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I 놓고 美-유럽 충돌…EU “법적 의무, 철회 불가”

2025-05-21     유인영 editor
사진=언스플래쉬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 기업·기관에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철회를 요구하면서 유럽연합(EU)과의 마찰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대사관은 최근 몇 주간 미국 정부와 거래하는 유럽 내 공공기관과 기업에 공문을 보내 미국법을 위배하는 DEI 프로그램이 없음을 서약할 것을 요구했다. 

20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해당 사안을 인지하고 있으며, 회원국들과 함께 미국의 요구가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성평등 등 DEI 관련 기준을 법률로 명문화하고 있다.

 

美 상무장관, “무역 조치도 검토 가능”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DEI 정책 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연방기관에 ‘불법적 DEI’ 관행을 지닌 기업과 기관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미국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DEI 금지 행정명령이 외교 현장에서도 철저히 이행되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 공공기관은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DEI 이행 포기를 요구받고 있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 도시계획 담당 부시장 얀 발레스코그(Jan Valeskog)는 “5월 초 미국대사관으로부터 10일 내 DEI 정책 철회를 확약하라는 공문을 받았다”며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다. DEI는 스웨덴법상 의무사항”이라고 일축했다.

유럽은 이미 ESG 규제를 두고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하워드 루트닉(Howard Lutnick) 미국 상무장관은 유럽의 ESG 규제에 대해 “필요하면 무역 조치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유럽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에 반대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해당 지침은 기업에 기후 전환 계획과 인권 침해 없는 공급망 관리를 요구한다. 

이번 DEI 충돌은 미·EU 간 정책 기조의 정면충돌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법 전문 로펌 리틀러 멘델슨(Littler Mendelson)의 변호사 라울 파렉(Raoul Parekh)은 “양측이 단순한 노선 차이를 넘어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오히려 DEI 관련 입법·정책 추진 강화

DEI 및 ESG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반감은 글로벌 기업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독일의 소프트웨어 대기업 SAP는 여성 고용 비중 40% 목표를 철회하며, “최근 법적 환경 변화에 맞춘 결과”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DEI 정책을 축소한 회사로는 IBM, 인텔, 월마트, 메타, 아마존 등이 있다. 

유럽 기업의 DEI 정책 변경은 투자자 사이에서도 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Allianz Global Investors)의 지속가능 투자 책임자 매트 크리스텐슨(Matt Christensen)은 “프랑스에 있는 기업들이 미국대사관의 서신을 받고 실제 정책을 조정하는 상황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SAP의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향후 주주로서 논의하게 될 사안”이라고 언급했다. 

유럽은 오히려 DEI 관련 입법과 정책 추진을 강화하고 있다. 칼리엔 스켈레(Carlien Scheele) 유럽성평등연구소(EIGE) 소장은 “기본가치와 법치에 대한 공격이 있을수록 우리는 더욱 강하게 대응한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인종과 장애인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고용계획 수립을 추진 중이며, EU는 2026년 6월까지 대기업 여성 사외이사 비율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리도록 하는 ‘기업 이사회 성평등 지침’과 성별 임금격차가 5%를 초과할 경우 시정 조치를 의무화하는 ‘임금투명성 지침’을 채택했다.

EU의 DEI 강화 정책은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 대응 전략과도 연결된다. 유럽 기업연합(BusinessEurope)은 지난 3월 보고서에서 “여성의 참여 확대는 EU의 경쟁력 유지에 핵심”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