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채굴 논란, ISA 신임 사무총장 선출로 국면 전환?

2024-08-06     이재영 editor

2일(현지시각) 제29차 국제해저기구(ISA) 총회에서 브라질 출신의 레티치아 카르발류(Leticia Carvalho)가 신임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브라질은 ISA 이사회 국가 중 하나로, 지난해 제28차 ISA 총회에서 “공해 심해채굴은 최소 10년간 유예해야 한다”며 심해 채굴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현직 사무총장 영국 출신 마이클 로지(Michael Lodge)는 심해 채굴 기업과의 부적절한 커넥션 의혹으로 세 번째 재선 도전에 실패했다. 

 

ISA 신임 사무총장, 심해채굴 반대국 브라질 출신 선출

카트발류 신임 사무총장은 조국 브라질의 심해 채굴 유예 입장에 대해 “ISA 총장으로서 특정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심해 채굴이 국제사회의 첨예한 논쟁거리인 만큼, 사무총장으로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겠다는 의미다. 

카트발류 신임 사무총장은 79표를 득표하면서 34표를 받은 현직 사무총장 마이클 로지에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마이클 로지는 심해 채굴 찬성론자다. 

사무총장 선거 결과와는 별개로 심해 채굴 규제 프레임워크는 지난해 이어 올해 총회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중국, 인도, 가나, 자메이카, 아르헨티나, 태평양 섬나라 등 개발도상국들은 상업적 심해 채굴을 찬성하고 있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캐나다 등은 해양 생태계 보호를 이유로 심해 채굴을 유예하거나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2002년 태평양 한 가운데 위치한 7만5000㎢의 진흙 평원 '클라리온-클리퍼톤 해역(CCZ)'에 묻힌 500조원 규모의 망간단괴 채굴 권리를 확보한 바 있으며, 심해 채굴에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제 해역에서는 광물 자원을 탐사하거나 시험 채굴은 할 수 있지만, 상업 활동을 위한 대규모 채굴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논의가 길어지자 일부 국가들은 유엔 해양법을 근거로 ISA에 2년 내에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최후통첩이다. 

ISA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는 기한은 지난 7월 9일로 종료됐다. 이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심해 채굴 면허 신청을 ISA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광산기업 더 메탈스 컴퍼니(TMC)는 올해 심해 채굴 면허를 신청하고, 승인될 경우 2026년부터 본격적인 채굴에 들어갈 예정이다.  

ISA는 199년 설립된 유엔(UN) 산하 기관으로 공해(公海)상 심해저 광물자원의 개발과 탐사 등을 감독, 해양환경 파괴 방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총 168개국과 유럽연합(EU) 등 회원국 중 36개 국가가 이사회로 선출돼 4년 임기 동안 집행기관으로서 해저 활동에 대한 개별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심해저 자원개발에 대한 8대 투자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아 2009년부터 이사회 국가로 소속돼 활동 중이다.

 

심해채굴, 환경은 물론 산업적으로도 '비경제적'

심해 채굴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육지 채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채굴이 쉬웠던 지표면 인접 광물 매장량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전기차, 태양광, 풍력발전 등 증가하고 있는 광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광맥을 지금보다 더 깊게 파내려가야 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기존 육지 채굴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심해 채굴이 기업들에게 매력저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실제로 전임 ISA 사무총장인 마이클 로지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육상 매장량만으로는 필요한 광물량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심해 채굴은 육지와 같거나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양의 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림벌채도 없고, 광물 운반을 위한 도로 인프라 구축도 필요없으며, 식수도 오염시키지 않는 심해 채굴이야말로 광물 확보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라는 것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심해 채굴이 돌이킬 수 없는 해양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각국 정부나 기업들이 심해에서 캐내고자 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제조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배터리의 핵심 재료인 망간단괴다. 망간단괴는 니켈, 망간, 구리, 코발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자원연구소(WRI)는 바다 곳곳에 망간단괴 매장지가 분포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본토와 거의 비슷한 면적의 클라리온 클리퍼턴 해역(CCZ)만 해도 전 세계 육상 매장량의 5배에 달하는 망간이 매장돼 있다.

심해 자원 분포 지도. 진한 파란색이 망간단괴 매장 지역이다. / WRI

문제는 이러한 망간단괴 등 심해 광물들이 바닷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해는 아직 1%도 탐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22일(현지시각) 영국 BBC는 해저에 위치한 망간단괴가 산소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연구에 따르면, 망간단괴는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와 산소로 분해, 산소를 생성하고 있다. 이는 햇빛이 없어 광합성이 일어날 수 없는 깊은 바다 속에서도 산소가 생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심해 채굴은 환경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영리단체 플레닛 트래커(Planet Tracker) 또한 올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심해채굴로 인한 산업가치 손실이 최대 5천억달러(약 682조7500억원)에 달한다며, 그 이유로는 기술적 복잡성으로 인한 운영비용 증가, 낮은 투자 수익률, 육상 광업 산업 가치 저하 등을 꼽았다.          

한편 심해 채굴 없이도 현재 리튬이온배터리 가격은 전기차 수요 하락으로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미 골드만삭스는 3월 보고서를 내고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전기차용 배터리 가격이 40%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핵심 원재료인 리튬 가격 또한 공급과잉으로 2022년 말 고점 대비 80% 급락,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현재의 공급과잉이 2027년까지 심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전기차 캐즘,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량 증대 등을 꼽았다. 

이에 31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리튬 생산업체 앨버말은 생산량 증대를 위한 호주 공장 확장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앨버말은 공장 인력을 40% 감축하는 등 비용 절감을 위해 사업 운영 구조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