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지역 국가들, 탄소저장 유치에 발벗고 나서... "가스전, 고갈돼도 돈 되네"

2024-08-19     이재영 editor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탄소저장에 적합한 지리적 조건이 새로운 국가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에너지 컨설팅기업 라이스태드 에너지(Rystad Energy)는 보고서를 내고,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 아시아 태평양(APAC) 지역 내 탄소저장 허브 국가 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2년 4월 유엔환경계획(UNEP)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탄소포집 없이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고 밝혔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 또한 ‘Net Zero by 2050’ 보고서에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글로벌 감축 필요량 중 18%는 CCUS 기술이 담당해야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까다로운 '탄소저장고' 조건... 안정적이고 탄소 누출 가능성 없어야

CCUS 기술은 포집한 탄소를 저장하거나 활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지하에 탄소를 격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집한 탄소의 상업적 활용은 아직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탄소저장고’의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첫째, 지질학적으로 안전해야 한다. 탄소 누출을 피하려면 지진이나 단층 활동이 없는 밀폐된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저장고 인근에 지하수가 흐르지 않아야 한다. 지하수가 탄소에 노출되면 수자원이 산성화될 뿐 아니라, 주변 암석이나 광물 등 지질 구조를 약화시켜 누출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셋째, 지하 깊은 곳의 거대한 공간이어야 한다. 지하 800미터 아래에서는 약 31도 이상의 온도와 73기압 이상의 압력이 가해지는데, 이러한 환경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기 쉬운 초임계 상태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초임계 상태란 물질이 임계점 이상의 온도와 압력에 노출돼, 기체의 확산성과 액체의 용해성을 둘 다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초임계 이산화탄소는 액체 형태로 압축돼 부피가 줄어들고, 기체 형태 특성상 지하 깊숙한 좁은 틈까지 들어갈 수 있어 저장, 관리에 유리하다.

즉, 탄소저장 플랜트는 지진에 안전하고 물이 흐르지 않으며 지하 800미터 아래에 거대한 공동이 있는 지역에 건설해야 한다. 보통 고갈되었거나 고갈이 임박한 유전 또는 가스전이 이러한 조건에 해당한다.  

 

지리적 조건 탁월한 호주, 저렴한 비용으로 승부하는 동남아...

한국, 일본은 CCS 사업의 중요한 '고객'    

한국, 일본 등 주요 탄소배출국들은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APAC 지역 중 탄소저장에 유리한 국가들과 파트너십을 체결, 탄소저장을 외주화하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탄소저장 국가 세 곳이 바로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다.

그중 호주는 탄소저장을 위한 지층 발굴 연구개발(R&D) 및 제도적 지원 부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호주 최대 에너지기업 산토스(Santos)는 일본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호주 남부 내륙에 격리하기 위해 일본의 JX석유가스개발(JX Nippon Oil & Gas) 및 에네오스(Eneos)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MOU에 따라 산토스는 2030년까지 연간 최대 500만톤의 탄소를 수입하고, 2040년까지 탄소 수입 규모를 2000만톤으로 확대하기 위한 추가적인 사업 기회를 탐색할 예정이다. 

호주는 한국과도 인연도 있다. 올해 3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호주의 국책연구기관 CO2CRC 함께 2027년까지 호주 오트웨이(Otway) 분지에서 탄소 포집 및 저장(CCS) 연구개발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트웨이 지하에는 고갈된 가스전이 있을 뿐 아니라 염분이 포함돼 있어 수자원으로 가치가 없는 염대수층도 형성돼 있다. 소금물은 투과성이 낮아 탄소 누출을 억제할 뿐 아니라 탄소와 반응하여 탄산염 형태의 광물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탄소 누출 가능성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라이스태드 에너지는 호주를 체계적인 탄소저장 프로젝트 규정을 갖추고 있는 전 세계 유일한 국가로 지목, 향후 CCS 산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탁월한 지리적, 제도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은 탄소저장 파트너십 국가로 호주보다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더 선호하고 있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 운송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탄소저장 비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역별 탄소저장 비용 분석 / 라이스태드 에너지

실제로 말레이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나스(Petronas)는 2022년 이후 APAC 지역에서 체결된 국제 CCS 파트너십 중 60%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CCS 사업 지원을 위한 세액 공제 제도 초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페르타미나(Pertamina) 또한 일본 기업들과 다수의 탄소저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대통령령을 발령, 국제 CCS 프로젝트 유치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싱가포르도 CCS 경쟁에 뛰어들었다. 올해 3월 싱가포르 정부는 엑슨모빌과 셸이 주도하는 S-hub 컨소시엄을 파트너로 선정, 국제 CCS 허브 개발에 나선 바 있다.   

라이스태드 에너지는 향후 APAC 지역 내 CCS 경쟁력은 '저렴한 비용'에서 나올 것이며, 환경단체의 시위, 지역주민들의 반발 등 사회적 리스크가 어떻게 전개될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