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경의 ESG 딥다이브】전환금융, 저탄소 전환의 기회인가 위기인가
- ESG 금융 스펙트럼 속 전환금융의 의미 - 택소노미 기준으로 점검한 한국과 EU의 전환금융 차이 - 불가피한 전환금융, 그만큼 엄격해야
탄소배출 감축이 어려운 부문의 저탄소 전환을 위한 전환금융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철강, 시멘트 등 구조적 제약이 있는 산업의 경우,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까지 과도기적 지원이 불가피하며 이 역할을 전환금융이 맡고 있다.
다만, 전환금융은 고배출 산업을 탈탄소화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지만, 잘못 설계되면 탄소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전환 여부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과 주기적인 이행 점검, 기술 발전에 따른 기준의 상향 없는 전환금융은 그린워싱의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크다.
ESG 금융 스펙트럼 속 전환금융의 의미
전환금융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를 둘러싼 유사한 금융 개념들과의 차이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ESG를 반영하는 금융을 일컫는 다양한 용어 중 지속가능금융(Sustainable Finance)은 사회, 환경,거버넌스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금융으로 가장 포괄적인 관점의 개념이다. 포괄적인 만큼 관념적이거나 다소 모호하게 사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기후금융(Climate Finance)은 기후변화 완화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술 및 기업, 프로젝트 등에 투자하는 금융이다. 기후변화 완화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등 기후변화의 원인을 줄이는 활동이라면 기후변화 적응은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대응활동으로 이를 지원하는 금융이다.
녹색금융(Green Finance)은 기후변화의 완화 및 대응뿐만 아니라, 순환경제, 환경오염 완화, 생물다양성 제고 및 자연자원 보존 등 다양한 친환경적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이다. EU는 친환경을 여섯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각각의 카테고리별 녹색금융을 위한 기준을 수립해 택소노미를 제정했다. 한국 역시 EU의 택소노미를 참조해 한국형 택소노미를 제정해 운용하고 있다.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은 맥락에 따라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혼재되어 사용될 수 있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는 자금의 달성 목적에 따라 전환금융의 범위를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가장 넓은 범위로는 경제전반의 전환 목적의 자금으로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고, 생물다양성이나 순환경제 등 분류체계에 포함된 더 넓은 지속가능 목표나 UN SDGs를 참조하여 경제전체 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금융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두번째는 기후전환을 의미하는 금융이나 일반적으로 에너지 및 고배출 부문 등 특정 산업이나 부문의 파리협정 목표와 넷제로 달성을 지원하는 금융이다. 마지막으로 감축이 어려운 부문의 전환으로 화석연료 등 가장 감축이 어려운 부문의 특정 프로젝트 및 해당 부문의 산출물에 대해 보다 지속가능한 대안을 촉진하기 목적의 금융을 일컫는다.
OECD는 전환금융에 대해 배출집약적이고, 현재 상황에서 경제적이고 신뢰성 있는 저배출 혹은 무배출 수단으로의 대체가 불가능하지만, 사회경제적 발전에 중요한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투자로 정의하고 있다. 다만, 전환금융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으며, 일반적으로 동의된 기술적 기준이나 해당 부문 또는 기술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택소노미 기준으로 점검한 한국과 EU의 전환금융 차이
철강과 시멘트 산업 등은 즉각적인 전환이 어려운 만큼, 산업 내 저탄소 기술을 적용하는 기업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전환금융은 현실적인 유인책이자 지원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환경부의 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은 EU 체계에 따라 ‘전환부문’을 탄소중립의 최종 도달점이 아닌 현재 단계에서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적 경제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전환부문’으로는 ▲중소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활동 ▲원자력 기반 에너지 생산(신규 및 계속운전) ▲블루수소 제조 ▲친환경 선박의 건조 및 운송 등 총 7개 활동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환경부의 택소노미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기준이라는 점에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전환금융 도입 시 이를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환기준이 그 의도한 바를 달성하기에 충분한 걸까?
택소노미가 규정한 활동 중 액화천연가스를 이용한 전력 및 열 생산을 사례로 삼아, EU와 한국의 전환 기준 차이를 비교해보면 양국 간 접근 방식의 차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과 EU 모두 천연가스 발전을 한시적으로 전환활동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EU는 훨씬 더 높은 조건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EU는 한국보다 높은 배출량 감축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배출량 기준 외에도 기존 화석 연료 설비를 대체하는 조건 및 향후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설비여야 한다. 이 경우에도 신규 액화천연가스 설비 용량이 대체되는 화석연료 설비 용량의 15%를 초과해 증가할 수 없다는 상당한 제약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매해 독립된 검증기관으로부터 전과정 기준의 직접적인 배출량 수준과 2035년 말까지 재생에너지 및 저탄소 에너지 사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의 진척상황 등에 대한 검증을 받고 보고서를 유럽집행위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기존 화석연료 설비 대체조건이 없을뿐더러, 인정 기준이 모두 설계 명세서를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실측 기반이 아닌 설계도만으로 판단해 자금이 집행됨에도, 정기적인 MRV(측정·보고·검증) 의무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만약, 설계명세서에서 배출량 효과가 부풀려지거나, 혹은 실제 작동과정에서 의도한 효과가 나지 않더라도 집행된 전환금융 자금을 회수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이는 그린워싱에 매우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불가피한 전환금융, 그만큼 엄격해야
전환금융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녹색금융보다 더 엄격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MRV 체계 없이 전환금융이 성급하게 집행된다면, 그린워싱과 탄소 고착화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이는 전환금융의 본래 목적을 무력화시킬 뿐 아니라, 탄소중립 달성을 오히려 지연시킬 수 있다.
국회에서는 2024년 7월 철강,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등 5대 핵심 온실가스 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의 촉진 등에 관한 특별법안(기후금융특별법)’이 발의됐다. 제 6차 기후금융 TF에서는 지난해 12월 고탄소 산업의 탄소감축을 지원하는 전환금융의 도입과 기후금융상품 개발 계획이 발표됐다.
이러한 움직임 자체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실제 그 의도한 효과를 내기 위해 투명한 MRV 체계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
전환금융은 필요하며, 한국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해 유럽보다 일부 기준이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탄소고착화를 막기 위해서는 투명한 MRV 시스템의 수립이 필수요건이다. 아울러, 금융기관에 대해 녹색 및 전환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공시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의무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이 뒷받침될 때, 전환금융은 비로소 저탄소 경제를 향한 징검다리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EU 천연가스발전에 대한 ‘전환활동’ 주요 인정 기준 비교
|
항목 |
EU |
한국 |
|
기한 |
2030년 12월 31일까지 건축 허가 획득까지 인정 |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와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라 30~35년까지 인정 (명확한 기한 규정하지 않음) |
|
배출량 기준 |
에너지 단위당 직접 이산화탄소 배출량 270gCO2eq/kWh 이하 배출 또는, 20년 이상의 설비 수명기간 동안 연평균 직접 이산화탄소 배출량 550kgCO2eq/kWh 이하 배출 또는 열/전기 개별 생산대비 일차 에너지를 10% 이상 절감해야 함 |
전력, 열의 에너지 단위당 온실가스 배출량 340g CO2eq./kWh 이하(발전량, 설계명세서 기준), 설계 수명기간 동안 평균 250g CO2eq./kWh을 달성할 수 있는 중장기 감축 계획 제시 |
|
배출량 산정방식 |
전과정 평가 |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운영 검증 지침 따르되, 2025년부터 전과정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
|
검증 |
매해 독립된 제 3자로부터 1)전과정 온실가스 배출량, 20년 이상 연평균 기준 준수여부 2) 2035년 12월까지 재생에너지 및 저탄소에너지로 전환가능한 궤도에 있는지 여부 |
- |
|
화석발전 대체 조건 |
고체나 액체형 다른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탄소 고배출 전기발전을 대체하는 활동이어야 함 (재생에너지 발전을 대체할 수 없음) |
- |
|
신규 설비의 CAPA는 대체되는 설비 CAPA의 15%를 초과해 증가할 수 없음 신규 및 대체설비는 기존 설비의 CAPA를 초과할 수 없음 |
- |
|
|
재생에너지 사용전환 조건 |
재생에너지나 저탄소 가스 사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설비여야 하며 2035년 12월 31일까지 전환되어야 함. |
- |
|
배출량 감축 조건 |
대체되는 설비는 설비 수명기간동안 최소 55%이상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를 달성해야 함(4.29) 대체되는 설비는 출력 에너지 kWh당 최소 55% 온실가스의 방출이 감소해야 함(4.30, 4.31) |
- |
|
누출 모니터링/관리 |
다음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함 (가) 건설 시, 메탄 누출과 같은 물리적 배출 모니터링 측정 장비를 설치하거나 누출 감지 및 수리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함 (나) 운영 시. 배출물의 물리적 측정이 보고되고 누출이 제거되어야 함 |
- |
출처: 그린에토스랩
☞ 이선경 대표는
이선경 그린에토스랩 대표이사는 신한증권과 대신증권에서 채권 크레딧 애널리스트와 주식 애널리스트를 거쳐 CJ경영연구원과 CJENM, CJ제일제당 등에서 전략기획, 재무전략/IR 팀장, 대신경제연구소에서 ESG센터장을 역임했다. 2024년 3월 그린에토스랩을 설립해 ESG공시 및 공급망 컨설팅과 녹색기술/녹색금융 고도화 자문 등을 제공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대형금융기관의 ESG모델 및 ESG적용 프로세스 구축, ESG 평가 등을 장기간 수행했고, 정부 기관의 공급망 ESG플랫폼 구축, 환경DB분석 및 산업별 환경성 평가체계 수립 등 금융과 기업에 적용되는 ESG체계 구축 및 전략수립과 경험을 보유한 ESG 전문가이다. 다수의 정부 기관 및 에너지 유관기관에서 ESG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