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가격 바닥 치는데… 배터리 재활용 투자는 왜 늘어날까?
리튬 가격이 끝없이 하락하는 가운데, 배터리 재활용 기술의 중요성은 되려 급증하고 있다.
미국 기후산업 컨설팅기업 클린테크그룹(Cleantech Group)은 7일(현지시각) 보고서를 내고 배터리 재활용 기술이 탄소배출량 저감은 물론 안정적인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광물 공급망, 미중 갈등으로 흔들…
중국, 전 세계 희토류 생산 68%, 흑연 가공율은 100%
배터리 재활용이 중요해진 이유는 원자재 공급망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광물 공급망을 지배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JP모건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은 전 세계 흑연 공급량의 100%, 희토류의 90%, 코발트의 74%를 가공했다. 전 세계 희토류 생산 중 68%도 중국산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핵심광물 시장에서 중국의 위상은 가히 압도적이다.
문제는 중국이 독점하다시피 한 광물 자원을 무기화한 데 있다. 2018년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세계가 관세 인상 등 대중국 견제 조치에 나서자, 중국도 광물 공급망을 이용한 보복에 나선 것이다.
이에 각국은 핵심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특히 중국과 대척점에 서 있는 미국은 최근 전기차 시장 둔화 등으로 리튬 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투자를 지속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리스타드에너지(Rystad Energy)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공급망 불안으로 오히려 미국의 리튬 수요는 폭증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배터리 재활용 기술, 안정적인 광물 수급 방안
클린테크그룹은 핵심광물의 안정적인 수급 방안으로 ‘배터리 재활용’을 꼽았다. 최근 주요 광물 가격의 하락세는 단기적이며, 장기적인 수요 증가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미 사용한 폐배터리에서 주요 광물을 추출하는 기술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리튬 수요는 2040년까지 870%, 흑연, 니켈, 코발트 수요도 두 배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클린테크그룹 폐기물 및 재활용부서 책임자 파커 보베(Parker Bovée)는 “베터리 제조업체, 자동차 제조업체, 정유업계는 배터리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에서 배터리 재활용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와 배터리 배출량 저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함이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DOE)는 1일(현지시각) 배터리 재활용 확대와 제조 인프라 구축을 위해 최대 6300만달러(약 857억원)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 또한 북미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2021년 7800만달러(약 1061억원)에서 연평균성장률(CAGR) 19.1% 증가, 2028년 2억6508만달러(약 36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는 정책을 통한 배터리 재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 8월 EU 배터리 규정을 발효, 재활용 원료 사용에 대한 보고 규칙 및 최소 재활용 원료 사용 비중 등을 규정한 것이다. 각 회원국은 2025년 8월까지 EU 배터리 규정에 대한 구속력 있는 법적 조치를 제정해야 하며, 2031년부터는 리튬 재활용이 의무화된다.
한편 중국은 강점이 있는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의 경제성 확보를 목표로 재활용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LFP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크고 무겁지만, 과열 및 폭발 위험성이 낮고 코발트나 니켈을 사용하지 않아 제조비용도 저렴해, 저가의 전기차나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주로 쓰인다.
글로벌 LFP 배터리의 95%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은 재활용 기술을 통한 생산비용 절감으로 현재도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벤처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클린테크그룹은 배터리 재활용 스타트업 투자가 2023년 45억달러(약 6조1258억)를 기록, 2022년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며 대부분의 투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기대로 인해 미국에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투자자로는 제너럴 모터스, 포드, 폭스바겐, 혼다, LG, SK그룹 등이 있다.
한편 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직접 재활용, 습식 제련, 건식 제련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직접 재활용 기술은 배출량이 적으나 전반적인 부품 분류 작업이 까다로우며, 습식 제련은 모든 광물을 액상으로 회수하는 만큼, 화학약품 사용으로 인한 높은 배출량이 단점이다. 건식 제련은 고온을 가해 니켈과 코발트를 회수할 수 있지만, 리튬 회수율은 떨어지며 배출량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