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국경세 이어 탄소세 온다

2021-03-30     박지영 editor

기획재정부, 탄소세 연구용역 맡겼다

기업들이 탄소국경세에 이어 탄소세까지 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에너지신문에 따르면 최근 기획재정부는 1분기 내 탄소가격 체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탄소세는 석유·석탄 등 각종 화석 연료 사용량에 따라 부과하는 이른바 친환경 세금을 뜻한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국회엔 탄소세법까지 발의된 상태다. 최근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걷어지는 탄소세는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당하자”는 내용의 법안도 제출한 바 있다. 1톤당 8만원의 탄소세를 부과해 월 10만원을 배당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탄소중립이행법안 마련을 위한 입법 공청회'를 열고 기후위기대응법안, 기후위기대응 기본법안, 탈탄소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그린뉴딜정책 특별법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안 등 총 4건을 논의하기도 했다. 공청회에서는 우리나라가 탄소배출을 목표량만큼 줄이지 못한 점이 지적되며 '탄소세 도입' 등을 통해 관련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 연설에서 탄소세를 언급하고 지난해 말 기후변화대응 특별기금 등을 신설해 세제와 부담금 제도의 개편을 검토해나가겠다고 밝히는 등 탄소세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는 “4월경 정부부처 합동으로 탄소가격 체계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올해 말까지 교통·에너지·환경세 체계개편과 탄소세 도입 등을 포함한 탄소가격체제 전반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용역 범위에는 논의 중으로 해외사례를 포함해 탄소가격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하반기 탄소세 관련 법령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는 일부 전망에 확정된 바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연구용역이 끝나면 내년 공청회 등을 거쳐 탄소세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 법원 “탄소세는 합헌”

캐나다 대법원은 “연방정부가 탄소세 부과에 개입할 수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엔 연방정부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판결했다. 앨버타, 온타리오, 새스캐처원 3개 주(州) 정부는 “자유당이 정권을 잡은 연방정부는 과도한 개입을 하고 있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대법원은 “주 정부가 조처에 실패하면 캐나다 전체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된다"며 연방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에 최소한의 가격을 부과할 헌법적 권한을 갖는다고 판시했다. 주 정부가 스스로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캐나다 전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본 것이다.

또 기후변화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탄소 가격제는 기후변화 해결에 필수 요소라고 지적했다. 리처드 웨이그너 대법원장은 “기후변화가 초래할 위협은 실제적이며 주 정부 한 곳이라도 행동을 거부하면 나머지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결 내렸다.

이번 소송은 2018년 자유당 정부가 도입한 온실가스 공해 가격법에 주 정부가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자유당 정부는 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탄소세 도입을 포함한 법안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주 정부들은 “탄소세 부과 및 환경 문제, 자원 개발 등에 연방정부가 과도한 개입을 한다”며 위헌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합헌 판결을 내렸지만, 대표적인 산유지인 앨버타주는 “연방주의에 위험을 초래한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제1야당인 보수당의 에린 오툴 대표는 “자유당 정부의 탄소세는 수만 개의 일자리와 캐나다의 국제 경쟁력을 위협한다”며 집권하면 탄소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석유협회, 입장 바꿔 탄소세 부과 ‘찬성’

기후변화 관련 법적 규제에 저항해 왔던 미국 석유협회가 입장을 바꿔 연방정부의 탄소세 부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온실가스 배출 저감과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정책 발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태세전환에 나선 것이다.

엑손모빌과 BP,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미국 석유협회 등 산업계 대표들은 최근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 화상 면담을 갖고 시장 기반 탄소세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 석유협회는 “탄소세는 각기 다른 규제보다 더 청정하고 투명한 방안”이라며 “기술 개발과 배출량 경감, 청정 연료 개발에 대한 정부 지원을 적극 지지한다”고 의사를 밝혔다. 다만, “배출권 거래제든 세금 형태든 탄소세는 경제 전반에 적용돼야 한다”며 “기후변화와 관련이 없는 사업에 자금이 지원되는 세금에는 동의하지 않겠다”고 단서를 붙이기도 했다. 또 “탄소세 도입 이후 현존 규제에 대한 변화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10년 전 협회는 탄소세 부과에 강하게 반발했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원유와 가스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토지 임대를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에도 강하게 저항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대응 정책에 속도가 붙자 입장을 바꿨다.

한편, 일부 환경단체들은 “석유산업의 꼼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천연자원보호협회의 데이비드 도니거 기후청정에너지 디렉터는 “논의 주체에서 제외되는 대신 협상 테이블에 직접 앉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들이 진짜 지지하려고 제안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탄소세 찬성을 빌미로 오염 배출 규제를 저지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의회에서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탄소세를 갑자기 석유협회가 꺼낸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탄소세 관련 법안도 논의 테이블 위에 있긴 하지만, 에너지 전환에 비해 다소 논의가 부족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