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리스크에도 핵심은 ESG?

2021-03-17     김우경 editor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ESG에 반하는 행동이나 정책을 하는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나타나고 있다. ESG의 형태와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온실가스 감축 대응 안 한다”

네덜란드 정부 상대로 시민단체 행정소송

2015년, 환경문제를 다루는 NGO인 우르겐다(Urgenda) 재단은 네덜란드 정부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네덜란드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에 대한 목표치가 지나치게 낮다는 이유였다. 네덜란드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1990년 대비 20% 감축이었으나,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고려하면 현저히 낮은 목표치라는 지적이었다. 

지적은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우르게발트는 감축 목표치를 25%로 상향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네럴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은 우르헨다의 청구를 인용, 네덜란드 정부에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5% 감축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2018년 진행된 2심, 2019년 진행된 3심에서도 1심 판결을 인용, 확정 결론을 내렸다. 

법원의 판결로 기후위기 대응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재판부는 “생명권과 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에 해당하는 유럽 인권 조약 제2조와 제8조에 따라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용인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일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정부가 일종의 ‘직무유기’를 인정해 지구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데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봤다. 

 

‘공항 제3 활주로 증설’ 지구온난화에 반해

환경단체, 영국 정부 상대 소송

2015년 영국 정부는 히드로 공항의 운항 수용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제3 활주로 증설을 결정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서식지 지침(Habitats Directive) ▲전략 환경 영향 평가지침(Strategic Environmental Assessment Directive) ▲영국 정부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정책에 각각 위반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식지 지침과 영향평가를 위반한 사실이 기각되면서 환경단체는 소송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위반했다는 이유는 인용돼, 판결 당일 국가기후변화위원회는 정부에 “넷제로를 목표로 채택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1년 뒤 영국 의회는 영국의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구속력 없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히드로 공항 증설 계획 또한 사실상 폐지됐다.

 

온실가스 배출로 빙하가 녹았다

손해배상 청구도

기업을 대상으로 한 ESG 소송 사례도 있다.

2015년 11월, 페루 우아라즈 출신 릴루야는 독일 최대 전력 생산회사인 RWE AG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및 위법행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RWE는 기업 운영 과정에서 악의적으로 상당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했고, 이에 따라 지구온난화가 심화돼 우아라즈 근처의 빙하가 녹아 팔카코차 호수가 범람할 위험에 처했다. RWE는 손해 배상하라.”

팔카코차 호수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릴루야와 페루 우아라즈 지방 정부는 상당한 비용을 들여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릴루야는 RWE가 배출한 온실가스를 고려해 범람 대책 비용의 0.47%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독일 에센 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는 “한 기업이 배출한 온실가스와 특정 피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은 불가능하다”며 해당 청구를 각하했다. 그러나 2심에선 판결이 뒤집혔다. 함 고등법원은 “기업도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릴루야에게 증거를 더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RWE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 심화, 팔카코차 주변의 빙하가 녹는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 여부 등을 살피는 등 증거조사 중이다.

 

기업의 과대 선전은 증권법상 사기, 투자자들 집단 소송

미국 뉴욕 연방 법원은 2020년 5월, 지난 2019년 1월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광산 댐 붕괴 사고 관련 투자자 집단소송을 허용했다. 발리(Vale SA)는 브라질의 채광 기업이다.

그동안 발리는 대외적으로는 자사의 건강, 안전 및 환경에 대한 약속을 선전하고 종합 안전 지침 및 지속가능성에 관한 리포트를 구체적으로 홍보해왔지만 안전을 위협하는 수많은 위험 신호들을 무시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발리의 미국 주가는 몇 주간 25%가량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증권법상 사기금지규정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은 역사적으로 사회정책, 인적 자본 관리 등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이번 발리 소송과 관련한 투자자들의 집단 소송을 법원이 허용하는 등의 사례를 볼 때 최근 들어 일부 법원에서 상이한 결론을 내놓고 있어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린워싱 관련 규제 덩달아 등장하기도

2008년 이후 미국 연방거래 관련 위원회(FTC)는 그린워싱 관련 규제를 활발히 하고 있다. 

FTC는 연방거래위원회법(FTC 법)에 의거해 케이마트와 텐더 및 다이나이 등 여러 소비재 회사를 상대로 "친환경 성명(Green Statements)을 발표했지만, 일부 소비자를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FTC는 상거래에서 불공정하거나 기만적인 행위 또는 관행, 불공정한 경쟁을 금지하고 있으며 환경 마케팅에 관한 FTC 가이드에서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

그린워싱 관련 소송은 주법과 연방 랜험법(1946년에 제정된 미국 연방 상표법)에 의해 제기됐다. 랜험법에 의하면 회사가 판매하는 상품 및 서비스와 관련하여 ‘성질, 특성, 품질, 또는 원산지’ 등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광고행위가 금지된다.

제품 포장, 라벨 홈페이지 등을 통한 마케팅에서 녹색을 표방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가이드라인인 'FTC 그린 가이드'를 위배해 제재를 가한 사례도 있었다.

유아용품 업체 문라이트 슬럼버가 자신들의 유아 매트릭스 제품이 유기농이라는 허위 광고를 한 사건과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클린 디젤이라는 표현으로 마케팅하면서 오염물질 배출과 연비에 관해 허위 광고를 한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FTC 그린 가이드 라인에서는 소비자가 오인할 만한 표시나 누락 행위는 기만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노동 착취로 네슬레 소송 당하기도 

식품기업 마스, 노동자 인권 실태 표기 누락으로 시비 붙어

노동 착취에 관한 소송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인권단체인 국제권리변호사들(IRA)은 미 워싱턴DC 연방법원에 아동 노동착취 혐의로 네슬레, 허쉬, 카길, 몬델레스 등 글로벌 식품기업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IRA는 서아프리카 말리 출신으로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농장으로 끌려가 노동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8명의 원고를 대리해 소장을 제출했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노예화되어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농장에서 강제로 일하게 되었고 네슬레가 해당 농장에서 생산된 코코아를 구매하고 농장이 자본, 농기구, 교육 훈련을 제공하며 미성년 노동을 방조하였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외국인 불법행위법에 따라 미국 국내 기업이 불법행위에 대해 방조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2018년 미국에서는 초콜릿 회사 마스를 상대로 제품에 공급업체 소속 노동자의 인권 실태에 관한 표시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제품의 주된 기능 또는 목적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실이 아닌 이상 피고(마스)는 제품에 이를 표시해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그 표시를 누락하여도 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단과는 별개로 향후 ESG 이슈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전반적인 소비자의 인식이 변경되는 등의 변화가 있다면 공급업체 소속 노동자 인권 실태도 표시 의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 법원으로부터 수용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마케팅 자료상 ‘ESG 정보 허위’를 근거로 한 소송

공시 보고서와 홈페이지 또는 마케팅 자료상 ‘ESG 정보의 허위’를 이유로 한 소송 사례도 있다.

2014년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으로 미국에서 약 500개의 낙농업 농장들이 회원으로 있는 미국 낙농업 마케팅 협동조합 다리골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다리골드의 사회책임보고서에 ‘지속가능한 농업, 동물복지, 직원에 대한 공정한 대우’ 등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를 믿고 다리골드 유제품을 구입했지만, 알고보니 농장 소속 근로자, 동물의 처우 관련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허위로 사회책임보고서를 작성해 소비자보호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소송이 제기됐지만, 원고의 증거 입증 부족으로 청구가 인용되지는 못했다. 

제품 표시 사항에 ESG 정보를 오류로 기입하거나 누락한 경우에 대한 소송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그린워싱 사례로 불리는 미국 종합 생활용품 업체 S.C 존슨의 그린리스트.

2010년 6월 미국에서 미국의 종합 생활용품 업체 S.C 존슨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으로 기업이 스스로 만든 그린리스트(Greenlist) 지표를 제품에 기입함으로써 소비자들로 하여금 제3자에 의해 녹색 인증을 받은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원고의 주장을 법원이 인용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