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해운 ‘탄소세’ 합의안, 미국 반발 속 통과…톤당 최소 100달러
미국이 자국 선박에 대한 ‘보복 조치’를 경고하며 협상에서 이탈한 가운데,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초과한 선박에 대해 톤당 최소 100달러(약 14만원)의 탄소배출 비용을 부과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11일(현지시각) 로이터,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IMO는 같은 날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63개국의 찬성으로 해당 계획을 통과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에너지 수출국들은 반대표를 던졌고, 24개국은 기권했다.
초과 배출량 1톤당 최대 380달러까지 부과 가능
이번 조치에 따라 오는 2027년부터 국제 항해를 하는 5000톤 이상의 모든 선박은 선박 연료유의 온실가스 집약도에 적용되는 강화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이를 준수하지 못한 선박이 운항하려면 IMO에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한 비용을 내야 한다.
상위 목표는 2008년 대비 2028년까지 온실가스 연료 집약도를 17%, 2030년까지 21% 감축하는 것이다. 하위 목표는 각각 4%, 8%로 설정됐다.
상위 목표에 미달한 선박은 초과 톤당 매년 100달러(약 14만원)를 IMO에 납부해야 하며, 하위 목표에도 못 미칠 경우 톤당 최대 380달러(약 54만원)를 부담하게 된다. 이 금액은 IMO에 직접 납부하거나, 기준을 초과 달성한 선박으로부터 크레딧을 구매하는 방식으로도 충당할 수 있다.
IMO는 이렇게 조성된 기금을 통해 저탄소 연료 사용 선박에 대한 보조금 지급, 해운 탈탄소화 투자, 식량안보 피해 대응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필요를 우선 고려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미국은 이 같은 수익 재분배 구조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IMO의 MARPOL(선박으로부터의 오염방지를 위한 국제협약) 부속서 VI 개정안에 포함돼, 오는 10월 채택된 뒤 2027년 상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복잡한 협상 끝의 절충안… 탄소세-크레딧 거래 간 의견 대립
이번 합의는 모든 배출량에 단순한 부담금(levy)을 부과하자는 국가들과, 크레딧 거래방식을 지지한 국가들 간의 치열한 협상이 2년 가까이 이어진 끝에 도출됐다.
해수면 상승 위험이 큰 태평양 섬나라들은 선박 소유주들이 비용 부담을 통해 고비용 친환경 연료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탄소세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반면 대형 수출국들과 최근에는 미국까지도, 저탄소 연료가 아직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추가 비용이 식료품 등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IMO 회원국들은 앞서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2030년까지 해운 부문의 연간 배출량을 최소 20%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해운 에너지 분석가들은 이번 계획만으로는 배출 감축 속도가 부족해 2050년 넷제로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덴마크 해운사 AP몰러-머스크(AP Møller-Maersk) 등은 협상 과정에서, 해운업계가 액화천연가스(LNG)보다 지속가능한 연료에 투자하도록 충분한 유인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환경단체 교통과 환경(Transport and Environment)의 해운 프로그램 디렉터 파익 아바소브(Faïg Abbasov)는 “이번 합의는 IMO가 자체 설정한 2050년 순배출 제로 목표와 중간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계획으로 인해 “산림을 파괴하는 1세대 바이오연료가 향후 10년간 가장 큰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그는 “다자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지정학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번 IMO 합의는 대체 해양 연료 전환에 모멘텀을 제공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도 덧붙였다.
해운업은 전 세계 무역의 약 80%를 담당하며, 거의 전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해운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