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잇의 전환이야기】글로벌 해운, 탄소비용 시대의 서막: IMO 이중가격제와 조선ㆍ해운산업의 재설계
국제해사기구(IMO)는 2025년 4월,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83)를 통해 해운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강도 높은 규제 수단을 확정지었다. 핵심은 ‘이중가격 시스템(Dual Rate System)’의 도입이다. 이는 전 세계 해운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탄소가격 부과 매커니즘을 명문화한 결정이다.
이 체계는 IMO가 정한 온실가스(GHG) 배출 강도 기준을 초과하는 선박에 대해 초과 수준별로 탄소비용을 차등 부과한다. 초과가 경미할 경우(Tier1)에는 톤당 100달러, 기준을 훨씬 상회할 경우(Tier2)에는 최대 380달러의 비용이 부과된다. 이는 단순한 제재가 아니라, 해운업 전반의 탄소전략과 비용구조를 근본부터 재 설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됐다.
이제 선박 운용에 있어 ESG를 보고용 ‘책임 경영’의 수단으로만 다룰 수 없다. ESG는 본격적인 비용관리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IMO 규제는 산업에 실질적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첫 국제적 시스템으로 생존 전략에 본질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Scope 1에서 Scope 3로: 탄소 관리 확장
지금까지 IMO의 탄소 규제는 선박 운항 중 배출되는 직접 배출(Scope 1)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선박연료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기술적으로 측정이 용이하고, 규제 집행의 명확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MEPC 83에서는 ‘Well-to-Wake’(연료 생산부터 연소까지) 개념이 공식 논의되면서, 선박 연료의 생산, 수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Scope 3) 관리의 중요성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념의 확장이 아니다. LNG, 수소, 암모니아와 같은 대체 연료가 각광받고 있고, 특히 기존 선박 엔진에 큰 개조 없이 바로 투입가능한 ‘드롭인(Drop-in) 바이오 연료’가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메탄올, 바이오LNG, 바이오디젤 등이 이에 해당되며, 비교적 빠른 시장 적용성과 기존 인프라 호환성을 강점으로 한다.
그러나 이 연료들의 생산과정이 실제로 화석연료 대비 탄소 저감 효과가 있는지는 생애주기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 없이는 단정할 수 없다. 앞으로 선박 운용은 단순히 선박 연료 효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급망 전체를 고려한 ‘LCA 상 총배출량을 최소화하는 감축 전략’이 필수가 되는 것이다.
Scope 3 관리의 전략적 가치
Scope 3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규제 대응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대형 화주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Scope 3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며, 해운사를 포함한 물류파트너들에게 동일한 수준의 탄소 투명성과 감축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존, 이케아, 유니레버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선박을 발주하는 고객은 연료 효율성 외에도, 연료전환 대응성, 탄소 모니터링 체계, 연료 인프라 호환성 등을 기준으로 조선사를 평가한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Scope3 배출까지 감시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선제적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산업 전반이 준비해야 할 세 가지 과제
전 산업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세 가지 과제가 있다. 우선 해운•조선이 공통으로 LCA 기반의 연료 분석 및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연료의 생산부터 연소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생애주기 평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선박의 운용에 있어 각 연료의 실제 탄소 저감 효과를 정확히 파악하고, 효과적인 감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향후, ‘IMO 기준 충족 여부’ 보다 ‘LCA 기반 총 배출 절감 효과’가 선박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해운과 조선이 역할을 분담하여 선박별 탄소 인벤토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ESG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선박별로 탄소 배출량을 Scope 3까지 확장하여 관리하고, 이를 ESG 보고서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는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제공함과 동시에,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책임을 입증하는 수단이 된다.
해운사가 중심이 되고 조선사가 연계하여 선제적인 감축 목표 설정과 외부 인증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해운사는 IMO 규제 수위를 넘는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국제 인증을 통해 검증받아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조선사는 이에 대응하는 ‘ZNZ(Zero or Near-Zero) 선박 모델’과 ‘선박 연료전환 기술’을 선제적으로 시장에 제시해야 하며, 공동개발(JDP) 및 인증 획득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규제 대응을 넘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번 IMO의 이중가격체계 도입은 단순한 비용 증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Scope1에 머물던 해운사의 탄소 관리 패러다임을 Scope3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해운사는 단순 운송 기업이 아닌 ‘탄소 전략기업’으로 거듭나야 하며, 조선사는 ‘선박 제조업체’에서 ‘탄소 성능을 설계하는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선제적으로 ESG 전환을 준비하지 않는 기업이 탄소 비용 부담과 수주 경쟁력 저하라는 이중 리스크에 직면하게 될 결정적 시점이다. 탄소를 비용으로 받아들이느냐, 기회로 전환하느냐는 이제 각 기업의 전략적 선택에 달려 있다.
☞지혜련 연구원은
지혜련 연구원은 에너지 정책 연구기관인 플랜잇(PLANiT)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플랜잇은 에너지 전환경로를 식별하는 모델 기반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정량적 연구 기관이다. 지 연구원은 CFD 기반 연구를 수행해 온 조선• 해운 분야 연구자로, ESG 실무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2006년 한국과학기술원(KORDI, 현 KRISO)에서 연구를 시작했으며, 2008년부터 대우조선해양 선박해양연구팀에서 15년간 CFD를 활용한 선박 기술 연구를 수행해왔다. 2022년 부터 ESG 실무를 담당했으며, 현재는 해운• 조선산업의 탈탄소 전략, LCA 기반 온실가스 감축 평가, 국제 규제 대응 등을 주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