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美에너지기업 상대로 역소송…EU ‘입막음 소송 금지법’ 첫 시험대

2025-02-13     유인영 editor
이미지=그린피스 인터네셔널 X(트위터)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이 미국 화석연료 기업 에너지 트랜스퍼(Energy Transfer)를 네덜란드 법원에 제소했다. 에너지 트랜스퍼가 소송을 남용해 환경 단체를 압박하고 재정적으로 파산시키려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소송은 유럽연합(EU)이 최근 도입한 ‘입막음 소송 금지법’을 적용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11일(현지시각) 로이터,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지난 8년간 지속된 양측 간 법적 분쟁의 연장선으로, 그린피스는 미국 내 소송 대응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과 잠재적 손해배상액을 회수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역소송

그린피스와 에너지 트랜스퍼의 분쟁의 발단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린피스는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Dakota Access Pipeline) 건설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에 에너지 트랜스퍼는 2017년 미국 노스다코타주 법원에 그린피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회사와 은행과의 관계를 손상시키고, 시위대를 선동해 회사 자산을 훼손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해당 파이프라인은 결국 건설됐지만, 에너지 트랜스퍼의 공동 창업자인 켈시 워런(Kelcy Warren)은 2017년 인터뷰에서 “그린피스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그린피스가 이달 말 노스다코타주에서 진행될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3억달러(약 4377억원) 이상의 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

네델란드에 본사를 둔 그린피스는 이번 네덜란드 소송을 통해 미국 소송으로 인한 피해에 대비하고 유럽 내 자산을 방어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채택된 EU의 반(反)슬랩 소송 지침(Anti-SLAPP Directive)을 근거로 법적 선례를 남긴다는 계획이다.

슬랩(SLAPP) 소송이란 ‘전략적 봉쇄 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의 줄임말로, 기업 또는 기관이 공익 활동가나 언론인의 공익적 문제 제기를 위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기하는 '입막음 소송’을 뜻한다. EU의 반슬랩 소송 지침은 슬랩 소송을 남발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소송 절차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슬랩 소송 피해자가 부담한 소송 비용과 손해에 대한 보상 명령을 내릴 수 있다.

 

2010~2023년, 유럽에서 1049건의 ‘입막음 소송’ 제기돼

그린피스는 이번 소송이 최근 환경 단체들을 상대로 한 에너지 기업들의 강경 대응 기조 속에서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반슬랩 소송 연합(CASE, Coalition Against SLAPPs in Europe)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23년 동안 유럽에서 1049건의 슬랩 소송이 제기됐으며, 2023년 한 해에만 166건이 발생했다.

다만, 법률 전문가들은 그린피스가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미국 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33개 주가 남용적 소송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고 있으나, 노스다코타주는 아직 관련 법을 도입하지 않았다.

그린피스 측 변호인 다니엘 시몬스(Daniel Simons)는 “이번 소송은 기업이 법적 소송을 무기 삼아 시민사회를 위축시키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EU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슬랩 소송과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토탈에너지스(TotalEnergies)가 자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정한 그린피스의 보고서에 반박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으나, 프랑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12월에는 셸(Shell)이 제기한 소송에서 그린피스는 합의를 통해 분쟁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