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유럽 대기업에도 DEI 정책 폐지 요구

2025-04-01     김환이 editor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프랑스 등 유럽 대기업에도 DEI 정책 폐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언스플레시

29일(현지시간) FT, 로이트 등 외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가 일부 EU 대기업에 트럼프 행정부의 DEI 금지 행정명령을 준수하라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은 각국 주재 미 대사관을 통해 발송됐으며, 기업들에게 “DEI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5일 이내에 제출하라고 명시돼 있다.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주요국은 “미국의 간섭은 수용 불가”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미 행정부, 프랑스 포함 EU 기업에 DEI 금지 행정명령 통보

미 정부는 유럽 대기업들에게 서한을 보내면서 “차별 금지법을 위반하는 DEI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항목에 동의 및 서명해 회신할 것을 요청했다. 이를 어길 경우 ‘연방 반차별법 준수 확인서’에 따라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담겼다. 

해당 행정명령은 미국 정부와 계약하는 모든 기업과 공급업체에 적용된다. 국적이나 실제 사업 운영 국가와 관계없이 해당 명령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측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취임 직후 행정명령 14173호(불법 차별 중단 및 실적 기반 기회 복원)에 서명했으며, DEI는 “능력보다 성별과 인종을 우선시하는 역차별”이라고 주장해왔다.

로이터는 "이번 논란은 미국과 유럽 간 DEI 정책에 대한 접근 방식 차이를 재조명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기업들은 인종·민족 데이터를 수집하고 다양성 목표를 설정하는 등 DEI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반면, 프랑스는 ‘라익리테(laïcité)’라는 세속주의 원칙에 따라 인종, 출신, 종교 등 인종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채용 과정에서 이를 고려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대신 성별과 사회경제적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DEI 정책을 운영해왔다.

예컨대, 프랑스는 직원 250명 이상인 기업의 이사회 구성에서 여성 비율을 40% 이상으로  의무화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아이슬란드에 이어 여성 이사회 비율이 두 번째로 높다.

 

프랑스·벨기에 강력 반발… “우리 기업 정책에 간섭 말라” 

유럽 각 정부와 기업 대표들은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명백한 내정 간섭이자 강권적 행위”라며 "DEI 프로그램을 겨냥한 미국의 개입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프랑스 외교통상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 프랑스 기업의 포용 정책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한 관세 위협과 다름없다”며 “이는 미국 내부 정치를 반영하는 것이지, 우리의 가치관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오로르 베르제 프랑스 성평등 담당 장관도 “기업들이 사회적 권리를 증진하는 것을 막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다행히 다수의 프랑스 기업들은 DEI 정책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얀 잠봉 벨기에 부총리 역시 “유럽은 차별 금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번 미국의 요구는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 내 사업장이 없는 프랑스 국영 통신사 오랑주(Orange)도 이번 서한을 받았지만, 미국에 진출한 방산기업 탈레스(Thales)와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스(TotalEnergies)는 관련 요청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이번 조치가 미국 내 사업 유무와는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적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로이터는 “미국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미국이 자국 가치를 동맹국 기업에까지 강요하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며 “향후 유럽의 대응과 양측 갈등 수위가 주목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