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세 "수입품 전용 ETS 적용 방식 유력"
코로나 19 사태 이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EU(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앞두고, EU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정당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23일 한국무역협회가 발간한 통상리포트에서는 탄소국경조정제도에 관한 EU의 실질적인 진척사항이 담겨있다.
설문조사 "탄소국경조정제도 정당하다" 밝혀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 실질적인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탄소국경조정제도(탄소국경세)가 탄소누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탄소노출은 한 국가의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규제로 인해, 기업이 EU 역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거나 소비자들이 값은 싸지만 탄소집약도는 더 높은 수입품을 더 많이 구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비규제국가의 오염물질 증가를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EU 집행위원회는 2020년 3월 제도의 초기영향을평가를 발표하고, 이해관계자 수렴 거쳐 2021년 2분기 안에 공식 입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EU가 제시한 탄소국경조정제도의 네 가지 적용방식에 대해서는 ▲수입산에 대한 세금(국경세, 관세 등) 부과가 1.3점, ▲국내산 및 수입산에 대해 간접세 방식의 탄소세(carbon tax) 부과가 1.1점, ▲수입산에 대한 별도 ETS(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운영이 1.05점, ▲수입산에 대한 EU ETS 확장 적용이 0.98점 순으로 나타났다. 점수 기준은 2점이 매우 적절하다, 1점은 다소 적절하다, 0점은 적절치 않다를 의미한다.
탄소국경제도의 적용 범위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가장 많이 선택된 분야는 전력발전,시멘트,철광석 및 철강 제품, 기초 화학제품,비료,질소화합물,플라스틱,합성고무 등의 생산과 석유 추출 등이었다.
수입제품의 탄소 함유량을 산정하는 방식과 관련해서는 응답자들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립적인 제3자의 수입제품 탄소함유량 입증, 자율증명 불허, EU 수출자에 대한 리베이트 부여가능성 검토 등의 의견이 나왔다.
보고서에서는 탄소국경조정제도의 구체적 도입방식에 대해서 유럽 배출권거래제도(ETS)를 활용하는 방식이 유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유럽의회 국제무역위원장 베른트 랑에(Bernard Lange), 환경위원장 파스칼 칸핀(Pascal Canfin) 등 의회 주요 인사가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식은 거의 선택지에서 제외됐고 수입품 전용 ETS를 적용하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밝힌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이들은 탄소세 부과 방식이 의도치 않은 보호무역조치가 될 수 있고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위반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EU 역외국 중에서 미국은 탄소국경조정제도의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중국,러시아,인도 등 탄소배출량이 높고 환경규제가 약한 국가들은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의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진투자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탄소발자국을 적용해 톤당 10달러의 탄소세가 부과될 경우, 철강 부문은 영업이익률이 1.7%p, 석유·화학 부문은 0.7%p, 자동차 0.02%p, 전지 0.1%p가 하락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프리 스콧 수석경제학자 "최소 1년간의 국가간 합의 필요" 주장
한편, 제프리 스콧 피터슨 국제경제정책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는 "저탄소 배출 정책은 주로 환경규제, 보조금, 세제 혜택 등이 혼합된 형태이며 가끔 국제 통상질서를 왜곡한다"면서 "국가 간 상이한 환경정책이 공정경쟁의 장의 구축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탄소국경세와 관련한 국가 간 협의와 합의도 필요하다"면서 "특히 국가 간 환경정책 차이에 대한 명확한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최소 1년 이상의 국가 간 협의를 가져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탄소 배출국 간에 공통된 정책 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글로벌 전략 컨설팅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작년 6월 "탄소국경세는 관세 전쟁, 보호무역주의 증가 등 세계 무역시스템의 새로운 붕괴 원인이 될 것"이라며 "EU 수입품에 1미터톤당 30달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부과금이 주어진다면, 외국 생산자들의 이익률이 약 2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철강의 경우 4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U의 공급망 실사 의무화
우리 기업에 리스크로 다가갈 가능성 ↑
인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기업의 책임에 대해서도 EU의 규제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올해 2분기 내 인권과 환경 분야에서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하는 입법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작년 4월 EU 사법위원장 디디에 레인더스는 유럽 그린딜의 일환으로 기업들의 환경ㆍ인권 등 분야에 대한 공급망 실사 의무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작년 1월 EU 의회 법무위원회는 공급망 실사제도를 전 산업분야의 대기업 및 일부 중소기업에 적용할 것을 집행위에 요구한 바 있다.
EU 의회연구소는 작년 2월 EU 사법·소비자 정책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34개의 기업체 중 약 37%만이 인권 관련 공급망 실사 의무를 이행한다는 설문 결과를 인용하면서 실사에 대한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입법안은 일곱 가지의 정책 분야에서 여러 옵션을 토대로 설계될 것으로 전망된다.
EU의 공급망 실사 의무 이행 제도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의 경우 국제노동기구 ILO의 기본협약 중에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등의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다. ILO의 핵심협약은 세계 어떤 노동자라도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국제규범 설립을 위해 노동권의 기초 원칙을 구체화한 다국가 간 약속이다. 핵심협약은 총 190개 협약 중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4개 분야의 8개 협약을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1991년 ILO에 가입한 이래 강제노동 관련 29호·105호와 결사의 자유 관련 87호·98호 등 총 4개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향후 EU에서 공급망 실사 의무 이행안이 제정된다면 EU에 수출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