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원의 ESG투자트렌드】 ESG투자의 두 갈래 길
'Who killed the ESG party?' 얼마 전 해외 미디어 파이낸셜타임스(FT)가 만들어 배포한 유튜브 영상의 제목이다. 이 영상은 ESG 투자 열기가 식기 시작한 2022년부터 ESG 투자업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되짚으며, ESG 투자 열풍에 찬물을 끼얹은 ‘범인’을 찾고 있다. ESG 투자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고민해 봤을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도 있고 유익한 영상이다.
영상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안티ESG를 비롯해 ESG 투자에 악재로 작용했던 다양한 이슈들이 나타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상에서 다뤄진 주제들 중 핵심은 'Problems with ESG labelling' 즉, ESG투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ESG 펀드의 열풍 속에서 투자자들에게 ESG 펀드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돈도 벌고, 세상에 좋은 일도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ESG 펀드의 수익성에 의구심이 생겼고, 동시에 ESG 투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ESG 투자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퍼졌다.
ESG 투자의 두 가지 관점
ESG 투자는 크게 보면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수익성 제고다. 즉, ESG 이슈가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둔다. 두 번째는 임팩트다. 기업이 ESG 이슈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다. 과거에는 ‘ESG 투자’ 가 이 두 가지 관점을 아우르면서 뭉뚱그려져서 논의됐었다. 이제는 ESG 투자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면서 이 두 가지 목적에 따라 ESG 투자에 대한 논의가 명확하게 나누어지고 있다.
첫 번째 관점, 즉 ESG 이슈가 기업 성과, 나아가 투자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통합(Integration) 전략’이라고 한다. 통합 전략하에서는 ESG가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른 많은 정보와 함께 ESG‘도’ 고려함으로써 ‘더 많은 지식과 높은 이해력을 바탕으로(Better-informed)’ 투자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목적이다.
ESG 등급은 통합 전략하에서 도착지가 아니다. 출발점이다. ESG 등급으로 크게 한 번 보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슈는 더 깊이 분석한다. “ESG 등급이 높으니 수익성도 좋을 거야”라고 말하면 넘어갔던 시절은 이제 지나가고 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전문지 'Pension and Investment'는 지난달 복수의 자산운용사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투자자들의 ESG 관련 요구가 세밀해지고 있으며, 특히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를 평가하기 위한 더 상세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Investors drilling deeper on ESG as managers strengthen their approaches”)고 보도했다.
이런 흐름의 기저에는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이 있다. 탄소 규제가 경제 패권의 도구로서 세계 주요 경제권역에서 확대되고 있는 상황, 폭염, 홍수 등 물리적 피해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기후 리스크가 재무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수탁자는 재무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고려해야 한다.
올해 2월 영국 정부의 의뢰로 금융시장법위원회가 발간한 ‘연금 기금 수탁자와 수탁 의무: 지속 가능성과 기후 변화 주제에서의 의사결정’이라는 재미없는 이름의 보고서는 아래와 같이 재미있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 연금 기금 수탁자는 타인을 대신해 행동하는 자로서, 수탁자로서 신의성실의 의무를 갖는다.
-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기회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이를 배제한 의사결정은 타당하지 않다.
- 영향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고려하지 않는 것은 수탁자 의무 관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통합전략은 사실 특정 펀드의 투자 전략이라기보다는 수탁자 책임과 맞물려 금융 시장의 투자 프로세스 전반을 바꾸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주로 수탁자 책임을 직접적으로 부담하는 기관투자자의 영역이다.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임팩트의 중요성
반면 임팩트에 대한 관심은 개인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글로벌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조사 결과를 보면 환경 및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ESG 투자를 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라고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동기는 ESG 투자를 향한 역풍이 불던 지난 2년간 줄어들지 않았다. 안티ESG의 본산지인 미국에서조차 개인투자자들의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최근 몇 년간 평균 기온이 지속적으로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전지구적으로 폭우와 폭염이 일상화되고 있다. 심각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곡물 등 다양한 원자재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이러한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더 키울 것이다. 영국의 기후단체 카본 브리프(Carbon brief)에 따르면,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2030년까지 40억 톤의 온실가스가 추가로 배출될 것이라고 한다.
임팩트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임팩트 정보 공시 요구로 나타난다. 지난해 말 JP모건의 주도하에 시티은행, 아문디, 나틱시스 등 시중은행과 국제자본시장협회 등이 참여하여 IDT(Impact Disclosure Task-force)를 발족하였다. 이는 금융기관의 환경 사회적 임팩트 공시를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금융기관이 임팩트 창출을 위해 투자한 금액과 그로 인해 창출된 임팩트를 공개하는 것이 핵심으로, 최종적인 목적은 금융시장에서 지속가능한 투자로 자본을 유도하여 SDGs 달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의 힘을 활용하고자 한다. EU의 지속가능금융액션플랜, 그린택소노미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국가 차원의 노력도 임팩트의 관점에서 ESG 투자와 연결되어 있다.
통합과 임팩트, 세밀한 ESG 데이터의 필요성 증가
다시 정리하면, ESG 투자가 수익성과 임팩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에 실패하면서 통합과 임팩트, 두 갈래 길로 나누어지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관점에서 더 정교한 프로세스가 요구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ESG 등급이 ESG 투자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ESG와 관련된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투자 리스크로서 ESG를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은 아직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주목해야 할 영역은 ESG 데이터 시장이다. ESG를 정교하게 통합하려는 노력과 임팩트를 측정하려는 노력은 결국 ESG 데이터 시장의 발전과 맞닿아 있다. ESG 데이터 시장의 발전 없이는 ESG 투자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글로벌 ESG 데이터 업체는 이런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정 정보에 특화된 업체들도 속속 생겨나는 추세다.
ESG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평가기관 규제와 관련된 논의만 이루어지고 있다. 평가기관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는 물론 규제도 필요하다. 그러나 규제에 대한 관심만큼 ESG 데이터 시장의 생태계 조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ESG 투자는 ESG 데이터 시장이 성숙하는 만큼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G 투자 시장과 ESG 데이터 시장이 발맞추어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략팀을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