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ESG적 생각】 CSIR(기업의 사회적 무책임)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2024-06-28     임팩트온(Impact ON)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전보다 여러 측면에서 개선이 이뤄졌다지만, 여전히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그만큼 사회적 책임에 소홀한 기업이 적지 않다는 방증일 게다. 

 

CSIR의 맥락에 대한 몰이해와 CSR 담론의 불완전성

CSR은 학계와 언론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키워드다. 그에 반해 CSIR(Corporate Social Ir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 무책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무책임(Irresponsibility)’의 배경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채, 그저 당위적 측면에서 ‘책임(Responsibility)’을 강조하고 호소하는 것에는 한계가 자명하다.

단어 자체만 보면 CSR과 CSIR은 정반대의 개념 같아 보인다. 무책임은 책임의 반의어이고, 영어로 봐도 접두사 IR이 괜히 붙은 게 아닐 터이니 말이다. 물론 학자마다 관점 차가 있다. CSIR을 CSR의 반대 개념어로 보기도 하고, CSIR을 CSR과 독립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CSIR을 어떻게 정의하든, CSIR에 무게 중심을 두고 논의를 이어가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귀하다. 

 

‘무책임’의 넓은 스펙트럼, 그리고 도덕 면허와 도덕 세탁

CSIR을 두 층위로 나눠 볼 수도 있다. 한글로도 ‘무책임’이 규정하는 스펙트럼은 매우 넓지 않은가. 좀 더 적극적인 의미의 ‘악의적 행위’가 있을 수 있고, 보다 소극적인 의미로는 그 어떤 법규도 위반하지 않았지만 ‘좋은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

CSR과 CSIR의 선후관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도덕 면허(moral licensing) 관점에서는 시간상으로 앞선 CSR이 차후 노정되는 CSIR의 면죄부로 기능한다. 과거의 사회적 책임이 현재 혹은 미래의 사회적 무책임에 일부나마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꼴이다. 과거의 비윤리적 행태를 사후에 CSR 등을 통해 만회하고자 하는 것은 도덕 세탁(moral cleansing)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 균형 기제(moral balancing mechanism)는 도덕 면허와 도덕 세탁 모두에서 작동한다.

CSIR을 강조하는 것은 그저 어떤 기업을 ‘단죄’하자는 데 있지 않다. 무책임한 경영 행태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야 수반될 수 있겠으나, CSIR의 행태를 정교하게 분석해 CSIR을 줄여나가자는 메시지가 골자다. 결국은 CSIR이 차지하는 음습한 공간을 CSR에 내주기 위함이다.

 

득표(CSR)와 감표(CSIR)의 이중주

그간 우리는 득표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득표 못지않게 감표 방지도 중요하다. 범박하게 구획하자면 CSR은 득표, CSIR은 감표다. 감표 대책이 마련되어야 득표에 추동력이 붙기 마련이다. 늘 그렇든 득표보다 감표가 더 뼈아프다. 선거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선거 후반부로 갈수록 당 지도부는 ‘말실수 주의령’을 내리곤 한다. 막판의 실언이나 추문 등으로 승패가 뒤집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감표의 가공할 위력이다.

실제로 CSR이 곧 고객 만족도 제고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CSIR은 고객 만족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기업의 사회적 무책임 활동은 고객 만족도와 음의 관계를 가짐)는 연구 결과(오한나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가 2023년 <경영연구>에 발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무책임 활동이 소비자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기업 가시성의 비대칭적 조절효과를 중심으로’ 참고)도 있다. 고객들은 점점 기업 차원에서 주관하는 각종 사회공헌활동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CSR은 기본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고 ‘기본’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으면, 자연히 CSR로 인한 고객 만족, 고객 감동의 상승 잠재력은 기대에 못 미칠 공산이 크다.

반면 CSIR이 주는 부정적 여파는 크다. 미디어도 그 생리상 소비자의 긍정 반응보다는 부정 반응에 더 시선을 둘 것이다. 날카로운 보도가 이어지면 기업의 평판 리스크는 점증하게 되고, 기업을 둘러싼 고객과 이해관계자들의 실망감이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인간이란 본디 이익보다 손실에 민감한 법인데, 득표를 못 할망정 감표라니. 감표는 고객 이탈로 인한 시장점유율 하락, 최악의 경우엔 시장 퇴출까지 야기할 수 있다. CSIR을 사전에 방지 혹은 축소하지 못한 처참한 후과다.

플러스뿐 아니라 마이너스에도 주목해야 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플러스를 늘리려는 것뿐 아니라 마이너스를 줄이려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CSIR이 소거된 CSR 담론은 불완전하며 공허하다. 그런 점에서 CSIR은 더욱 연구되어야 하고, 기업의 평판과 매출 측면에서 감표 요인이 될 만한 것들은 사전에 유기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보다 긴 호흡으로 CSR과 CSIR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김민석 팀장은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전략기획부문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산업통상자원부 2030자문단,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외부전문가 자문위원,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외부 전문위원, 서울에너지공사 시민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