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후 재난 비용 감당 어려워"…EIOPA 의장 경고
유럽연합(EU) 보험 규제 당국이 홍수·산불 등 기후 재난으로 인한 비용 급증으로 정부와 은행이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의 보도에 따르면, 유럽보험연금청(EIOPA)의 페트라 힐케마(Petra Hielkema) 의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가구가 주택 보험 가입이 어려워질 것이며,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 증가로 인해 은행 시스템까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말해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한다"며 "재산 손실이 급증하면서 이를 보상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주택 보험 가입이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주택 건설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힐케마 EIOPA 의장, "정부·은행, 자연재해 비용 감당 어려울 것"
EU 내 자연재해로 인한 연간 피해 규모는 2023년까지 3년 동안 평균 445억유로(약 66조8000억원)에 달해, 이전 10년 평균인 178억유로(약 26조7000억원)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 42년간 EU 내 자연재해로 발생한 9000억유로(약 1350조원)의 손실 중 보험으로 보장된 비율은 약 25%에 불과하며, 최근에는 보험 보장 수준이 더욱 감소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EIOPA는 지난주 EU 보험사들의 자연재해를 대비해 적립해야 하는 자본금을 10%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전체 자본 요구 수준이 약 1% 증가했으며, 보험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힐케마 의장은 "재해 피해 속도, 빈도, 강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이를 어떻게 감당할지 우려된다"며 "각 회원국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는 "은행들도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어 기후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은행들도 점점 더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금융안정위원회(FSB)도 지난달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글로벌 금융 시장에 광범위한 공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손실에 대해서는 결국 정부가 재정 지원
국제적으로도 보험 손실 규모는 확대되는 추세다.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에 따르면,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글로벌 보험 손실액은 1350억달러(약 197조원)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손실에 대해서는 결국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10월 발렌시아 지역 홍수 피해 복구를 위해 100억유로(약 15조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힐케마 의장은 EU 차원에서 공공·민간이 공동 출자하는 재보험 기금을 마련해 자연재해 보험의 비용을 낮추고 보장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보험사들이 위험 경감 조치를 전제로 보험을 제공하는 '임팩트 인수(Impact Underwriting)'와 주택의 화재·홍수 위험 노출도를 평가하는 '위험 라벨링' 도입 등 리스크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이 글로벌 금융 규제 공조에 미칠 영향을 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힐케마 의장은 "지정학적 분열 위험이 매우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캘리포니아 산불과 플로리다 허리케인의 피해를 감안할 때 미국 내 보험 감독 기관들이 리스크 대응에 대한 의지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힐케마 의장은 "정치적 환경과 별개로 감독 당국은 위험 관리를 수행해야 한다"며 "기후 변화로 인해 보험 가입이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