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FBI, 엑손모빌 로비회사의 환경단체 이메일 해킹 혐의 수사
- 부패한 기관으로 낙인찍자...해킹된 문건의 정체 - 7년간 1만3000개 이메일 해킹시도...배후에 대한 의심은 현재 진행형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엑손모빌의 로비회사가 환경단체 이메일을 해킹한 뒤 소송 대응에 활용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부터 시작된 이 해킹 공작은 엑손모빌을 겨냥한 기후변화 관련 소송을 무력화하는 데 사용됐다는 혐의가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7일(현지시각) FBI가 워싱턴 소재 홍보 및 로비회사인 DCI그룹이 환경운동가 수백 명의 이메일을 해킹한 뒤 언론에 유출했다는 제보를 수사하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DCI가 해킹한 문건을 유출 전에 엑손 측에 제공한 정황을 FBI가 포착했다고도 로이터는 전했다.
부패한 기관으로 낙인찍자...해킹된 문건의 정체
DCI그룹은 1996년 공화당계 인사들이 설립했으며, 담배, 통신, 헤지펀드, 에너지 기업들을 고객으로 둔 로비회사다. 엑손모빌은 DCI의 최대 고객 중 하나로, 연간 1000만달러 이상의 거래를 한 것으로 확인된다.
사건은 DCI가 2015년 말 해킹 대상 명단을 작성해 이스라엘 사설탐정인 아밋 포를리트에게 해킹 의뢰를 맡기면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포를리트는 또 다른 이스라엘의 사설탐정이자 인도 해커 조직을 운영한 아비람 아자리에게 해킹을 의뢰했다. 로이터는 2022년부터 아자리를 추적해 온 결과, 7년간 1만3000개가 넘는 이메일 주소를 해킹하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해킹된 문건은 2016년 4월 미국의 미디어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프리비컨에서 기사화했다. 기사는 록펠러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환경단체 회의에서 작성된 메모가 발견된다며, 엑손모빌을 "부패한 기관"으로 규정하고 "정치적 행위자로서 정당성을 박탈하자"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됐다.
엑손모빌은 이 문건을 근거로 "정치적 의도의 마녀사냥"이라며 맞섰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엑손모빌의 변호인 시어도어 웰스는 2018년 뉴욕주 대법원에서 열린 소송에서도 이 메모를 제시하며 "대법원이 에너지 기업을 겨냥한 의제를 추진하기 위해 부당하게 환경단체와 정치적으로 결탁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결국 기각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DCI와 엑손모빌은 2020년에 계약 관계를 끝낸 것으로 확인된다. 엑손모빌은 성명에서 “해킹에 관여하거나 인지한 바가 없으며, 이는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FBI가 DCI그룹이 아닌 엑손모빌도 수사망에 올렸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7년간 1만3000개 이메일 해킹시도...배후에 대한 의심은 현재 진행형
이 사건의 상세한 사항은 캐나다 토론토대학 산하 연구기관인 시티즌랩이 2020년 'Dark Basin(어두운 분지)'라는 제목의 조사 보고서를 통해 대중에 알려졌다.
시티즌랩은 보고서에서 인도 기반 해커들이 6개 대륙의 수천 명을 공격했다고 폭로했다. 그린피스, 우려하는과학자연합(UCS) 등 10개 환경단체가 표적이 됐다.
해커들은 피해자 가족까지 공격했다. 영국의 미디어 가디언에 따르면, 해커들은 직장 동료나 기자로 위장한 이메일로 피싱을 시도했고, 엑손모빌과 관련된 구글 뉴스 알림으로 위장한 수법도 동원했다.
아자리는 개인정보를 해킹해 고객에게 판매하는 해킹 청부업자로 2019년 체포됐다. 그는 2022년 해킹과 사기,신분도용 혐의를 인정했다. 미국 검찰은 그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480만달러(약 67억원)를 벌어들였다고 밝힌 바 있다. 아자리는 8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이 일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날이 올 것”이라며 “지금 밝혀진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자리에게 해킹을 의뢰한 포틀리트는 올해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체포됐다. 검찰은 그가 워싱턴 소재의 홍보 및 로비 회사(DCI)를 위해 있으며, 기후변화 소송에 관련된 인물들을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증거는 없지만 엑손모빌이 정보 유출의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기후 NGO인 기후무결성센터의 커트 데이비스는 정보 유출 건을 두고 "환경운동과 사회에 충격을 줬다"며 "더 큰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