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기업ㆍ상장기업, 내년부터 기후변화 위기 의무 공시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정부는 대기업 및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위험 공시를 법적 의무화하는 제안에 대한 공개 협의를 개시했다.
내년부터 500명 이상의 직원 및 5억 유로(6700억 9000만 원) 이상의 매출액을 보유한 대기업 및 상장기업들은 기후관련 금융공시 태스크포스(TCFD) 권고안에 따라 연례 보고서에 기후위험을 공시해야 한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약 1600개의 상장 대기업 및 민간 영국 기업들이 공시할 것으로 예상되며, 기업의 기후변화 공시를 의무화한 최초국가라고 밝혔다.
에너지 산업 전략부(BEIS)가 발간한 문서에 따르면, 올해 말 규칙이 제정되고 2022년 4월 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청정에너지 성장 부서 장관 앤 마리 트레블리얀(Anne Marie-Trevelyan)과 기후기회 및 기업 책임 장관인 로드 캘러한(Lord Callahan)은 공동 장관 서문에서 영국이 "고성장 가능성을 가진 혁신 기업뿐 아니라 저탄소 미래에 기여하는 기업들이 상장할 수 있는 최적의 국가"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법안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은 “추후 기후 관련 금융 공시는 순제로 전환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 결정을 뒷받침하며, 공시로 인해 투명성이 증가해 기업과 이해 관계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나아가 “녹색기술과 서비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수십억의 민간 투자를 동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 영국 정부는 “저탄소 전환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기업에게 상당한 경쟁우위를 제공하는 것”이 이번 제안의 주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안 영국 정부는 기업들이 기후 변화로 인해 사업에 초래되는 위험을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녹색 변호사 단체인 '클라이언트 어스'가 지난 달 발간한 보고서는 ‘많은 대기업들이 부적절한 기후 위험 공개로 인해 기존 법을 어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 약 1500개 기업과 기관이 글로벌 TCFD 이니셔티브에 의한 위험 공시 지침을 자발적으로 채택 혹은 이행하고 있다. TCFD의 권고안에 따르면, 기업들은 기후 변화가 그들의 사업에 미치는 실제적이고 잠재적인 영향을 공개하고, 그러한 위험과 기회를 어떻게 식별하고 관리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전 영국은행 총재였던 마크 카니(Mark Carney)가 전 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기후 위험에 대처하는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TCFD 지침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어 지난 해 11월 리시 수낙(Rishi Sunak) 총리는 G20 국가 중 경제 전반에 걸쳐 TCFD 연계공시를 최초로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공약 실현을 가속화하기 위해 이번 법안을 제안했으며, 공개 협의에서는 올해 1월부터 약 500여개의대기업에 적용해온 금융행위청(FCA)이 정한 ‘프리미엄 상장기업의 위험성 공시 규정’을 보완하면서 이번 법안의 도입 및 제정 방안을 모색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2025년까지 상장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소유의 대기업에게도 자발적 공시가 의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참관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많은 상장기업들이 TCFD 권고안을 따르지 않으며 TCFD 보고서를 작성한 수많은 기업들은 직면할 수 있는 다른 기후 위기 관련 시나리오를 상세히 설명하라는 지침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요구사항을 따르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이에 이번에 마련된 협의에서 영국 정부는 “TCFD 가이드라인의 4대 기본 틀을 지배구조, 전략, 리스크 관리, 메트릭스 및 타겟 등 상세히 활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금융계와 산업계는 이번 정부 발표를 환영했다. 영국 투자 협회의 스튜어드십 매니저 새라 우드필드(Saera Woodfield)는 이번 법안에 대해 "영국이 2050년까지 순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중요하면서도 환영할 만한 발전"이라며 “투자관리자들이 연금펀드 고객들에게 기후위험을 잘 전달해 공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고 투자 포트폴리오의 영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컨설팅업체 EY의 기후 변화와 지속가능성 서비스 파트너인 레베카 파머(Rebecca Farmer) 박사는 정부의 법안 도입에 대해 “상장기업뿐만 아니라 대형 비상장기업도 공시 요건 범위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을 환영한다”면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장기업과 대기업이 순제로 경제의 기회뿐 아니라 어떻게 기후 변화와 관련된 위험을 관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