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바이오솔루션 전략산업 지정…기후·순환경제 전환에 입법 시동

2025-05-19     이재영 editor

유럽연합(EU)이 바이오솔루션을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입법 작업에 돌입했다.

EU 집행위는 13일(현지시각)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고위급 바이오솔루션 회의(European High-Level Conference on Biosolutions)'에서 2026년 제정을 목표로 한 ‘바이오텍법(Biotech Act)’ 추진 계획을 공식화했다. 법안은 바이오 기술을 기후 대응과 순환경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규제 완화·실증 인프라·민간 투자 기반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유럽 바이오솔루션 연합(EBC)은 이날 선언문에서 “바이오솔루션은 화석 기반 산업에서 생물 기반 순환경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할 핵심 기술”이라며 “탄소중립, 식량안보, 자원순환을 위한 전략 도구로 정책적 우선순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EBC는 유럽 내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민간 협의체로, 산업 표준, 정책 제언, 정보 교류, 인증 기준 제시 등을 수행하고 있다. 

 

농업 부문 주도…EU, ‘가장 빠른 시장’ 부상

바이오솔루션은 미생물, 효소 등 생물 자원을 활용해 화학 비료나 농약을 대체하는 기술군이다. 대표적으로 ▲생물비료(Biofertilizer, 작물이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영양분을 전환해주는 미생물 제제) ▲생물농약(Biopesticide, 해충·병원균을 억제하는 천연 유래 제제) ▲바이오스티뮬런트(Biostimulant, 작물 생육과 회복력을 높이는 해조류 추출물·아미노산 등)이 있으며, 탄소 감축과 토양 회복, 작물 생산성 향상 등 지속가능 농업의 전환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VMR(Verif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농업 바이오솔루션 시장은 2023년 132억달러(약 18조4500억원)에서 2031년 402억달러(약 56조2000억원)까지 연평균 14.2%씩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바이솔루션 내 다른 산업군인 바이오의약품(9~13%)이나 바이오헬스(5.3%)보다 높은 수치다.

EU는 미국에 이어 글로벌 농식품 수출 2위다. 농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성장세가 가파른 바이오솔루션 시장에 본격 뛰어들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농업 바이오솔루션 시장 2031년까지 40조원 규모 성장 전망 / Verified Market Research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마켓츠앤마켓츠(MarketsandMarket)은 유럽이 농업 바이오솔루션 시장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핵심 요인으로는 엄격한 화학 농자재 규제와 지속가능 농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꼽았다. 독일 바스프(BASF), 덴마크 노보자임스(Novozymes), 스위스 신젠타(Syngenta), 프랑스 아그록신(Agrauxine) 등 주요 기업들 또한 연구개발(R&D)과 현지 협업을 통해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문제는 EU의 느린 행정 절차와 규제다. 유렉티브에 따르면, 유럽식품안전청(EFSA)을 통한 생물학적 제품 승인에만 수년이 소요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 미국, 인도 등과 달리 EU는 바이오솔루션 사업에 대한 보조금이나 R&D 인센티브도 제한적이어서, 제도적 뒷받침 없이 시장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중국은 실행 단계…EU는 제도 정비 나서

미국과 중국은 바이오 기술을 산업 전환의 핵심 수단으로 규정하고,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실제로 미국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기반으로 ‘국가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National Biomanufacturing Initiative)’를 출범시켰다. 당시 백악관은 “생물학을 활용한 화학물질, 소재, 에너지 생산을 통해 지속가능 제조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니셔티브는 바이오소재 상용화, 민간 투자 유인, 공급망 전환, 저탄소 제조 인프라 구축 등을 골자로 한다.

중국도 같은 해 ‘14차 5개년 바이오경제 발전계획’과 ‘2035 생물경제 전략’을 통해 합성생물학, 바이오연료, 바이오농업 등을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지방정부 주도의 실증지구를 통해 상용화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바이오 기반 경제가 자원순환과 저탄소 성장의 핵심 산업이 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반면 EU는 아직 제도 정비 단계에 있다. 추진 중인 바이오텍법에는 실증 인프라 구축, 민간 자본 유입, 디지털 연계, 규제 간소화 등이 포함돼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시장 진입 전 기술 검증을 허용하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EBC는 “기술이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시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우리 정부 지난 1월 ‘그린바이오산업법’을 시행하고, 전담기관 지정·산업지구 조성 등 제도 정비에 착수했다. 종자, 미생물, 식품소재 등 농업 전후방 산업의 기술 기반 육성이 목표다.

그러나 인허가 체계와 산업 분류는 아직 미비한 수준이다. 한국바이오협회는 “배양육·유전자편집 작물 등 미래 분야에 대한 규제가 부재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해, 의료 및 보건 중심인 레드바이오에 비해 산업 성장이 더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