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팜 인권 전문가 인터뷰 ②】 루스 음랑가, "인권서약에서 실제 행동으로 넘어가는데 어려움 겪는 이유"

2024-08-21     송선우 editor

‘EU의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이 최종 통과되면서,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공급망 인권관리에 대한 규제가 적용될 예정이다. 국내기업들은 인권실사체계 수립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정부 또한 CSDDD 대응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수출 기업의 실사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 인권리소스센터(BHRRC)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노동 인권 준수를 서약했으나, 글로벌 인권기준에 부합해 인권영향평가나 인권리스크 경감 행동을 수행하는 기업은 3분이 1이 채 되지 않았다. 즉 인권실사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전략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임팩트온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글로벌 톱 NGO인 ‘옥스팜(Oxfam)’과 함께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전과 과제’라는 주제로 오는 9월 5일(목)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인권 실사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전략과 사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임팩트온은 컨퍼런스 개최에 앞서, 옥스팜의 기업인권관리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권실사체계 수립에 대한 옥스팜의 전략을 소개한다.

루스 음랑가(Ruth Mhlanga) 옥스팜 민간섹터 관여팀(Private Sector Engagement Lead) 팀장 인터뷰 

루스 음랑가 옥스팜 민간섹터 관여팀 팀장/ 옥스팜

루스 음랑가(Ruth Mhlanga) 민간섹터 관여팀(Private Sector Engagement Lead) 팀장은 소셜저스티스(Social Justice) 및 성평등(Gender) 분야 캠페인 기획과 기업 관여 등에서 10년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다. WBA(세계벤치마킹얼라이언스)의 인권 긍정영향 평가 자문위원 및 사회 전문가 검토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 영국의 기업 인권환경실사 의무화 법안 제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Q. 영국에서는 중국의 온라인 의류판매업체 쉬인이 인권 문제로 인해 기업공개(IPO)에 차질을 겪는 사례가 벌어지기도 했다. 제조업 기반의 국내기업이 인권관리에 소홀할 경우, 유럽에서 이러한 재무적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의류업계 공급망은 면화공급, 물 사용, 공장 근로환경 등 가치사슬 전반에서 인권관련 사건사고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의 주목도가 더 높았다. 

한국 기업 또한 인권관리에 소홀해 리스크가 심화될 경우, 재무적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다만 제조업, 특히 B to B 기업의 경우 소비자들이 실제 일상에서 해당 제품을 마주하지 않기에, 인권 리스크가 가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업계에 속한 노동자나 이해관계자들은 인권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저렴한 인건비 등 노동 인권을 담보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라면 차후 노동자, 투자자, 정부 등의 압력으로 인해 재무적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Q. EU공급망 실사법 등의 법적 리스크를 제외하고, 기업 인권관리 실패에 대한 재무적 리스크에는 무엇이 있는가? 

공급망 불안이 주된 리스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투자자들이 가치 사슬의 안정성을 중요한 리스크 평가 요소로 본다. 인권 이슈는 공급망 불안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리스크 중 하나로, 대규모 파업이나 노동자 집단 소송 등 예상치 못한 이슈가 발생할 경우 재무적 리스크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공급망 내 인권이슈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이 재무적으로 불안정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이는 투자유치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Q. 온실가스배출, 폐기물 배출량 등 명확한 정량 지표가 존재하는 환경 분야와 달리 인권 분야의 경우 핵심성과지표(KPI)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 인권관리에 있어서 효과적인 KPI를 설정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인권 부문 또한 성평등이나 노동인권 분야에 대한 정량적 지표들이 존재한다. 실제 사회부문 또한 환경 부문과 마찬가지로 데이터 수집에 있어 주의를 요한다. 데이터 수집 대상자의 안전과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포커스 그룹(인구통계학적으로 정의된 소수의 설문 집단)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이 과정에서 임금, 인재유치, 안전보건 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과 고충이 접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피드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이를 지표화하여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Q. 기업과 인권리소스센터에 따르면 많은 국내기업들이 인권에 대한 서약은 수행했으나,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인권 관리에 대한 행동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선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하는가?

먼저 기업이 인권 서약에서 실제적인 행동으로 넘어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이해관계자 관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활동에 실제적인 영향을 받는 노동자, 지역민 등의 이해관계자와의 관여없이 컴플라이언스 차원의 인권법안 준수에만 몰두하게 되면, 인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해 행동 수행에 어려움을 겪게된다. 톱다운 방식의 인권서약 및 전략 수립과 실제 인권문제 발생 현장 간의 괴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공정한 경쟁의 장이 조성되었는가에 대한 여부다. 선도적인 기업들이 인권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반면, 경쟁업체들이 그러지 않는다면 쉽게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을 인상한 윤리적인 기업이 오히려 시장 경쟁력을 잃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정부가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려서,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기업들이 낮은 임금을 주는 경쟁업체들에게 가격에서 밀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인권 문제가 규제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없다면, 가격에 민감한 소비재 산업 등에서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임금을 지급하려는 노력이 있더라도, 경쟁업체들은 더 낮은 임금을 이용해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법률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면, 기업들이 인권을 개선하기가 더 쉬워진다. 이런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을 지지했다. 기업들이 정부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 인권 분야의 입법을 촉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Q. 옥스팜은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와 제3자 인권 감사(Human Rights Audit)가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인권 요소를 관리해야하는지, 제3자 인증기관이나 컨설팅업체에 어느정도까지 의존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 이에 대해 옥스팜은 어떠한 의견을 갖고 있는가?

기업 인권관리의 글로벌 트렌드가 산업계의 자발적 이니셔티브에서 법제화로 넘어간 이유는 자발적 제3자 인권감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 년간 많은 기업들이 감사를 통해 인권 이슈들을 관리했지만, 인권 리스크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 공급망 내 인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때문에 법제화를 통해 다른 방식의 방법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인권 리서치 전문 비영리기구 시프트(Shift)의 보고서는 “기업의 공급망에서 최소한의 작업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매년 수십만 건의 인권 감사가 실시되고 있지만, 근무 시간, 초과 근무, 임금 수준, 결사의 자유 등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감사의 한계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기존의 사회적책임(CSR) 중심 접근방식으로는 광범위한 체계적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또한 지속가능성 중심 접근방식은 기업의 지배구조 및 우선순위에 의해 편향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2013년 발생한 방글라데시의 라나 플라자 참사(의류공장 붕괴로 1000명이 넘는 노동자 사망 사건)는 이러한 체계적 문제가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작업장 내 안전, 열악한 임금, 과도한 근무 시간과 관련된 체계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비용에 극도로 민감한 산업에서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내재되어있다. 첫째,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원인은 단일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다. 둘째, 기업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경우에도, 단독 행동은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할 수 있다. 

노동 기준이 보편적인 운영 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협력업체 감사를 수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을 빈곤의 악순환에 가두는 더 넓은 시스템을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권영향평가(HRIA)의 경우, 중장기적 관점에서 공급망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에 인권리스크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사업장 밖에서 심층 인터뷰를 수행하는 등 이해관계자에게 우호적인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감사를 수행하더라도, 제3자 인증기관에게 모든 절차를 일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이 수집한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감사에서 도출된 데이터를 이해하거나 이를 수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Q. 일부 기업의 경우, 인권개선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하다. 인권개선을 위한 행동계획수립을 처음 시작할 때 중요하게 여겨야할 부분은 무엇인가?

인권관리가 ESG 부서에만 한정되어 기업의 리소스 운용에 제한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ESG가 기업의 사업부서에 내재화되어야 한다. 실제 옥스팜의 기업 교류 경험을 비춰봤을 때, 인권관리체계가 재무부서, 구매부서 등에 내재화될 경우 인권관리 전략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는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옥스팜이 인권 지표나 평가점수에 대해 자문할 때, 가장 먼저 조언하는 점은 인권 분야에 임원급 인사를 선임해 HR, 재무 등 인권 관리 요소가 타 사업부서에도 잘 연계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수립하도록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단계는 이해관계자 관여다. 이는 시간과 리소스가 필요한 절차이며, 이해관계자 관여를 위한 HRIA 수행하는데에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통해 이해관계자와의 양방향 소통 채널과 피드백 수렴과정이 있어야 효과적인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 중요하게 봐야할 점은 이해관계자 관여에 시간과 리소스가 들더라도, 인권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법적, 재무적으로 기업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부분은 동종업계 기업간의 협력이다. 공급망의 인권 리스크 중 다수는 산업차원에서 발생하는 고질적 문제이기 때문에 산업차원의 협력이 큰 효과를 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식품업계의 바나나 주요 수입원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면, 대부분의 식품기업들이 같은 곳에서 바나나 공급망을 구축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경우, 식품기업들이 협력해서 공급망 HRIA를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Q. 이해관계자 관여를 수행할 때, 기업과 입장이 다른 이들과 대화나 협상을 진행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효과적인 이해관계자 관여를 위한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채널 수립이다. 세계벤치마킹 얼라이언스(WBA)의 2024 사회 벤치마크 평가에서 한국 기업들을 살펴보면 오직 2%만이 기업 활동에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와 적절한 관여활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다수가 톱다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과 컴플라이언스 차원의 법안 준수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나 다른 이해관계자 그룹의 피드백이 경영진까지 전달되어 의사결정요소로 활용되는 빈도가 낮다. 결국 이는 일방향 소통으로 이어지기에, 이해관계자 그룹이 불만을 갖게 된다.

두 번째는 HRIA다. HRIA는 공급망 내 이해관계자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남성 감사관이 노동자의 여성인권에 대해 질문한다거나, 관리자가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직원과 면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기업과 직접적 연결되지 않은 독립적 제3자가, 사업장 밖에서 이해관계자 관여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실제, 옥스팜은 글로벌 소비재기업 유니레버와 막스앤스펜서의 공급망 이해관계자와 오랜기간 관여활동을 수행한바 있다. 이를 통해 공급망 내 근본적인 문제와 고충은 무엇인지, 노동인권차원에서 어떠한 이슈가 있는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당 내용을 사측에 전달했다. 그 결과, 유니레버와 막스앤스펜서는 협력사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등 인권 부문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였고, 세계벤치마킹연합의 글로벌 인권벤치마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