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완성차 업계, 전기차 가격 낮추고 내연기관차 가격 올리는 이유
유럽연합(EU)의 강력한 탄소배출 규제가 2025년 새해부터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EV) 가격을 낮추고 내연기관차(ICE) 가격을 올리는 전략에 나섰다.
17일(현지시간) 전기차 매체 일렉트릭에 따르면, EU는 내년 1월 1일부터 EU는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 상한선을 대폭 낮출 예정으로, 대부분 자동차 회사 전체 판매량의 최소 20%가 전기차여야 한다. 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최대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피할 수 없다. 배출량 상한선은 현재 CO₂ 목표 기준 115.1g/km에서 2025년 93.6g/km로 약 19% 감소한다.
시장 조사업체 데이터포스(Dataforce)에 따르면, 유럽에서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는 대다수 제조사의 배출가스 감소 전망이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2024년 상반기 평균 108g/km를 기록했다.
업계는 규제에 맞서 전기차 판매를 늘리는 동시에 과도한 벌금을 피하려는 움직임이지만, 수익성 악화와 시장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판매 늘려라... "마차라도 만들어야 되나"
EU는 2024년 1월 1일부터 자동차 탄소배출 한도를 대폭 낮춘다. 이에 따라 완성차 제조사들은 전체 판매량의 최소 20%를 전기차로 채워야만 막대한 벌금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기차 판매 비중은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ACEA)에 따르면, 고작 13%에 불과하다.
프랑스 자동차 로비 단체 PFA의 마르크 모르튀뢰(Marc Mortureux) 이사는 “전기차 목표와의 차이가 여전히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과 EV 보조금 감소가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스텔란티스(Stellantis)의 CEO 카를로스 타바레스(Carlos Tavares)가 이사회와의 이견으로 최근 사임한 것도 배출가스 규제 대응 방안을 둘러싼 압박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프랑스 자동차 협회의 루크 샤텔(Luc Chatel) 회장은 지난 10월 파리 모터쇼에서 “전기차를 충분히 팔지도 못하는데 내연기관차까지 벌금을 물려버리면 결국 우리보고 마차라도 만들라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벌금 피하기 위해, 완성차 업계 전략 변화
완성차 업계는 배출가스 규제를 맞추기 위해 내연기관차 가격 인상과 전기차 할인이라는 양면 전략을 선택했다. 독일의 폭스바겐(VW)전기차 모델인 ID.3의 가격을 최근 독일 시장에서 3만유로 이하로 낮추는 등 전기차 판매를 유도하고 있다. 프랑스의 르노(Renault)는 일부 가솔린 모델에 대해 약 300유로(1.6%)를 올렸고, 푸조(Peugeot) 또한 프랑스에서 전기차 모델을 제외한 모든 차종의 가격을 최대 500유로까지 인상했다.
S&P 글로벌의 자동차 분석가 데니스 셰물(Denis Schemoul)은 이러한 전략을 두고 "내연기관차 구매자들이 전기차 구매자에게 간접 보조금을 제공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업계는 규제를 맞추기 위해 배출가스 풀링(pooling)이라는 방법도 동원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 판매 비중이 높은 기업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평균치를 낮추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스즈키(Suzuki)는 오는 2025년까지 중국 지리(Geely)가 소유한 볼보(Volvo)와 탄소배출권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을 통해 스즈키는 벌금 위협을 사실상 해소하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전략은 이미 악화된 자동차 업계의 수익성을 더욱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ACEA의 회장인 루카 드 메오(Luca de Meo)는 EU 규제에 따라 벌금이 150억 유로(약 21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완성차 업계, 과연 EU 규제에 발 맞춰 갈 수 있을까?
유럽 자동차 업계는 중국 전기차의 거센 도전, 팬데믹 이후 판매 부진, EV 기술 전환비용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규제 압박까지 더해진 셈이다. 일부 기업은 내연기관차 가격 인상을 통해 전기차 판매를 촉진하려 하지만, 수요 위축으로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는 기후 목표 달성과 전기차 전환 가속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불가피한 변화라는 평가도 나온다. EU는 자동차 부문의 탄소배출이 전체 온실가스의 15%를 차지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감축하기 위해 도입한 필요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가 자동차 업계의 단기적 수익성에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전기차 시장 확장과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