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CSDDD 단순 유예 아닌 폐기해야”
프랑스 정부가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폐기를 공식 촉구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파리에서 열린 ‘투자 정상회의(Choose France Summit)’에서 기업 경영진에게 “CSDDD와 같은 규제는 단순 유예가 아니라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언은 독일 기민당(CDU)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대표가 지난 10일 브뤼셀에서 동일한 입장을 밝힌 지 10일 만에 나왔다. 메르츠 총리는 당시 “미국·중국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EU의 복잡한 관료주의로 인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 역시 메르츠 총리, 그리고 다른 여러 정상들과 동일한 입장에 있으며, 규제를 더 빠르게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규제 내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중국처럼 전 세계와의 경쟁에서 발을 맞춰야 한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경쟁력”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는 “EU 양대 경제국이 기업 규제 완화를 놓고 공동 압박에 나섰다”며 “EU의 핵심 ESG 규제가 사실상 후퇴 수순에 들어섰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프랑스ㆍ 독일 공식 입장 후, CSDDD '전면 철회' 수개월 내 합의 예정
CSDDD는 EU 역내 대기업들이 공급망에서 강제노동, 환경 훼손 등 인권 및 환경 침해 요소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시정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으로, 2027년부터 적용 예정이다. 2022년 2월 유럽위원회(EC)가 처음 발의했으며, 2024년 5월 법안은 EU 차원에서 최종 채택됐다.
EU 집행위는 올해 1월, 프랑스 요청에 따라 행정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법안 수정 논의에 착수했다. 당초 직원 500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했지만, 프랑스의 반발로 인해 적용 범위를 5000명 이상 기업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최종적으로 기준은 1000명 이상으로 조정됐다. 이에 따라 규제 대상 기업 수는 약 80% 감소했고, 시행 시점도 2028년으로 1년 연기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이 폐기를 공식 요구하기 전까지는 CSDDD의 ‘전면 철회’는 논의된 적 없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의 공식 입장이 바뀌자 EU 내부 협상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EU 회원국들은 현재 법안 수정안에 대해 협상을 진행 중이며, 수개월 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 연정 내부 의견 엇갈려, "전면 철회 공식 입장 아냐"
이번 논란은 독일의 정치 지형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지난 2월 독일 총선 이후, 경제 자유주의 성향의 메르츠가 집권하면서 EU 내 규제 완화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다만 독일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엇갈린 상태다. 연립정부 내에서 메르츠가 이끄는 보수당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 간의 이견을 고려할 때, 해당 발언이 독일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SPD는 CSDDD 폐지에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마티아스 미어쉬(Matthias Miersch) SPD 원내대표는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 있다고 해서 사회민주당의 입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급망에 대한 법적 규제는 유럽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연정 합의문에도 “연정 협약에 따라 자국 공급망 실사법은 폐지하되, EU 차원에서 재설계된 법안은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어, CSDDD의 최종 형태는 EU 내부 정치와 조율 과정에 따라 향후 수개월 이내 결정될 전망이다.
한편, 지난 2월부터 EU 집행위가 추진 중인 ‘옴니버스(Omnibus)’도 이러한 방향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관련 기업 규제를 일괄 정비하겠다는 취지 아래, CSDDD 역시 적용 범위 및 절차가 대폭 완화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실사 의무를 ‘직접 거래관계’에만 적용하고 ▲실시 결과의 효과성 평가 주기를 매년이 아닌 5년 주기로 전환하며 ▲소규모 기업에는 정보 제출 요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