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NYSE 상장과 플랫폼 노동자 리스크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다. 애초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12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NYSE 클래스A 보통주 상장을 위해 S-1 양식에 따라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국 주식 거래소는 뉴욕증권거래소(NYSE)·나스닥(NASDAQ)·아멕스(AMEX)로 나뉜다. 이 중 상장 조건이 가장 까다롭고 기준이 엄격한 곳이 뉴욕증권거래소다. 상장 및 유지비용도 많이 들지만,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회수할 34억달러(약 3조7600억원)를 메꿀 어마어마한 자금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NYSE는 세계 최대 증권 거래소로 나스닥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쿠팡이 SEC에 S-1자료를 제출하면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쿠팡의 재무제표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쿠팡의 영업손실은 2018년 1조1650억원에서 작년 5842억원으로 줄었다. 매출액도 2018년 4조4873억원에서 작년 13조2378억원으로 3배 정도 뛰었다. 매출액은 급성장하고 손실액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에 블룸버그는 쿠팡의 기업가치를 300억달러(약 33조원)으로 평가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500억 달러(약 55조4000억원)로 보는 등 해외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S-1 자료서 “쿠팡 파트너는 자사의 위험요소”...정부 내세워 방어하기도
한겨레에 따르면 쿠팡이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신고서에 “쿠팡 파트너(쿠팡플렉스·쿠팡이츠 배달원)는 자사의 리스크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자영업자)로 판정했다”고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쿠팡친구(쿠팡맨)만 직고용하고 있다. 이들이 처리하지 못한 물량은 건당 수수료를 받고 배송하는 쿠팡플렉스가 처리한다. 쿠팡의 음식배달 서비스인 쿠팡이츠의 배달원 또한 플랫폼 노동자다.
쿠팡은 노동자와 독립계약자의 특성을 모두 갖는 플랫폼 노동자를 회사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쿠팡의 증권 신고서를 살펴보면, 회사의 위험요소 가운데 하나로 “독립 배송 파트너(쿠팡플렉스·쿠팡 이츠 배달원)를 사용하는 서비스를 포함한 배송 물류의 특성”을 꼽았다. 이 점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송에 대한 잠재적 책임과 비용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쿠팡이 쿠팡 파트너를 플랫폼 노동자로 정의하는 것과 달리, 전세계적으로는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계약자(자영업자)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 노동재판소와 같은 해 10월 스페인 대법원은 각각 영국 음식배달 플랫폼 기업 ‘딜리버루’와 스페인 업체 ‘글로보’의 배달기사를 독립계약자가 아닌 회사에 종속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쿠팡은 이를 의식했는지 “한국 고용노동부를 포함한 국내 규제기관은 쿠팡플렉스와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를 노동자(employees)가 아닌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로 판정했다”고 명시했다. 또한 “쿠팡플렉스·쿠팡이츠 배달원을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는 것이 법령과 법적 해석에서 어려워진다면 이를 방어·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당사의 사업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은 ESG 중 사회 영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0여명의 기관 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MSCI의 ‘2021 글로벌 기관 투자가 설문조사(Global Institutional Investor Survey)에 따르면 ‘S(사회)’ 투자에 역점을 둘 계획이라고 답한 투자가는 전체의 36%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각각 50%, 48%가 같은 대답을 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불평등이 중요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 많은 글로벌 투자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NYSE로 상장을 했지만, 쿠팡의 잇따른 사망사고와 사회적 불평등을 키우는 파트너들의 노동자 지위 불인정은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