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SG를 보는 눈】 "키 플레이어는 운용사... ESG=일상" 한화자산운용 크레딧파트 박태우 과장

2021-03-09     박지영 editor

금리가 뛰고 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회사채 발행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역대 최저 금리’로 자금을 빌린 곳이 있다. 내연기관차를 탈피해 미래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혁신 의지를 밝힌 기아다. 기아는 최근 3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진행한 수요 예측에서 2조2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금리는 최고-30bp까지 떨어뜨릴 수 있었다. (1bp=0.01%p)

채권이 변하고 있다. 비단 ESG 채권(녹색 채권·사회적 채권·지속가능채권) 뿐 아닌, 채권 전반에 ESG 투자를 적용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운용사 최초로 “우리가 취급하는 모든 상품에 ESG를 고려하겠다”고 나선 한화자산운용 크레딧파트 박태우 과장을 만나봤다.

Q. 1월에만 현대제철, 현대오일뱅크 등 ESG 채권을 연달아 발행하면서 한 달 만에 누적 ESG 채권 발행 규모 절반을 넘어섰다. 폭증하는 ESG 채권 발행, 어떻게 보고 있나.

잇따른 ESG 채권 발행이 어떤 특이한 현상이라고 바라보고 있진 않다. ‘ESG 채권’에 해당하는 그린본드, 소셜본드, 지속가능본드 등에 집중하기보다는, 채권 투자 철학 전반에 ESG를 필수 요소로 고려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화자산운용이 “우리가 운용하는 모든 펀드에 ESG를 접목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의 테마로만 ESG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거다.

특수 목적 채권인 ESG 채권으로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채권 투자에서 차별화 포인트 만들기가 쉽지 않다. 정의와 사후관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미비하고, 투자 이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반 채권 투자도 한계에 다다른 측면이 있다. 신용 등급 이외에 차별화 지점을 만드는 요소를 발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ESG를 리스크로 적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컨설팅 회사 오션토모(Ocean Tomo) 조사 결과, 1975년 대비 2015년 무형자산의 비중은 17%에서 84%로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더불어 예전엔 ESG 노출 정도가 14% 정도에 그쳤다면 최근엔 80% 이상으로 높아졌다. ESG 관련 사건으로 기업의 피해 수위가 훨씬 높아지고 있는 거다. 회계 부정으로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 회사 엔론과 배기가스 조작으로 파산 직전까지 갔던 폭스바겐의 사태가 대표적이다.

한화자산운용의 ESG-신용등급 통합 방식/한화자산운용 제공

잠재적인 위험을 파악하는 게 투자의 핵심으로 떠올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착안해 ESG 요소를 자체 평가해 신용 등급에 적용했더니 새로운 위험요인이 보였다. 자체 조사 결과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ESG 점수도 높게 나타난 거다. 재무 실적과도 연관돼 기존 리스크 프로필에 큰 변동 없이 ESG 투자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나타났다. 신용등급은 AAA지만, ESG 점수는 낮은 기업을 특정해 포트폴리오에 차별을 줄 수 있었다.

또 채권 투자만의 특이한 단점이긴 한데, 채권투자자는 의결권이 없다. 대상 기업에 직접 관여하기 어려운거다. 그러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 평판에도 바로 충격이 미친다. 이런 평판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도 ESG가 용이한 거다.

 

Q. 한화자산운용은 ESG 통합(Integration)을 적용했다. ESG 투자는 결국 통합으로 가야한다는 평이 많지만, 적용하긴 어렵다.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우리가 강점을 보인다. 지금까지 기존 ESG 투자는 투자 의사결정 단계 마지막에 ‘고려사항’ 정도로 참고해왔다. 근데 이런 물리적인 방식으로만 ESG를 고려해서는 리스크 관리가 쉽지 않다. ESG 등급이 높은 기업에 왜 투자를 해야 하는지, 이 종목은 왜 제외되어야 하는지, 명확한 근거보단 당위에 초점이 맞춰진다.

'ESG 하려면 제대로 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 결정 과정에 ESG를 넣자는 결정이었다. 이를 위해 독자적인 ESG 기준을 도출, 직접 기업 공시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자체적으로 등급을 매겨 리스크를 관리한다.

자체 결과를 보면 ESG 평가기관과 완전히 다른 등급이 매겨지는 기업도 있다. 모 기업의 경우 국내 ESG 평가기관 3곳 중 한 곳의 등급은 E·S·G 각각 A·B·A등급을 기록했지만, 자체 분석 결과 B·B·C등급을 받은 거다. 표면상 드러난 등급만 가지고 투자결정을 하면, 이 기업에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의사결정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구축 단계부터 ESG를 반영하면, 내재된 ESG 리스크 파악이 가능하고, 충분한 의사결정의 근거를 찾게 된다.

결국 이렇게 초기 단계부터 비재무정보를 분석하다보면 ESG 상품과 비ESG 상품을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미 분석한 자료가 있는데 ESG 리스크를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거다. 비재무정보를 투자에 결합한다는 건 물리적인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으로 가야 한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기업마다 이미 ESG 리스크를 발견하고, 분석하는 역량이 있기에 자사의 모든 포트폴리오별 ESG 리스크 총량을 관리할 수 있다. 이게 ESG 통합의 핵심이다.

넓은 커버리지 범위도 우리 회사만의 강점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 상장사를 중심으로 ESG 등급을 매기지만, 사실 채권 발행의 절반 이상이 비상장사다. 커버리지를 넓혀 비상장 채권 발행사 및 정부기관, 공기업까지 평가하고 있다. 면밀한 자료 수집이나 자체 평가 없이 ESG 채권이라고 투자하는 게 오히려 워싱(Washing)이라 생각된다. 

또한 ESG 투자를 착한 투자라고 포장하는 것도 일종의 워싱이지 않을까. ESG 투자는 철저히 투자 성과에 초점이 맞춰진다. ESG 리스크가 있다고 투자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 ESG 등급 대비 얼만큼의 수익을 주느냐가 중요하다. 네거티브 스크리닝, 포지티브 스크리닝 등 ESG 투자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수익 대비 리스크가 ESG 투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Q. 자체 ESG 평가 기준을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했다. 눈 여겨 보는 기준이 있다면.

한화자산운용의 ESG 평가 기준./한화자산운용 제공

물론 요소들마다 중요하지 않는 건 없다. 다만 당장 6개월, 또는 1년 안에 뉴스에 뜰 만한 이슈를 찾자면 ‘탄소배출권’이다. 한국전력이나 발전사들의 경우 석탄 발전을 계속한다면 영업이익의 80%를 탄소배출권으로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포스코도 영업이익의 절반, 시멘트 업종도 영업이익의 30-40%를 내야한다. 관련 사업을 접지 않는 이상 고정적으로 배출권 부채가 잡힌다는 건 회사채 등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슈라고 보고 있다.

탄소 국경세나 탄소세 이슈도 관련 이슈다. 악재라고만 얘기하지만,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는 이슈다. 철강을 예로 들어보자. 경쟁 상대는 중국인데, 우리에 비해 탄소 국경세 대응이 늦었다. EU 입장에서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중국보다 한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EU가 자국 철강 산업을 육성한다고 하긴 했지만, 수일 내에 되는 것도 아니다. 탄소 감축을 경쟁력으로 삼는다면 오히려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중요하게 보는 이슈 중 하나가 거버넌스다. 지분 구조가 아니라, 감사위원회가 영향력을 발휘해서 내부 통제가 잘 되고 있는지, 분식회계와 같은 경영상의 가장 큰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잘 돼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Q. 너도나도 ESG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지금의 ESG, 어떻게 보고 있는가.

작년과 비교해봐도 ESG를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달라졌다. 유럽 기관투자자 발 ESG 관심이 폭발하면서 국내에까지 흘러들어오게 됐다고 본다. 해외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 트리거 포인트가 됐고, 국내에선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기관들의 움직임이 시작되면서부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렇다고 ESG가 새로운 트렌드라거나 자본주의의 변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까지도 너무나 중요한 요소였는데,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넘쳐나는 ESG에 대한 관심은 ESG의 일상화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은 ESG 스폐셜리스트라고 불리지만, 앞으로는 모든 애널리스트가 ESG를 들여다보게 될 거다. 나 또한 지금까지는 크레딧만 봐왔지만, 이젠 ESG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ESG가 자리 잡으려면, 운용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공적연기금이 마중물은 터줬다. 물론 룰 세팅도 중요하지만, 이름부터 ‘비정형 리스크’인데 어떻게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다룰 수 있을까. 결국 효과를 보여줘야 한다. 자금을 다루는 운용사가 제대로 된 ESG 투자를 도입해서 성과를 내주면, ESG 생태계가 자리 잡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