을 누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후리스크에 민감한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퇴직연금 등 장기간의 투자 지평을 갖는 자금에 기후리스크를 고려하려고 해도 적절한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펀드가 없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만큼 개인투자자의 ESG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거나, 아니면 기관투자자들의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4월 치러진 22대 총선이 눈길을 끌었다. 22대 총선은 기후유권자가 처음으로 등장한 선거였다. 전국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후 의제를 중심으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기후유권자’가 33.5%에 달했다. 물론 기후변화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를 가진 의제들이 있었으나, 경합지역에서는 충분히 선거의 당락을 가를 수 있는 이슈가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민감하게 감지한 정당들은 선거 공약에 기후를 반영했고, 지역구 당선자 254명 중 64명이 기후 공약을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선거에 기후를 연관시킨 것처럼 투자에도 기후를 연관시키는 데 더 관심을 쏟는다면 우리나라의 기후 펀드 시장도 조금은 다른 국면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나아가 본인의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연금에도 기후변화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 생긴다면, 기관투자자의 기후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거대한 손들의 투자 게임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해 보인다. 그러나 투자 밸류체인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손을 이루고 있는 것은 결국 개인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기후 선거의 시대가 기후 투자의 시대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략팀을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