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 기후 공시 의무화에 대한 법적 방어 중단 결정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7일(현지시간) 기후 리스크 및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 규정(climate-related disclosure rules), 즉 기후 공시 의무화에 대한 법적 방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SEC 기후 공시 제도는 2022년 처음 제안돼 2024년 3월 최종 채택된 것으로, 상장기업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무적 위험과 온실가스 배출 정보를 투자자에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더 힐은 이번 SEC 결정이 "2024년 3월 확정된 규정의 중요한 타협점들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SEC, "비용 과다·불필요한 간섭"… 규정 방어 중단 공식화
SEC는 27일 위원회 표결을 통해 해당 규정의 법적 방어를 중단하기로 결정, 이후 법원에 공식 서한을 제출하고 기존에 제출한 변론 요지서의 주장도 더 이상 이어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예정됐던 구두 변론 시간도 법원에 반납했다.
마크 우예다(Mark Uyeda) SEC 대행 의장은 성명을 통해 "오늘 조치의 목표는 비용이 많이 들고 불필요하게 간섭적인 기후 공시 규정에 대한 SEC의 개입을 중단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된 규정은 2024년 3월 6일 최종 확정됐다. SEC는 당시 "기후변화가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의 정보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명분으로 이 규정을 도입했다. 다만 최종 채택된 규정은 2022년 초안보다는 완화된 형태로, 특히 제품 사용 이후 발생하는 배출량(Scope 3) 공개 의무 등 논란이 컸던 조항들은 삭제됐다.
해당 규정은 제정 직후 산업계 로비 단체와 공화당 소속 주 법무장관들로부터 “SEC의 권한을 넘어선 과도한 규제”라는 반발을 받으며 소송에 휘말렸다. 현재 이 사건은 제8 연방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 for the Eighth Circuit)에 계류 중이며, SEC는 2024년 말 법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규정의 발효를 일시 유예한 상태다.
"위원회가 규제 몰락 방관"… 내부 반발과 정치적 파장
SEC 내 유일한 민주당 위원인 캐롤라인 크렌쇼(Caroline Crenshaw)는 이번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크렌쇼 위원은 "위원회 다수가 규정의 소멸을 바라고 손 놓고 지켜보며 팝콘을 먹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며, "절차를 통해 규정을 정식 폐지하거나 대체안을 제안하지 않고 방어만 중단하는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이 투자자, 발행인, 시장을 대신해 이 규칙을 방어할 법정 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규제를 본격적으로 되돌리는 흐름 속에서 나왔다. 최근 미국 교통부(U.S. Department of Transportation)는 초당적 인프라법(Bipartisan Infrastructure Law)에 따라 추진되던 50억달러(약 7조3370억원) 규모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보조 프로그램을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미국 내무부(U.S. Department of the Interior)와 환경보호청(EPA) 등도 에너지·환경 관련 규제 철회를 이어가고 있다.
마이크 라운즈(Mike Rounds) 공화당 상원의원은 SEC 결정을 환영하며, "이 과도한 규정은 농민, 목장주, 중소기업에 과도한 비용과 관료적 부담을 줄 뻔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