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원의 ESG투자트렌드】미국과 유럽 사이, ESG투자는 어디로?

2025-03-28     임팩트온(Impact ON)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미국의 ESG와 관련 정책이 급선회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 자동차 연비 규제 완화, 연준의 녹색금융협의체(NGFS) 탈퇴 등 다각도로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제도적 변화에 멈추지 않는다. 정치적, 법적 리스크를 우려한 미국 내 기업들은 ESG와 관련된 말을 웹사이트에서 제거하고 있으며, 금융기관들은 기후 관련 이니셔티브에서 잇따라 탈퇴하고 있다.

반면 EU는 아직 방향성을 뚜렷하게 유지하고 있다. 최근 EU집행위가 발표한 옴니버스 패키지로 인해 유럽도 ESG에서 한 발 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급변하는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미국과 경쟁력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25년 1월 발표된 EU 경쟁력 보고서에서도 탈탄소화 전략이 중요한 경쟁력 요소임을 천명하고 있다.

 

ESG펀드 시장: 회복하는 유럽, 유출 지속되는 미국

미국과 유럽의 엇갈리는 행보는 최근 ESG투자 동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래 차트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2년간 분기별로 ESG펀드에 들어온 자금의 흐름을 보여준다.

출처=모닝스타

먼저 눈에 띄는 것은 2024년 들어 유럽 지역에 ESG펀드플로우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다(왼쪽 차트, 파란색 막대). 다만 2021년에 볼 수 있었던 폭발적인 성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이미 유럽 시장 내에서는 ESG펀드로 분류되는 펀드가 전체 펀드의 6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럽 시장에서 ESG펀드 순유입이 현재보다 크게 늘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미국에서는 ESG펀드에서 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2년 간 한 분기도 빠짐없이 순유출을 기록했다. 다행히(?) ESG펀드에 한해서는 미국 시장은 아직 변방에 불과하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유럽 지역 ESG펀드가 전체 ESG펀드의 87%를 차지한다.

덕분에 미국의 순유출이 지속됨에도 유럽 시장의 회복으로 최근 ESG펀드 순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유럽 시장에서는 이미 ESG펀드가 충분히 성숙한 상태라 유럽 ESG펀드만으로는 글로벌 ESG펀드 시장의 추가적인 성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유의미한 성장세를 회복하려면 미국 시장에서 ESG펀드 활성화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미국과 유럽의 ESG펀드플로우가 양극화되는 가운데,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에서 ESG펀드에 꾸준히 순유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잠시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지난 2년 간 유럽을 제외하고 순유입을 기록한 곳은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이 유일하다. 특히 대만에서는 지난 2년간 ESG펀드에 약 130억 달러 규모의 순유입이 있었으며, 2024년 1분기를 제외하고는 매 분기당 10~20억 달러가 일관되게 유입됐다. 덕분에 아시아 지역의 ESG펀드 플로우의 2~30%를 차지하며 ESG펀드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다.

 

갈팡질팡 기관투자자들

미국 금융기관들이 줄지어 기후 이니셔티브를 탈퇴하고 있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이니셔티브 활동이 ‘반독점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로 소송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텍사스주가 블랙록 등 운용사를 대상으로 넷제로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ZAMI)에 참여함으로써 기업의 석탄 생산을 줄이도록 유도했다는 이유로 반독점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진행 중이다.

이러한 법적 리스크를 우려한 금융기관들은 적극적으로 기업측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니셔티브인 Climate Action 100+ 부터 탈퇴를 시작하였고, 최근 들어서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하는 넷제로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ZAMI), 넷제로 은행 이니셔티브(NZBA) 등에서도 잇따라 탈퇴하는 중이다.

반면 유럽 지역의 투자자나 은행들은 아직 기후이니셔티브에서 탈퇴한 사례가 없다. 자산운용사에 돈을 맡기는 연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기후이니셔티브 탈퇴 현상에 우려하며, 기후이니셔티브를 탈퇴가 자신들이 설정한 포트폴리오 넷제로 등 목표 달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하고 있다.

약 130조원을 운용하는 스웨덴 연기금 AP7의 경우 자산운용사 선정 시 기후이니셔티브 참여 여부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할 것으로 밝혔고, 네덜란드 연기금 PME는 블랙록의 ESG투자 전략 후퇴를 이유로 블랙록에 위탁한 자산을 다른 운용사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자금을 이전한 사례도 있다. 영국 연기금 The People’s Pension은 책임투자 기준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약 280억 파운드를 블랙록과 SSGA에서 회수하여 아문디와 인베스코로 이전했다.

 

신호와 잡음

ESG에 대한 회의론은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트럼프 재집권 이후 더욱 두드러지는 듯하다. 국내에서도 ESG가 후퇴하고 있다는 뉴스 기사가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요즘같이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 미래에 무엇이 어떻게 될지 말한다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국내 ESG투자가 후퇴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다소 역설적일 수 있지만, 아직 후퇴할 만큼 진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SG펀드의 순자산은 수년째 감소 중이고, 소수의 연기금 외에는 ESG를 투자에 통합하는 일에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와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을 고려할 때 지금보다 더 후퇴하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 이유는 ESG투자의 본질에서 기인한다. 투자 과정에서 ESG를 고려하는 ESG투자가 현재의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은 ESG 요소가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을 위협할 것이라는 믿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중에게도 경험적으로 설득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ESG투자는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다수가 합의한 리스크에 대한 대응으로서 성장해 온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특정 현상과 특정 정치인의 행보를 다루는 뉴스 기사는 쉽게 눈에 띄는 반면 거대한 트렌드와 그 트렌드를 형성하는 요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일시적인 현상과 장기적인 흐름을 구분하여 장기적인 관점으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담부서를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