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 설계표준으로 진입…美 콜러·르그랑, 점검체계부터 고객 피드백까지 반영

2025-05-07     홍명표 editor
 미국의 욕실, 주방기기 제조사 콜러(Kohler)의 홈페이지.

미국의 욕실·주방기기 기업 콜러(Kohler)와 전기설비 업체 르그랑(Legrand)이 제품 설계 단계 전반에 ‘순환성(circularity)’을 체계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전문 매체 트렐리스(구 그린비즈)는 1일(현지시각) 양사가 '서큘래러티 25(Circularity 25)’ 콘퍼런스에서 순환 설계 확산을 위한 구체적 실천 사례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서큘래러티 25는 미국 지속가능성 분야의 대표적인 연례 행사로, 기업, 정책기관, 기술기업 관계자들이 순환경제 전환 전략과 실행 방안을 공유하는 자리다.

 

순환 설계의 시작은 ‘설계 전’

양사는 공통적으로 제품 기획 초기 단계, 즉 개념 설계 이전부터 순환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 설계 과정에서 ▲재료의 재활용 가능성 ▲분해 및 수리 용이성 ▲표준화 연계 가능성 등을 선제적으로 검토한다.

콜러는 자사 ‘환경을 위한 설계(Design for Environment)’ 지침에 따라, 설계 초기부터 재활용 소재 비율과 제품 분해 구조를 검토하는 절차를 운용 중이다. 르그랑도 연구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순환성 논의를 병행해, 반복 설계 과정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성 목표가 반영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양사는 또한 미국그린빌딩협의회(USGBC), 국제표준화기구(ISO) 등 외부 기준을 참고해, 순환제품 정의와 용어 정합성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ISO는 지난 3월, 순환 설계를 위한 기본 지침을 개정한 바 있다.

르그랑의 지속가능성 담당자 제이든 바니(Jaden Barney)는 “제품 속성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이른 단계에서 시작된다”며 “고객과 직접 접점에 있는 기획자와 영업 인력이 설계 방향을 주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점검 체계와 고객 피드백, 순환 설계 완성도 높여

제품 개발 과정 전반에서 순환성을 관리하기 위한 내부 점검 체계도 구체화되고 있다. 콜러는 ‘순환성 점검표(scorecard)’를 활용해 ▲재활용률 ▲수리 가능성 ▲배출량 감축 기여도 등을 점수화하고, 이에 따라 기본부터 플래티넘 등급까지 등급 체계를 운용한다.

르그랑도 자사의 ‘에코디자인 인덱스(Eco-Design Index)’를 통해 수리성, 재활용 금속 비율, 사용 연한 연장 가능성 등을 계량화하고 있다. 점수 기반의 평가는 제품 간 내부 비교뿐 아니라, 고객 대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고객 요구를 설계에 반영하는 체계도 병행된다. 르그랑은 현장 대응 인력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설계팀에 전달하고, 환경성과와 사용자 편의를 동시에 고려한 개선안을 도출하고 있다.

실제로 콘센트 설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사 분실 문제와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 축소 요구를 반영해, 나사를 본체 뒷면에 고정하는 구조로 개선했다. 이로써 별도 포장이 필요 없어졌고, 자재 손실과 플라스틱 사용량을 동시에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콜러는 미국 국립공원 내 호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철거된 세면대와 욕조 100여 개를 회수해 복원·재도색하는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리노베이션은 기존 공간 구조를 유지한 채 노후 설비를 수리·교체하는 방식으로, 구조 변경을 수반하는 리모델링과 구분된다.

콜러는 이번 사례를 통해 자사 순환경제 설계 전략이 제품 수명 종료 후 재사용 가능성 단계에서도 적용 가능한지를 검증했다. 제품 수명 연장과 재사용 가능성을 전제로 한 설계 기준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실전에서 점검한 것이다.

콜러의 글로벌 제품 지속가능성 총괄 애슐리 페이히(Ashley Fahey)는 “이번 설계 개편은 단순한 방향성 제시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지표(KPI)를 통해 고객 가치로 연결되도록 기획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